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습니다..피를 너무 많이 흘려 잠시 의식을 잃은 것 뿐이니.. 곧 정신을 차릴껍니다."
"정말이지예?선상님 말씀 믿어도 되는 거지예?"
"걱정마시라니깐요."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 걸까?
의식은 깬 듯 한데..눈이 떠지질 않는다.마치 가위에 눌리는 듯 하다.
"인석아.애미다.니 정말 내 미치는 꼴 보고 싶나?! 내가 그렇게 말했건만 왜 이리 말을 안 듣노.. 진짜 내 가슴이 찢어져야 니가 말을 들을끼가?"
"행님.기철이 왔십니다..하아..진짜 어이가 없네예. 도대체 누군교?어떤 씨박새기들이 행님을 이렇게 만들었어예? 행님 어서 정신 좀 차려 보이소.어무이께서 죽을라카네예. 어서 일어나셔서 기철이도 갈구고 어머니한테 효도도 해드려야 하지 않겠십니까? 행님 알지예?기철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행님이라는 걸.
"준아.나야..너 이렇게 자고 있어서 어머님께 말씀 드리고 간다. 그때 일어났던 사고는 내가 다 마무리 지어놨으니까..너 깨어나면 다시 출근 하면 돼. 싫은 소리 나쁜 소리 잘 참고 그렇게 일했는데..돈도 못 받고 그렇게 쉽게 관두면 안되겠지? 어서 쾌유를 빈다."
"행님.기철이 또 왔어예.아따 오늘은 수업까지 째고 왔는데 얼른 일어나서 반겨줘야 되지 않겠능교? 나 말고 병문안 올 사람 또 있어예?없잖아예!!행님 진짜 왕따 아이요? 어떻게 된기 올때마다 아무도 없노.-_- 행님 어무이는 제가 잘 말해서 집에 돌려 보냈어예. 그럼 행님 푹 쉬시고예.기철이는 밤에 또 올께예.보고 싶다고 울면 안됩니데이?"
"아저씨..일어나봐."
너무나 넓은 태평양..그 중간에 위치해 있는 아주 작은 무인도가 눈을 뜨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아저씨" 라는 말 한마디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면..
날 구원해 줄 수 있는 것 역시 "아저씨" 일지도 모르겠다.
"아저씨.나 아저씨 한테 꼭 물어볼게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얼른 좀 일어나봐.응?"
"듣고 있는거 다 알고 있어."
"아저씨가 나 보기 싫어할꺼라는 거..나도 알아. 하지만 나 억울해.정말 아저씨한테 할 말이 많아."
"좋아.일어나기 싫다 이거지?그러면 내가 하는 말만 들어."
"나 원래 그런애야.아저씨 말처럼 그렇게 쓰레기같이 사는 애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날 향해 쓰레기라고 말하진 않았어. 난 내가 쓰레기라는 거 알지만 누구도 내 앞에서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다고."
"난 그랬던 것 같아.아저씨처럼 착하고 순진한 남자들을 보면 자꾸만 괴롭히고 싶고 파괴하고 싶고 망가트리고 싶어. 아마 그게 내 삶의 유일한 낙이였던 것 같애. 나 이렇게 태어난 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일까? 누군지도 모를 부모지만 나 이렇게 예쁘게 낳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야 하는 걸까? 날 보면 알겠지만 우리 엄마는 정말 예뻤을꺼야?그치?"
"그래 나 쓰레기 맞아.친 부모한테 쓰레기처럼 버려졌으니까. 다행히도 아주 잘 사는 부잣집 딸로 입양이 되었지만 ...그랬지만.. 그 얘긴 안 할래.나 막사는 애 같지만 감추고 싶은 비밀도 있으니까."
"내가 아저씨 앞에서 왜 이런 얘길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어쩌면 날 조금이나마 포장 시키기 위해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아저씨 그거 알아? 쓰레기도 처음부터 쓰레기는 아니였다는 거.."
잠시 후 병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난 기다렸다는 듯 눈을 뜨기 시작한다.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내가 덮고 있었던 이불 위엔 ..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녀의 향기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묘한 여운을 일게 만들었다.
"이 자슥아.니 진짜 죽어볼래?!!"
"죄송합니다.."
"어무이요 고정하이소."
"기철이 니는 시끄럽다 안카나!!"
벌써 몇 십분째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어머니셨다.
기철이가 내 앞에서 방패막이가 되주곤 했지만 ....차라리 방패가 없는 것만 못했다-_-;
어머니의 분노와 실망은 극에 달했는지 진정될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자 말해봐라.무슨 일이고?!!!"
"................."
"이새끼가 말 안하나?내 죽는꼴 봐야 되긋나?!!"
어머니가 자꾸 소리를 지르자 병실을 같이 쓰던 한 아저씨가 조용히 좀 해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그는 어머니의 엄청난 기합 소리에 보고 있던 TV를 향해 시선을 돌릴 뿐이다.-_-
어머니가 화나면 아무도 못 말린다.
아주 어렸을때 기억이지만 어머니가 어떤 남자 멱살을 쥐어잡고 싸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화가나면 그 곳이 길거리든,어디든..일단 고함부터 질러대던 어머니셨다.
그러면서 나보곤 항상 참으랜다...-_-
"내 말은 똥구녕으로 쳐먹나?이제 이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할끼고? 하루 하루 살기도 벅찬데 왜 자꾸 사고를 치냔 말이다!!!"
"어무이요.병원비는 제가 학교애들한테 좀.."
"기철이 니..내가 분명히 닥치라고 했다?"
"넵."
박기철.진짜 개념없는 새끼...낄때 안 낄때 좀 알아서...-_-
그렇게 어머니의 잔소리는 쉴새 없이 이어졌고 난 변명 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죄인처럼 마냥 듣고만 있었다.
그러던 그때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모두의 시선이 문쪽을 향한다.
"바,박진미..?"
놀라는 기철의 목소리가 들려와서야 그녀가 박진미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항상 그렇듯 교복차림에 하얀 털모자..그리고 한 손엔 음료수 한박스.
밖에 날씨가 많이 추웠는지 그녀의 코는 빨개져 있었다.
왜 자꾸 나를 찾아 오는 것일까?무슨 할 말이 있기에?
만약 내 앞에서 또 다시 신세한탄이나 할 생각이라면 때를 잘못 맞춰도
한참 잘못 맞췄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진미가 털모자를 벗으며 내가 있는 침실쪽으로 조심스레 걸어오자
그녀를 지켜보던 어머니께서 당황스런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쟈는 또 누고?"
그녀가 누구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박진미..그녀가 누군지는 내가 더 알고 싶을 뿐이다.
저 아름다운 가면 속에 어떤 모습이 존재하는지를 말이다.
그녀는 바로 내가 아닌 어머니쪽으로 다가가더니 인사를 한다.
"아,안녕하세요 어머니."
"..................."
어머니는 진미를 한참동안 들여다보더니 기어코 입을 열었다.
"아따 가스나 참 이쁘게 생긴네.."
-_-
"준아 니 아는 딸내미가?"
"그냥 조,조금.."
"어머니."
어머니의 시선이 다시 진미에게로 향하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준이 오빠..저 때문에 그런거예요.화내지 마세요."
순간 기철과 나의 표정이 어이없다는 듯 변하기 시작한다.
아마 기철이 녀석도 공감한 것일까?
지금 저 기집애의 입에서 아저씨라는 말이 나와야 정상일진데..오빠라니??
"니가 우예 아노?" 라는 어머니의 질문에 진미의 얘기는 계속 이어진다.
"어떤 남자애들이 저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오빠가 대신 혼내주다가..."
진미의 얘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쉬자
그녀는 어머니의 그 갑작스런 반응에 당황하기 시작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어머니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니 보고 모르는 사람 일에 참견 하지 말랬제?그랬나?안그랬나?!!!"
"...................."
다시 나에게 쏟아지는 어머니의 분노,잔소리...-_-
어머니의 잔소리..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는데 저 빌어먹을 기집애 때문에..;
"니가 뭐 대단하다고 자꾸 남의 일에 끼어드노? 지 자신도 관리 못하는게 퍽이나 남 걱정하고 자빠졌네.."
어머니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진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어머니."
"와?"
"저 오빠랑 남 아니거든요??"
박진미...너 또 무슨 헛소릴 내뱉는 거냐??
"그게 문 말이고?"
"저 오빠 여친인데요.."
-_-..여,여친?이젠 니가 아주 소설을 쓰는 구나..응?
어머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묻는다.
"여친은 또 뭔 소리고?"
"그러니까 오빠랑 제가 사귀는 사이.."
"컥.."
어머니는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놀라시더니 다시 묻는다.
"니 나이가 몇살인데 그런 무서운 소릴 하노??"
"저 열 아홉인데요."
"그,그러믄...기,기철이랑 동갑이란 말인데...아직 미성년자라는 말 아이가?"
"물론이죠..^^"
"하아..."
"어머니..저 잘할께요!!지켜봐주세요^o^"
.................................
잠시 후..나와 할 얘기가 있다는 진미의 부탁에 어머니와 기철은 병실안에서 나가고..
둘이 남게 되자 날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진미였다.
역시 여자친구라는 말은 개풀 뜯어먹는 소리였다.-_-;
"할말 없으면 가라."
"..................."
진미는 나의 차갑고 냉정한 말투에 상당히 놀란듯 보인다.
그도 그럴 수 밖에..항상 자신이 장난감 취급하던 한 사내가 이렇게 변해버렸으니...
이 경우는 마치 기철이가 나의 멱살을 잡게 되는..말도 안되는 경우와도 비슷한 것일까?
진미의 놀란 표정에 나의 마음은 뒤로 물러 서는 듯 했지만..
그녀는 나에게서 어떤 말을 했었던가...?
"야 내가 미쳤어?!!저딴 자식을 좋아하게?? 너 나 알잖아?그냥 심심해서..장난이나 쳐볼까 해서 데리고 논거야!!"
"뭐 아는 사이까진 아니고 내가 저 아저씨 데리고 장난 좀 쳤었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화내고 쌀쌀맞게 행동하는 건 당연한 거란 말이다.
최준..약해지지마라.지금 니 앞에 있는 건 천사의 가면을 쓰고 있는 악마일 뿐이다.
자기 자신이 했던 말처럼 널 괴롭히고 파괴시키고 망가트릴 것이다.
난 그녀의 얼굴을 마주 하기도 싫다는 듯 TV로 시선을 돌리고는 말을 계속 이었다.
"어머니 앞에서 연기 잘하더라?"
"다시 말하지만 난 너한테 할말도 없고 들을 말도 없거든. 그러니까 내 앞에서 좀 꺼져줬으면 좋겠는데.."
그 어색한 침묵속에 나의 눈은 TV를 향해 있었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귀로 집중 되어있었다.
"아저씨."
나의 눈동자는 여전히 TV만을 향해 있을 뿐이다.
"아저씨 정말 자존심 쎄구나.."
"그렇게 힘도 없으면서..맥주병 맞고 쓰러질거면서..싸울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이 기집애가 눈을 뜨고 있었던 거야??감고 있었던 거야?
지금 상황으로 본다면 정말 이런 말은 할 상황이 아니였지만..
날 우습게 보는 박진미를 보고 있으니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내가 싸우는 거 못 봤어?"
"아니 봤어."
"그럼 내 주먹 한방에 쓰러지는 새끼는?나의 발 차기 한방에 날라가는 새끼는?"
"아저씨도 맥주병 한방 맞고 기절했잖아."
-_-
"너 바보지?하긴 기집애가 뭘 알겠냐."
"아저씨도 기집애야."
"너 씨발..닥치고 안 나갈래?"
난 정말 박진미라는 이 여자를 모르겠다.
그녀가 정말 나에게서 사과를 받아 낼 생각이였다면,내 앞에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앞섰다면.
나의 성격,자존심을 자극할게 필요는 없었다.
"이야 아저씨 욕 잘한다..^^ "
난 그녀의 어이없는 한마디에 피식 하고 웃어버린다.
"아저씨..왜 그랬어?"
"뭐가?"
"왜 내 앞에서..약한척 바보같은척..못난 모습만 보였어? 이렇게 멋진 모습 다 놔두고??일부러 그런 거 맞지? 박기철이랑 사촌이라는 것도 다 거짓말이지? 펀치게임 할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진미의 그 질문에 다시 한번 웃고 말았다.
"그냥 꺼져라.난 너 같은 여자애랑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떤데?"
"니가 니 입으로 말하지 않았냐?쓰레기라고.."
".................."
진미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다.더이상 내가 그녀의 눈치를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앞으로도..쭈욱 말이다.
"아저씨 다 들었구나."
"다 들었건 말건 난 알고싶지도 않은 얘기니까 그만 하고 좀 나가라고!!"
그렇게 소리를 치며 침대위에 놓여져 있던 음료수 박스를 홧김에 던져버렸다.
깜짝 놀란 진미의 얼굴 뒤로 음료수들이 병실 바닥을 뒹굴었고...
병실안에 있던 모든 환자,사람들의 눈길이 나에게로 향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날 뚫어지게 쳐다보는 진미의 눈길만큼은 견딜 수 없었기에 다시 고개를 TV쪽으로 돌리고 만다.
날 쳐다보고 있던 진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서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음료수 캔을 줍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입을 여는 그녀였다.
"아저씨 너무 착해서 바보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간인 줄은 몰랐네."
도대체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야 너 불쌍한척 그만 좀 하고 가라.응?진짜 못 봐주겠다. 나 음료수 필요 없으니까 집에 들고가서 혜성인가 뭔가 하는 새끼랑 같이 마시던지. 둘이서 뭘 하던지 신경 안쓸테니까..그냥 좀 가라?응?부탁이다. 내가 너랑 같이 있으면 진짜 미칠 것 같거든?그러니까 좀 가라.."
진미는 나의 그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묵묵히 캔을 주워서 박스에 담고 있었다.
잠시 후 바닥에 있는 캔을 다 주웠는지 몸을 일으켜서는 날 바라보았다.
"....................."
내 기억이 맞다면 그녀가 내 앞에서 우는 모습..처음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녀의 모습에 그리 놀랄 것도 없고 연연치도 않는다.
어차피 꾸며진 모습일테고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모습일테니..
진미는 고개를 푹 숙인채 한참을 울더니 날 향해 음료수 박스를 던지며 소리친다.
"그래 씨발..드러워서 간다!!너 잘났다!!정말 잘났다!
너 편의점에서 짤려서 방구석에서 혼자 술이나 퍼마셔 댈까봐 박기철이 한테 전화해서는 같이 술 한잔 마시려 한 내 모습도 우습고..
니가 혜성이 집에서 그렇게 나가버리고 포장마차에서 술 엄청 마셔서는 나한테 전화했을때.. 니가 한 말 기억이 나냐?내가 보고 싶다매??난 그런 니가 너무나 걱정되서 박기철이 한테 전화해서는 너 좀 챙겨주라고 한 것도 우습고..
너 호프집에서 일한다길래 애들이나 하는 미팅자리 만들어서는 너 보러 거기까지 간 것도 우습고
피 흘리며 의식 잃은 너를 병원까지 데리고 오며 질질 짜던 내 모습도 우습다.아주 우스워 죽겠다!!!
그래 나 쓰레기다.고마워.나 쓰레기라는 거 일깨워줘서. 내가 너한테 보여준 진심들은 다 어디다 팔아먹고.. 나의 나쁜 모습,싸가지 없는 말만 기억하는..너 같은 새끼..잊을꺼다. 강하고 돈 많고 멋지고 나 사랑해주는 남자애들 전부 뒤로 한채 겁 많고 약하고 매력이라곤 없는 너같은 아저씨한테 자꾸 들이대는 미친년도 나 밖에 없을꺼다."
병실 안은 조용해졌다.
아마도 누군가가 이 병실안에서 나가버렸나보다.
내 무릅 위에 있는 음료수 캔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잊혀지고,끊겼던 필름들이 거짓말 처럼 되살아 나기 시작한다.
핸드폰 속으로 진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무나 괘씸하고 미워서 욕이나 마음껏 퍼부을 생각으로 전화한 것이였다.
"아저씨?"
진미의 그 목소리가 나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달콤하게 퍼져나가자..
"너..꺼억..당장...지금 당장 나와아.."
"아,아저씨.잠깐만..나 지금 전화받기가 좀 곤란 하거든?"
"당장 나와아..난..나는...몰라..끄윽..집 밑에 포장마차...거,거기이..나와..당장...."
"아저씨..기다려봐.나 지금 베란다로 나가서 받을께.."
"당장....당장 ....꺼억.."
.................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왜 그래?술 많이 마셨어?"
"대답 좀 해봐바.아저씨..??나 지금 가고 싶어도 못 간단 말야..아저씨??"
"야 털모자아아.."
"휴우.깜짝 놀랬네.근데 털모자가 누구래? 아저씨 딱 보아하니 술 절라 많이 마셨구만?"
"내가 지금 털모자가 보고 싶거드은?그러니까 너 당장 나와아....씨바.."
................................
"어이 하,학생??어휴 무슨 술을 이렇게 마셨대..학생!!"
여긴 또 어딘가...?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새의 날개 위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다.
"아저씨..미안..정말 미안."
"아저씨 다 와가..조금만..조금만 더 참어봐..아저씨?아저씨!! 나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나한테 쌀쌀 맞는 아저씨 모습 보니까... 그래서 그랬어..알어.내가 심했어.무슨 말을 해도 내가 죽일년이야. 그러니까..아저씨..정신 차려봐.미안...나 아저씨 말처럼 쓰레기 맞나봐.."
"그래서 착각했나봐.쓰레기도 주인 잘 만나면..좋은 곳에 버려질 수 있을꺼라고.."
손에 들고 있던 캔을 한참을 쳐다보다가 옆에서 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환자에게 묻는다.
"음료수 드실래요?"
"아,아뇨."
"그럼 제가 마시죠..뭐.."
난 그렇게 말하고는 음료수 캔을 따려하는데..그런 날 안타깝게 쳐다보던 옆 침실 환자가 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