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흑마다 15부 - 펌

싸도 작성일 07.01.02 10: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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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바램

기쁠때나
혹은 슬플때에도
언제나 함께 할 수 있기를.

행여,
이런 내 작은 욕심마저
허락되지 않아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되더라도

같은 하늘 어느 아래선가 내내 행복하기를.

부디 잘 있다는 안부라도
바람결에 전해 들을 수 있게 되기를...


==========================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중입니다....."

"후......"


벌써 일주일째.


언제나처럼 먼저와서 나의 퇴근을 기다려주던 영원이는

어느순간부터 나타나질 않았고

문자를 보내도 소식이 없어 걸어본 핸드폰은

언제나 자동응답목소리만이 내 귓가에 맴돌뿐이었다.


'어디 있는거니....'


오로지 아는 것이라고는 영원이의 핸드폰 번호뿐.

정확한 집의 위치도, 집 전화번호도

나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영원이는 더이상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보고싶다...'


내 손에 쥐어진 작은 사진 하나.

영원이는 그 작은 사진속에서 눈을 찔끔 감은채

파르르르 떨고있다.


"이럴줄 알았다면.... 사진이나 많이 찍어둘 것을."


지난번 에버랜드에 놀러갔을때

영원이 몰래 인화해서 가지고 있었던

후룸라이드 순간포착 즉석사진...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영원이의 사진이었다.

이 마저도 없었다면 아마 나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사진을 가지고 싶어서

짖궂게 장난을 쳤던 나의 모습을...


그랬던 내모습. 너도.... 기억하고 있니...


================


회사에 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내내 멍한 눈으로 모니터를 들여다 보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만원지하철에 밀려 집으로 온다.


텅빈 내집 문을 열고 가만히 컴퓨터 본체에 전원을 넣고

와우를 실행시킨다.

언제나처럼 아포여관 한구석에 나의 캐릭이 드러난다.


'후.... 오늘은 또 어디로 가볼까.'


나의 일과는 오로지 말을타고 동부왕국과 칼림도어를

뛰어다니는 것이다.

이렇게 다니다 보면 마치 어느대륙 어느 한 귀퉁이에서

영원이가 나를 기다리며 있을것만 같았다.


그럴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불모의땅... 타우라조야영지...

심지어 멀고어까지.

호드들에게 짖밟혀서 진행이 어?餞?시체끌기로 다니면서도

나의 여행은 계속 이어지곤 했다.

이렇게 다니다보면.. 언젠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오프라인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을 찾는 나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


영원이와 연락이 끊긴지가

벌써 두달이 넘어 석달이 되어간다.

창문밖으로 매미소리가 끊이지가 않는다.

유난히도 덥던 7월이 가고 벌써 8월이 다가왔다.


아직도 여전히 영원이의 핸드폰은 꺼져있는 상태였고

나는 습관처럼 한번씩 전화를 걸곤 했다.


"연희야... 보고싶다...."


행여, 내 메세지를 들을 수만 있다면...

제발 그럴수만 있다면...

잘 있다는 응답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따금 접하는 9시 뉴스등의 사건사고 소식을 접할때마다

설마, 아니겠지 하고 지워버리긴 했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한 마음을 차마 떨쳐버릴 순 없었다.


제발. 아무일도 없기를.


==============


어느새 여름휴가가 찾아왔다.

8월 첫째주에 가는것이 보통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다른 팀원들에 밀려 두째주에 가게 된 것이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 걸.'


이제 나에게 아무의미가 없는 와우였지만

그래도 습관처럼 접속을 한다.

아마도 휴가기간 내내 이렇게 지낼 것 같다.


영원이와 처음 만났던 엘윈숲으로 가보았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면 꼭 영원이가 다시 올 것만 같다.

물빵을 먹으며 기다려 본다.

혹시라도 접속하면 이곳으로 올지도 모른다.


=============


"저기... 님."

".........?"


아까부터 날 물끄러미 바라다 보고있던 나엘 만랩사제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죄송한데요.... 생석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네......."


나의흑마는 특유의 모션과 함께 최상급생석을 하나 만들어

사제에게 건넨다.


예전에... 영원이도 생석때문에 고생좀 했었지.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쓴웃음이 난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누굴 좀 기다?? ㅎ"

"아..... 혹시 가덤가셔서 호드랑 쟁하실 생각 없으세요?"

"별로요. "


뭔가 한마디 더하려는 듯 하더니

이내 포기한 듯

사제는 작별인사를 하고는 뒤돌아서 사라진다.


...마음한구석이 왠지 개운하지 않다.

뒤돌아서 뛰는 모습이 어딘가 영원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인벤을 열어 영혼조각 갯수를 세어본다.


'하나, 둘...... 서른 넷.'


이 정도면 어느정도 밥값은 할 것도 같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 사제에게 귓말을 넣는다.


"저기... 팟초해 주세요. 잠시만 하다 갈께요."


단지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영원이와 닮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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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인벤 가득했던 영혼조각이 다 떨어져갔고

나는 정비를 위해 무법항 은행창고에 캐릭을 이끌고 갔다.


얼라이언스 한개 공대에게 밀려

그롬골 주둔지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던 호드들이

어느새 하나둘 모여 4~5개 팟 규모정도가 되더니

그리고 그 적은 인원으로도 더 많은수의 얼라와 맞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난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호드란......'


끈질긴 도전과 끈끈한 뭉침.

그것만으로도 호드는 충분히 강했다.

'호드는 근성이다!'

누가 맨 처음 했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틀린말은 아닌듯 하다.


은행에 넣어두었던 일치와 일마를 열개씩 챙긴다.

채찍뿌리와 용숨결도 세묶음씩은 챙겨야 할 듯하다.


"후........."


그래도 영혼조각이 없는 흑마는 앙꼬없는 찐빵이다.

임프만 데리고 쟁을할 것을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다 쓰지말고 조금만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


"현민이니?"

"아... 석호구나."


갑자기 울린 전화벨소리.

핸드폰 수화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은행앞에 캐릭을 세워둔 채로

나는 담뱃갑과 라이타를 챙긴채로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행여 튕기지 않도록 와우에는 매크로를 걸어놓았다.

한참 전투중에 주문석이나 화염석, 물빵등이 없어져버리면 곤란하다.


"뭐하냐? 이런 좋은 일요일에."

"왜..... 짜파게티라도 끓여주게? ㅎ"


나의 썰렁한 농담에 친구는 잠시 말을 잊는다.


"아휴... 어떻게 넌 고등학교때랑 지금이랑 변한게 없냐.ㅋㅋ"

"그러는 너는.ㅎㅎ"


잠시 이런저런 안부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어본다.

오래된 친구란, 그 목소리만으로도 편안함을 준다.


친구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나와라. 술이나 한잔 하자."

"..............응? ;;"


내가 가만히 시침을 떼자, 곧바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녀석이다.


"임마, 네 생일인거 내가 모를줄 알아? 빨랑 나와."

"................"


그랬다.

오늘은 내 생일.

한여름 퇴약볕아래 내가 세상밖으로 처음 나온 날이다.


"너 올해도 그냥 보낼래? 내가 애들 다 불러놨으니까... 후딱나와."

"..............됐다. 그냥 한걸로 치자."


누굴 만나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고 싶을 뿐이다.


==============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

나온김에 집근처 김밥천국으로 가서 간단한 요기를 했다.

김밥 두줄에 라면 하나.

생일날 먹는 식사로는 볼품없지만

이거면 족하다.

그다지 축하받고 싶지도 않은 날이다.


=========


집으로 들어와보니

모니터는 어느새 절전모드로 돌아가 있다.

마우스를 움직여 모니터 전원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해 본다.

다행이 튕기지는 않은 상태.

물빵이며 주문석, 화염석등이 사라지지 않은것을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응?"


여러페이지로 나눠놓은 채팅창중에 귓말페이지가 깜빡깜빡거린다.

아포에 있을경우에 정신없이 올라가는 여러 글씨들로

놓치고 지나가는 일이 없도록

나는 채팅창 필터를 일반/파티말/귓속말

이렇게 세가지로 구분해 놓았다.

나중에 길드가 생기게 되면 길드말도 구분지어야 하리라.


"헉........!!"


[영원의나라]님의 귓속말 : 삼춘!!! >ㅂ< //
[영원의나라]님의 귓속말 : 나 왔어효!!! ㅎㅎ
[영원의나라]님의 귓속말 : 삼춘~!!! 삼춘 나와라 오바~!! 'ㅁ')/
[영원의나라]님의 귓속말 : 쳇쳇!! 계속 자리비움이네!! ;ㅁ;
[영원의나라]님의 귓속말 : 삼추우우우운!!! 어디가써효!!! ;ㅁ;)/
[영원의나라]님의 귓속말 : 삼춘 바보~~ 멍충이~~ ;ㅁ;ㅁ;ㅁ;ㅁ;ㅁ;
[영원의나라]님의 귓속말 : 사아암추우우우~~~~~~운!!!



그랬다.

그렇게 찾아헤매도 없던 영원이가...

그토록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던 영원이가...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로그인을 한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잊은채 멍하니 있었다.

창밖으로 매미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던

한 여름, 나의 생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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