[고라니 이벤트] 초등학교 때 사이코 담임 만난 썰

꼰대만보면짖는개 작성일 20.09.10 15: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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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국민학교 아님) 이십 대 젊은 여교사가 내 담임이 됐다. 이 사람 때문에 내 일 년이 지옥이 됐다.

 

당시에는 급식을 남기면 끝나고 교실 청소를 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 왜 그런 규칙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높은 놈 대가리에서 나온 발상이겠지.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까진 좋은데, 그러려면 각자 먹을 수 있는 걸 먹고 싶은 만큼 풀 수 있게 해 줘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모든 음식을 듬뿍 푼 다음 억지로 다 먹어야 했다.

 

난 못 먹는 음식은 때려 죽여도 못 먹는 사람이라 매일 급식을 남겼고 매일 청소를 했다. 올 일 년은 꼼짝 없이 청소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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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밥 먹자마자 바로 청소하고 집에 오면 속이 부대껴서 배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가서 그 년과 면담을 했다. 왜 못 먹는 걸 억지로 주고 그걸 남긴다고 청소를 시키느냐, 먹을 만큼만 먹게 하면 되지 않느냐 했다. 그러자 그 년은 "배식하는 애들이 많이 줬나 보죠!"라고 대꾸했다. 그러고서는 울었다.(?) 본인이 그렇게 주라고 옆에서 직접 시키고서는... 나이 먹고 생각해 보면 교사로서 할 말이 아니다. 본인 책임은 아무것도 없다는 투였으니까.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엄마가 선생님이랑 잘 얘기했으니 이젠 걱정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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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년이 앙심을 품고 내게 갖은 방식으로 보복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다채롭게 치사하고 더러웠는지 하나하나 나열하기 힘들 정도였다. 질문하면 씹기, 힘든 일만 골라서 시키기, 아무리 글을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려도 상장은 절대 주지 않기, 통지표에 악담만 쓰기 등 사탄이 실직할 정도였다.

 

나는 나대로 살 궁리를 계속 고민했다. 먼저 엄마에게 급식비를 내지 말라고 했다. 차라리 급식을 안 먹고 이 더러운 짓을 당하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나만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교내 대회에서는 교장이나 교감이 직접 내 그림을 선정해서 상을 주면 그것만 받았다. 중간에 담임을 거쳐야 하는 대회는 마음을 접었다.

 

그 년은 내게 숙직실 공무원에게 점심을 배달하는 일을 시켰다. 그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무거운 급식판을 들고, 남자애들이 전속력으로 뛰어다니는 복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 한쪽 손으로 위태롭게 급식판을 들고, 다른 쪽 손으로 노크를 공손히 두 번 한 다음, 근무 중인 공무원의 책상 앞에 가지런히 식판을 놓아주는 일이었다. 그 년은 일부러 그 일을 내게 시켰다…. 날 엿 먹이려고.

 

그렇게 몇 달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대편에서 뛰어오던 남자애가 내게 부딪쳐서 급식판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난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엉엉 울었다. 그 년이 우리 엄마한테 기분 좀 나빴다고 이렇게 어린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에 서럽고 억울해서 엉엉 울었다. 그때 엄마는 진상을 부리지도 않았다. 최대한 공손하고 상냥하게 말했다. 똑똑히 기억한다. 엄마가 진상부리고 갑질했으면 이렇게 당하는 게 억울하지라도 않지. 난 그렇게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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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는지, 학부모가 수업을 진행하는 날이 있었다. 그날은 누구네 엄마 몇 분이 와서 자기가 준비해 온 주제로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교실에서 하는 수업도 있고 야외에서 하는 수업도 있었다.

 

야외 수업을 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담임년이 울고 있고(이 년은 맨날 운다.) 옆에서 학부모가 성심성의껏 달래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그 년의 지갑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야외로 나갈 때 당번이 뒷문을 잘 잠그지 않았고, 외부인이 들어와 지갑을 가져간 것 같았다.

 

학부모 한 명이 우리 모두에게 책상 서랍과 주변을 살펴보라고 했다. 난 서랍 속에 손을 넣고 대충 휙휙 저었다. 저딴 년을 위해 열심히 살펴 줄 의욕이 없었다. 이구동성으로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학부모는 다시 한 번 살펴보라고 했다. 이번엔 서랍 깊숙이 손을 넣었다. 뭔가… 잡혔다. 벨벳과 가죽이 적절히 섞인, 두꺼운 지갑이었다….

 

난 원래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아이였지만, 그 순간에는 몇 분 정도 고민했다. 대충 더듬어봐도 현금이 엄청 많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한테 이 지갑을 주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으니까. 다음으로는 그 년에 대한 복수. 누가 이 지갑을 왜 하필 내 책상 서랍에 넣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하늘이 그 기회를 내게 준 게 아니라면 왜 이게 내 서랍 속에 있겠어? 그동안 괴롭힘당한 걸 갚아 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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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고민 뒤에 난 그 지갑을 들고 교탁 앞으로 나가 학부모에게 건넸다. 어디서 났느냐고 묻기에 “제 책상 서랍 속에 있었어요”라고 팩트만으로 대답했다. 눈물범벅으로 붉어진 담임년의 얼굴에 안도가 스며드는 것을 보았다. 뒤돌아서 내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생각했다. ‘선생님은 이것도 내가 꾸민 짓이라고 생각할 거야. 이제 두 배로 괴롭히겠네.' 그때 다른 애가 말했다. “아까 4학년 오빠들이 저희 교실 근처를 기웃거리는 걸 봤어요. 그때 들어왔나 봐요."

 

 

이후 남은 몇 달간 그 년이 날 괴롭히는 강도가 조금 약해졌다. 아예 근절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이후에도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수많은 가학적 변태와 사이코들한테 시달렸지만, 그 년이 내 담임이었던 일 년은 가장 힘든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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