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걸은 죽었다 -12-

alsls 작성일 05.05.17 05: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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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 내용보고 싶으면 검색해서 보세요 노중복할려고 -


본드걸은 죽었다 -12








-불청객-











"왜 그렇게 서 있어?들어갈꺼야?말꺼야?"




말은 그렇게 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살벌하게 드리워져 있는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니

나에겐 선택권이 없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뭐 설마 무슨일이 있겠는가?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 넷 아저씨와 까질데로 까진 열 아홉 여고생이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서 단 둘이 술을 마신다는데 별....일....이....있겠냔 말이다..-_-;




"그럼 나 30분만 있다가 나올꺼야."




진미는 그런 날 향해 씨익 웃더니 나의 손목을 잡고는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1층..2층..3층..그녀와 내가 멈춘 곳은 3층 왼쪽편에 있는 302호.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에 달려있는 열쇠 중 하나를 고르더니 302호 문을 열고 있었다.

곧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자 진미는 날 쳐다보며 들어오라는 눈빛을 보낸다.

진미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걸어들어가더니 벽쪽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누른다.

그러자 천장에 달려있는 형광등이 환한 빛을 내며 거실의 모습을 드러내었고

거실 한 중간에 서서 날 바라보고 서 있는 그녀의 전신까지 밝혀주었다.

하얀 빛을 받은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람이 아닌 듯한 착각까지 일으킨다.




"아저씨.뭐해?들어와."

"신발 벗는 중이다."




그렇게 대충 둘러대고 나서야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집 괜찮아?"

"응.매우.."




그건 나의 진심이였다.

그리 넓은 집은 아니였지만 깨끗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빼앗았던건 거실 전체를 감도는 이 은은한 분위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득 서글퍼졌다.

어머니가 왜 식당까지 나가며 고생해서 돈을 벌었던가?

하나 있는 자식새끼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사주고 싶었음이 아니였던가?

아마 많은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를 향한 나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거실을 둘러보던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진미쪽을 향한다.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 보며 자신의 몸을 빙글 빙글 돌리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하늘을 보며 몸을 돌리는 것처럼..그렇게 말이다.

계속 몸을 돌리던 그녀는 곧 쏟아지는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거실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진다.




"크큭.."




진미는 거실 바닥에 쓰러진채 재밌다는 듯 연신 웃음을 자아냈다.

알 수 없는 여자였다.

때로는 성숙한 여인처럼,때로는 마냥 철 없는 아이처럼 느껴진다.




"아저씨."

"응?"

"소주?맥주?"




-_-




"나 지금 속이 울렁 거려서..."

"나도 속 울렁거려.그러니까 소주?맥주?"

"............."

"아 얼른 대답 좀 하지?"

"맥주.-.-;'




진미는 쇼파에서 몸을 일으켜서는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어 나에게 한캔을 내밀며 말했다.




"마셔."




난 얼떨결에 맥주 캔을 건네 받고는..끔찍하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진미는 다시 쇼파를 향해 걸어가 털썩 주저 앉으며 맥주를 들이 마시고 있었다.




"근데 저기..나 진짜 속 안좋거든??"

"그래서?"




그래서라니..-_-




"아저씨가 속 안 좋은게 나랑 뭔 상관인데?
난 다만 내가 취한 것 만큼 아저씨도 취했으면 하는 바램 뿐이야."

"나 벌써 취했거든??"




그러자 진미는 콧방귀 소리를 내며 비웃었고..




"아저씨가 정말 취했으면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

"내가 조금만 순진했다면 아저씨의 말을 믿어줬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난 남자를 너무나 잘 알아.본능에 무척 강한 동물들이라는 것도 알고."




난 하는 수 없다는 듯 맥주캔을 따서는 조용히 입에 갖다대었다.

그때 나의 귀에 들려오는 진미의 목소리.




"아저씨."

"응?"

"아저씬 하늘을 보며 빙글 빙글 돌아 본 적 있어?"

"아주 어렸을때 해봤던 것 같은데.."

"무슨 생각 들었어?"

"그냥 뭐 어지럽다는 생각?"




나의 대답에 미소만 짓는 그녀..저 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은 안해봤어?지금 내가 이 세상 위에서 돌고 있는게 아니라
이 세상이 날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글쎄.."




그런건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다.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어서 집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 뿐..

이대로 술을 마시고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리게 된다면..

내가 무슨 행동을 하게 될지,무슨 실수를 저지르게 될지 모른다.

새삼 느낀다.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는 아직 미성년인 여고생이라는 사실을..

만에하나 그녀가 경찰서로 뛰어가 내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느니 뭐니 헛소리라도 한다면...-_-

어머니의 얼굴을 어떻게 쳐다본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30분 지났다.나 간다."

"아저씨."

"됐어.처음에 내가 분명히 말했지?30분만 있다가 갈꺼라고."

"아저씨!!!!"

"응?"

"앉어."




난 왜 그녀의 눈치를 보며 다시 슬그머니 제자리에 앉고 있는 것일까?;;

최준 너라는 새끼는 진짜...-_-

자리에 앉고 나자 진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응?"

"나랑 할래?"




무,무엇을...?




"응?"

"나랑 할래?말래?"

"무슨 말 하는지 잘.."




그러자 진미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저씨 진짜 모르는 거야?아님 모르는척 하는거야?
남자랑 여자가 단 둘이서 술을 마시고 나면 뭘 할것 같애?"




남자랑 여자가 단 둘이서 술을 마시고...?음..아 맞다!!




"진실 게임 하자는 거냐?"

"이런 미친.."




-_-;;;;;;;




"다 알면서 연기하지마.진짜 속물처럼 느껴져."

"그게 무슨 말이냐?"

"아저씨..착한척 순진한 척 해도 난 다 알거든??
여기까지 따라온 그 속셈 모를 것 같애?
나 같은 기집애 어떻게 한번 해볼까 해서 따라 온 거 아냐?"




그렇게 말하던 진미의 얼굴엔 씁쓸한 미소가 드리워진다.




"풋..솔직히 나 처럼 머리에 든 것도 없고 막사는 애..
한번 따먹고 치우기엔 딱이잖아?안그래?

"왜 아무말도 없어?"

"아저씨 표정보니 내가 하룻밤 상대로는 아쉽다는 표정이네?
하긴..내가 한번 하고 버리기엔 좀 예쁘긴 해?그렇지?"




왜 그런 것일까?

갑자기 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한다.

내 앞에 있는 그녀가 못 견딜만큼 미워지기 시작한다.

날 우습게 보고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해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그녀가 너무나 추하게 보인다.

난 지금 구역질 나는 쓰레기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고 있다.




"아저씨?"




날 바라보는 진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녀도 나의 표정을 느꼈나보다.




"지,지금 그 표정 뭐야?"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아름답다 생각했었던 그녀의 목소리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잘 못 맞췄을때 들려오는 소음으로 들려왔고

날 눈부시게 했던 그 천사같은 얼굴 위로는 악마의 모습이 겹쳐지기 시작한다.

그녀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손에 쥐고 있던 맥주 캔을 쇼파 앞 탁자위에 조용히 내려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의 행동을 지켜보던 진미는 상당히 충격을 먹었는지 날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야..너 지금 뭐하는 거야?!!"




역시 대답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들..




"그런데 말야..아저씨의 그런 무모한 모습이 조금은 멋있었어.."



"아저씨.그거 알어?나 약한 남자 진짜 싫어하거든??
근데 아저씨는 이상해.약한거 아는데도..쳐다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끌려.









차라리 내 앞에서 그런 말들을 지껄이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너를 단순히 날라리 여고생으로 여겼을텐데...

아무 생각없이 막 사는 여고생쯤으로 여겼을텐데....

좀전에 네가 했던 말처럼 단지 한번 따먹고 버릴 그런 상대로 여겼을텐데....




니가 날 그저 그런 쓰레기 자식으로 보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정말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나 역시 너를 박진미가 아닌 털모자로 기억하다가 지워버렸을텐데....















뒤에서 날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한채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어제꼈는데...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녀석은??




"어라..사람이 있었네?"




한번 본 적이 있는 녀석이였다.

키가 170도 안되는 작은 덩치의 사내..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사내는 박진미가 그렇게 두려워 하던...이혜성 일 것이다.

내 앞에 서 있던 이혜성은 놀라움도 잠시 곧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아저씨.우리 전에 본적 있죠?"

"제 기억이 맞다면..그런 것 같네요."

"허..근데 어떤 이유로 우리집에서 나오고 계시는지?참 궁금하네요.^^;;"




이혜성의 그 말에 순간 박진미가 했던 말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누가 나한테 공짜로 빌려준 집인데..제법 괜찮을꺼야.."




그럼 이 집은 이혜성이 빌려준 집이란 말인가??

쓴 웃음이 나의 입가를 맴돈다.

그때 나의 뒤에서 진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혜,혜성아..."




난 고개를 돌려 진미를 바라보았고..그녀의 표정은 마치 냉동실에 갇힌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있었다.

그건 내 앞에 서 있는 이혜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거 믿기지가 않네요..우리 집에 불청객이 방문하다니.."




그러자 내 뒤에 서 있던 진미의 다급한 변명이 이어지고..




"아,아냐.혜성아.나 저 아저씨랑 아무일도 없었어.진짜야!!"




혜성은 겁에 질린채 변명을 해대는 진미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두 팔을 펼쳐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한다.




"박진미.난 아무말도 안했다?^^"

"................."




진미를 향해있던 혜성의 시선은 다시 나에게로 옮겨졌고..




"그럼 아저씨는 볼일 다 보고 가시는 건가요?"

"뭐 그런 셈이죠."

"아이쿠 이렇게 또 만났는데 그냥 헤어지기가 아쉽네요.
다시 들어가서 술이라도 한잔 더 어떠십니까?

"됐습니다."




날 향한 녀석의 미소가 무척이나 못마땅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싶은 심정이였다.




"상당히 바쁘신 것 같은데..뭐 어쩌겠습니까.보내드려야지요."

"예 그럼."




난 짧게 한마디 내뱉고는 녀석을 돌아서려하는데 날 다시 멈추게 하는 이혜성의 목소리.




"아저씨.잠시만요."

"..............."

"오늘은 이렇게 보내드리지만..다음에 또 만나는 일이 있으면 그냥 못 보내드립니다.
아시죠?저 지금 진짜 서운해서 하는 말인거..."

"................"

"그럼 밤길 어두운데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내 앞에서 쾅 소리를 내며 닫혀버리는 302호 현관문..

그만 몸을 돌려서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진미와의 대화,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이혜성과의 만남.

지금까지의 그 상황들이 날 향해 정신없이 날라오는 잽이였다면...

지금 302호 안에서 들려오는 박진미의 얘기는 날 쓰러트리게 하는 스트레이트 펀치였던 것 같다.




"야 내가 미쳤어?!!저딴 자식을 좋아하게??
너 나 알잖아?그냥 심심해서..장난이나 쳐볼까 해서 데리고 논거야!!"




"풉.."하는 소리와 함께 그자리에서 웃어버렸다.

그건 너무나 우스운 얘기였던지라 난 정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그건 내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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