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14
철이: 신이병. 아니지 신일병이 휴가를 나갔습니다. 배 아픕니다.
녀석이 그녀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 갖다 준다고 합니다.
그 녀석 돌아올 날이 기다려집니다.근데 녀석이 짬밥이 좀 된다고 요즘
저한테 조금씩 개깁니다. 어떡할까요?
민이: 호호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들 반가워하는군요.
일학년 때 교양을 같이 들었던 친구와 배낭여행갈 계획을 잡았습니다.
여자 둘이서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호텔팩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귀여운 현석이가... 참 현석이가 제가 잘 봐준 후배이름입니다. 그녀석이 휴가
를 나왔다고 합니다. 한번 봐야지요. 얼굴이 많이 까매졌네요. 그리고 좀
어른스러워도 보입니다. 근데 녀석이 나보고 대뜸 성개철이를 아느냐고
물어봅니다.그래서 혹시 전산과 성계철이를 말함이냐고 되물었지요.
호호 맞다는군요. 자기 내무반 고참이라고 합니다.
정말? 세상 좁구나... 그와는 뭔가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봅니다.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녀석이 먼저 물어보았는데 제가 더 물었지요.
내가 그의 애인이라는군요.
호호 그리고? 재밌고 정은 많은데 자기를 너무 못살게 군다고 합니다.
단지 날 안다는 죄로...
호호 또? 자기 편지에 그의 편지도 같이 보냈다고 했습니다.
정말...? 동아리 방에서 후배의 편지는 봤지만 그의 편지는 * 못했었는데...
그리고 녀석이 나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하니까, 하나 갖다 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다이어리에서 내가 일본 있을 때 찍은 사진을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었다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지요.
"정말 아는 사이에요?"
"조금."
"애인 사이는 아니죠?"
"그건 노코멘트."
참 많이 잊고 있었는데 그는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후배가 그의 얘기를 했을 때 그가 어떻게 사는지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게
떠올려졌거든요.
여행을 마치고 오면 편지를 보내야겠습니다.
그의 모습이 이년전 처음 그를 보았을 때처럼 설레입니다.
철이: 신일병이 돌아왔습니다. 이 녀석이 진짜 개기는 데요.
사진을 가져왔기는 한데 주기가 아깝다는군요. 이 녀석이 간이 배밖으로 나왔나?
그녀를 만났답니다.
"엉? 그녀가 돌아왔어?"
"예 그렇습니다."
"너 설마 내 얘기는 안 했겠지?"
"애인이 맞냐고 물어봤습니다."
"야~. 하 죽같네...:"
참말로 난감한 녀석입니다. 이제 그녀를 보면 무조건 도망을 가야겠군요.
이 녀석을 받아버리고 영창을 가 버려?
그런데 녀석이 몰래 그녀의 독사진을 훔쳐왔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군요. 헤헤.. 이것 때문에 봐줬다.
이제 잠자리에 들면서 그녀를 그리기가 쉬워졌습니다.
그녀는 더 예뻐졌군요. 소녀티에서 이제는 완연한 아가씨의 모습입니다.
민이: 현석이가 군대로 돌아갔습니다. 조금 섭하군요.
호호 비슷한 녀석들끼리 잘 살고 있나봅니다.
석이가 그의 욕을 많이 하긴 했지만 친한 사인거 같았습니다.
오늘은 내일 유럽으로 떠날 일과 그의 생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철이: 또 여름이 지쳐 녹음이 들고 그 또한 바래버리면 가을이 오겠군요.
날씨는 점점 더워지는데 이런 날씨에 유격훈련이라니...
신일병 죽으면 안돼... 첫해니까 많이 힘들 겁니다.
땀으로 지친 몸이 끓고 있습니다.
잠시 쉬면서 녀석한테 물을 건네었습니다.
자대로 돌아가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민이: 런던의 어느 호텔에서 같이 떠났던 사람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다들 좋은 사람들 같이 보이는군요. 여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남자들은 군대문제 때문에 해외여행에 에로사항이 있다는군요.
호호 그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후배녀석을 괴롭히고 있을까요?
철이: 일주일동안의 유격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하하 이제 곧 제가 병장이 됩니다. 병이 아니라 장입니다.
날씨가 더워 뭐 별 할 일도 없습니다. 풀이나 잘랐지요.
이눔의 풀은 뽑아도 끝이 없습니다. 빨리 휴가날짜가 와야하는데...
민이: 호호. 이런 곳도 있구나. 놀랍습니다. 친구와 전 참으로 놀랐습니다.
다 벗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기분 좋은 잔디밭에 앉고, 누워 옷이란 옷은 다 벗어버리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에그 민망해라. 남자가 이상한걸 덜렁거리며 우리 앞을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해가 떴나봅니다. 다른 날보다 사람이 많다고 하는군요.
난 지금 뮌헨의 잉글랜드 가든에 와 있습니다.
이런 멋(?)있는 곳에 와 사진을 안 찍으면 안되겠죠?
호호 저기 남자, 여자가 옷을 다 벗고 나란히 누워있군요.
찍어볼까요?
그 둘을 앞에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헤이. 모하는기고." (독어나 불어) -_-;;;
"엉?"
"여기서 사진찍으모 오짤라고 그러는기고 기분 더럽데이..." (독어나 불어) -_-;;;
"무슨 말하는 거야. 홧?"
아무래도 누워있던 둘이가 화가 난거 같습니다.
여기서는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나봅니다.
"에.. 위 아 투어리스트."
"웨어 라 퍼럼. 아 유 코리언?"
왜 그 사람이 우리보고 바로 한국사람이냐고 물었을까요.
기분이 별로네요. 홀라당 다 벗은 놈하고 이렇게 이야기까지 하게 될 줄이야.
녀석의 표정은 분명 기분이 좋지 않은거 같았습니다.
"와타시 니혼징데스 간곡짱데와 아리마셍."
"홧? 아 유 제퍼니스?"
"오예. 아 임 제페니스."
친구와 둘이는 바로 일어서 도망을 쳤지요.
국적을 속인 건 가슴아프지만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진 말아야겠기에...
사진 나오면 스캔해서 인터넷에다 띄워버려야지.
철이: 말병장한테도 면회를 오는군요. 최고참 면회 따라나가서 뭐 좀 얻어먹고 왔습니다.
신일병 생각이 나서 몇 개 줏어다 주었더니 좋아합니다. 사진 때문이야 임마.
민이: 조명에 노랗게 물든 파리의 에펠탑을 보며 저녁을 들고 있습니다. 아름답군요.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한국은 새벽이겠군요.
여기는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은 한국은 참 덥겠습니다.
우연 #15
철이: 새벽하늘 별이 참 많습니다. 총알도 없는 총을 들고 화약고를 지키고 섰습니다.
부대 뒤의 산에 올라서면 서울이 보일까요? 지금은 빛을 잃고 잠들어 있겠군요.
새벽이라 한여름인데도 시원합니다.
민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십일도 채 못되었지만 시차적응이 안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내내 졸았습니다. 피곤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샤워부터 하고 한숨 푹 자야겠습니다.
사진 찾고 여행 갔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도 봐야되고 며칠간 좀 바쁘겠습니다.
철이: 딱 열흘 남았습니다. 하하 휴가 나갈 일 말입니다.
날씨는 덥고 졸음이 많이 옵니다.
신일병이 내 눈치를 보며 어디를 갑니다. 불쌍한 놈. 넌 언제 제대할래?
민이: 학교 동아리 방을 갔더니 현석이한테서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치. 그 몰래 편지 쓰느라 글씨가 엉망이니 이해해 달라는군요.
그가 나한테 편지 쓰는 걸 보면 또 그의 편지를 자기 봉투에다 넣어 보낼 것 같다며
말입니다.
이 녀석아.
내가 너한테 잘해준 것 중 가장 큰 이유가 그와 닮은 분위기 때문이었는데...
그래 잘했다. 그의 편지가 있었다면 너의 이 편지는 푸대접을 받았겠지?
친구가 녀석 면회한번 가자고 합니다. 그럴까요? 잘하면 그도 볼 수 있겠군요.
날짜를 잡았습니다.
철이: 드디어 휴가를 나갑니다. 기분이 ?윱求? 장장 팔개월만에 나가는 겁니다.
중간에 포상휴가도 있었지만은 대대장이 바뀌는 바람에 취소가 되었습니다.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휴가에 붙었거든요.
내 팔 한쪽에 짝대기 네개가 달렸습니다. 나도 이제 병장입니다.
성병장. 어감이 좀 이상하군요.
"성병~장님 잘 다녀오십시오."
신일병 저 녀석을 한대 패버리고 나갈까요?
민이: 야했던 사진들은 사진관에서 한 장도 현상을 해주지 않았군요.
혹시 사진관 아저씨가 자기만 뽑아 가지고 밤마다 보는 건 아닐까요?
며칠동안 여행 갔다 온 사람들과 재밌게 놀았습니다. 학교는 못 가봤지요.
참 후배누구를 꼬셔야 하는데요. 석이 면회 갈려는데 그 석이가 좋아했던 여자거든요.
자기가 왜 가냐며 빼고는 있지만 갈 것
같습니다. 어감이 그랬어요.
철이: 학교는 또 썰렁합니다. 한창 방학중이라... 앗 이럴 수가?
자전거 타고 다녔던 친구가 군복을 입고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휴가
나왔나봅니다.
핫핫하. 녀석은 이제 짝대기 세 개군요. 같이 놀아주기가 그런데요.
자기도 심심했나 봅니다.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로 짤래짤래 다가왔습니다.
그래 한잔 해. 학교에 소주를 사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낯익은 건물앞 벤취에 앉아 술을 먹었습니다.
둘이서 밤늦게까지 소주 몇 병을 들이켰습니다.
하하. 지금 심정 같으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도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마주쳐지지 않았습니다.
캬 좋다.
읔. 벤취위에서 자다가 밤에 수위아저씨한테 걸렸습니다.
녀석은 어딜 간거야?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는데 할증료를 물어야 했습니다.
민이: 사대앞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갈 사람은 차있는 남자선배하나, 나와 친구. 그리고 녀석이 좋아하는 여자후배 이렇게
넷입니다.
일찍 출발하려고 8시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벤취밑에서 군복 입은 누가 자고 있습니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 줄 모르고 자고
있습니다.
낯이 익군요. 자면서도 모자는 똑바로 쓰고 잡니다.
선배오빠가 그 모습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찹니다.
자기 때는 안 그랬다며 겨우 상병 휴가나온거 같은데 빠져도 너무 빠졌다고 합니다.
그런 거 같네요.
부대로 갔습니다. 10시가 조금 못되었습니다.
석이가 참 반가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럴 겁니다. 예쁜 여자가 세명이나 왔는데요.
여자후배는 안 올려고 하더니 말은 자기가 다하는군요.
고개를 돌려 부대를 보았습니다. 이곳에서 그가 군생활을 하는구나...
군인들이 왔다갔다합니다. 새까맣게 모두들 탔습니다.
그의 소식이 궁금하군요.
"석아? 너 고참선배는 지금 뭐하니?"
"누구요? 성병장님이요?"
"응. 못 불러내니? 먹을 것도 많은데..."
"불러낼 수 있죠. 아 맞다. 사흘전에 휴가 나갔는데요."
치. 그와는 자주 우연으로 마주쳐지기도 하지만 어긋나기도 자주 하네요.
그가 그럼 서울에 있겠군요. 돌아가면 학교 도서관에 가봐야겠습니다.
철이: 역시 나는 캐주얼이 잘 어울립니다. 스포츠 머리에 핸섬한 얼굴...
이의 제기하시는 분들 우리 어머니한테 물어보세요.
할 일도 없는데 도서관이나 가 볼 랍니다.
자전거 친구 녀석은 자길 혼자 두고 집에 가버렸다고 엄청 열받아 하더군요.
내가 일어났을 때 그는 없었는데...
그 녀석하고 도서관 휴게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제법 늦은 오전이지만 방학이라 도서관에 학생들이 없네요.
어라? 호호 아니지 하하. 그녀가 예전에 그녀가 앉던 자리에 있네요.
또 주무시고 있군요.
훗. 지나쳤던 예전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이 담긴 모습입니다.
한동안 서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휴게실로 왔습니다.
커피가 또 맹물이군요. 방학 때는 관리를 잘 안 하나 봅니다.
친구가 왔습니다. 그도 평상복입니다.
그가 나를 본체만체 자판기 앞으로 가서 동전을 집어넣는군요. 그래 집어넣어 봐라.
녀석이 졸라 투덜댑니다. 알면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잠시간 녀석과 앉아 대화를 했습니다.
불쌍한 놈. 아직 제대할 날이 일년도 더 남은 엄청 불쌍한 놈.
녀석이 편지나 주고받자고 합니다. 애인처럼 보내주기로...
자기는 여자처럼 글씨를 잘 쓴다고 합니다. 녀석이 글씨를 예쁘게 쓰는 건 내가 알지요.
하하 나도 글씨는 좀 예쁘게 씁니다.
군발이들끼리 편지주고 받기가 그렇지만 내무반에서 내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도대체 여자한테 편지가 오지 않습니다. 녀석도 그렇다는군요.
그래 작전상 후퇴다.
예? 그 말은 여기서 쓰는 말이 아니라구요? 군발이들이 다 그렇지요.
그래 상부상조다. 앗 그녀입니다.
그녀가 자판기 앞으로 생각 없이 왔습니다. 아직 저를 못 봤습니다. 보면 큰일나지요.
내가 그녀의 애인이라고 사칭한걸 신일병이라는 놈이 그녀에게 다 말했다고 했습니다.
녀석 뒤에 모습을 숨겼습니다.
우쒸. 참 친절하다 너. 대뜸 녀석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요. 그 자판기 맹물밖에 안나와요."
"예?"
그녀가 날 봤습니다.
처음에는 설마 날 알아보겠냐고 생각을 했습니다.
신일병이 말한 놈이 누군지 알게 뭡니까?
그런데 그녀는 날 안다는 듯 '저놈이 고
놈이구나.'하는 듯 웃으며 나를 계속 쳐다봅니다.
병장까지 달고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달아나야 겠군요.
빨리 따라 나와 임마. 친구녀석한테 그소리만 남겨두고 그녀를 휭 지나쳐 도서관을
빠져 나왔습니다.
민이: 도서관에 나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말입니다.
휴가 나와서 도서관 나올 확률은 적지만 그래도 도서관에서 군복 입은 사람들을
간혹 봤습니다.
예전에 내가 앉던 자리가 비었군요. 그가 앉던 자리도 비어 있습니다.
그 자리가 매일 그가 앉아 공부하는 것처럼 그리움을 주네요.
공부를 할려고 온 것이 아니니 공부가 잘 될 리 없습니다. 졸음이 옵니다.
어머 또 자버리고 말았군요. 잠을 깨야겠습니다. 커피나 한잔하고 올렵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을려고 하는데 누가 맹물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훗. 돌아봤습니다.
낯익은 얼굴... 그리고 그 사람 옆에는 그보다 더 낯익고 그리운 얼굴... 그가 있었습니다.
그는 내 기대처럼 도서관에 나와 있었습니다.
군복차림도 아닌 예전에 많이 보았던 옷차림.
그가 내 눈망울 멋쩍은 듯 피해버립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일어서 나를 휑하니
지나쳐 달아나 버렸습니다.
'바보.' 그의 친구도 곧 뒤따라 나갔습니다.
그 둘이 있었던 자리에는 맹물이 담긴 종이컵 두개가 그 둘을 대신해 놓여 있습니다.
훗. 그의 친구가 그에게 예전에 내가 당했던 맹물 커피의 복수를 해주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