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세계 자전거 매니아들 사이에 화제가 된 신제품이 있었습니다. 새로나온 자전거냐구요? 바로 뿌리면 빛이나는 발광 스프레이 입니다. 야간 주행중에 발생하는 자전거 사고가 영국에서만 한해에 19,000건에 이른다고 하네요. 자동차와 같이 도로에서 주행하는 자전거다 보니 야간에 자전거를 인식하지 못한 자동차에 의해 추돌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답니다.
이번에 출시된 발광 스프레이는 기존 야광 페인트와는 달리 한번 뿌리면 10시간 동안 발광이 지속되고 물로 쉽게 씻어낼수도 있어서 자전거 뿐만이 아니라 옷이나 가방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번 뿌리는 스프레이 속에는 아주 작은 수천개의 반사 구면체들이 들어 있어서 약한 빛에도 빛이 번쩍번쩍 반사가 되어 흐린날씨에도 매우 효과적이랍니다. 야간 주행의 위험에 시달리는 바이커들에게는 정말 요긴한 제품이겠죠?
그런데 이 신제품 스프레이가 화제가 된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스프레이를 개발한 회사인데요, 스웨덴 자동차 회사인 볼보(Volvo) 입니다. 아니 자동차 회사가 갑자기 왜 자전거를 위한 발광 스프레이를 개발한걸까요? 자전거 매니아들은 이 스프레이 출시를 매우 반기면서도 한편 왜 자동차 회사가 이 제품을 만들게 됬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입니다. 혹시 자동차에 뿌리는 스프레이를 개발하기 전에 시험삼아 자전거 스프레이를 미리 개발해본걸까요?
볼보가 이 스프레이를 개발하게 된데에는 사실 볼보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전략적 결정이 배경에 있습니다. 볼보라는 브랜드를 앞으로 어떻게 포지셔닝 할 것이냐에 대한 오랜고민끝의 결정이었죠. 차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분들을 잘 아시겠지만, 볼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안전한 차" 입니다. 1927년 스웨덴에서 처음 차를 만들기 시작한 볼보는 스웨덴 정부 특유의 엄격한 안전 규정과 더불어 스스로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신기술들을 선도적으로 개발해왔습니다. 세계 최초로 1940년대부터 합판유리를 설치해서 유리가 깨지더라도 파편이 운전자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했을 뿐 아니라, 지금 형태의 안전벨트를 최초로 개발하여 보급하였습니다.
Three-point safety belt라고 불리는 안전벨트의 형태는 지금은 모든 자동차 회사가 따르고 있는 형태이지만, 볼보가 1959년에 처음 개발하였고 이후 특허만료로 전세계 모든 자동차 회사가 반세기가 넘게 사용하고 있는 안전벨트 입니다. 볼보가 처음으로 도입해서 자동차의 표준이 된것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1964년에 유아들을 위한 후면카시트를 처음 개발하였고 1978년에도 유아들을 위한 부스터 싯을 처음 개발하면서, 아이의 안전에 가장 선도적으로 앞장서는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를 40년전부터 쌓아왔습니다
이후 측면충돌에서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Side Impact Protection System, 측면에어백을 1995년에 도입하였고, 3년후, 운전자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Head-protecting airbag을 도입하였습니다. 볼보의 Head-protecting airbag은 측면충돌시 운전자의 사망률을 40%까지 낮추고 뇌충격을 55%까지 혁신적으로 낮추었다데 기여해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운전자의 수를 줄이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볼보가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최초로 도입하거나 표준화시킨 기술들은 이외에도 수십가지가 넘습니다. 볼보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기술만 나열해도 30가지가 넘고 이를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거 같네요.
이러한 볼보의 끊임없는 안전을 향한 노력을 통해, 볼보는 소비자들의 인식속에 가장 안전한 차라는 포지셔닝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젊었을때 날렵한 스포츠카를 타던 사람들도, 결혼해서 아이를 나으면 볼보를 타지 않을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요. "안전성"과 "견고함"은 전세계 자동차 회사들 중에서 오직 볼보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볼보의 안전에 대한 포지셔닝이 볼보의 수익성을 보장하지는 못했습니다. 혼다의 Acura, 도요타의 Lexus와 같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볼보는 9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기 시작했는데요, 볼보만큼 안전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가진 일본 자동차들에게 유럽시장에서도 그 지위를 위협받게 됩니다. 결국 볼보는 1999년에 자동차 부문을 미국의 포드자동차에 넘기고 버스, 트럭과 같은 상용차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스웨덴 자동차 산업의 자존심인 볼보가 이제 미국 포드 자동차로 넘어가게 된 것이지요
포드의 손에 맡겨진 볼보는 창사이래 80년동안 없었던 큰 전략적 변화를 시도합니다. "안전성"의 이미지에서 "세련된" 이미지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지요. 볼보를 손에 쥔 포드는 볼보의 안전기술들을 포드의 제품에 적용하면서, 한편 볼보의 지루한 디자인을 혁신시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포드의 의도는 기존 볼보의 안전성에 세련된 디자인을 더해서, 볼보가 좀더 고급자동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BMW와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었죠. 포드의 볼보에 대한 전략은 야심찼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동차가 더욱 세련되졌으니, 벤츠와 경쟁해서 꿀릴게 없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볼보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소비자의 인식은 "1+1 = 2" 가 되는 수학처럼 "볼보의 안전성 + 세련된 디자인 = 벤츠" 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비자의 인식속에 럭셔리 자동차 시장은 이미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가 장악하고 있었고 볼보는 그 인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실패는 고급 SUV인 XC90의 출시였습니다. 벤츠와 BMW가 장악하고 있는 럭셔리 SUV 시장에 볼보가 XC90으로 고전하고 있는 동안 닛산과 도요타가 안전성을 강화하면서 기존 볼보의 시장까지 야금야금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볼보의 시장 점유율은 점차 하락하였고 포드는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되던 2008년, 포드는 볼보를 인수한지 10년만에 다시 매각하기로 결정합니다. 60억달러에 시장에 다시 나온 볼보는 여러 자동차 회사들의 무관심 속에 결국 중국 자동차 회사인 Greely Holding Group에 18억달러에 매각되었습니다. Greely가 볼보를 인수한것은 자동차 업계에서 큰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2010년 Greely가 볼보를 인수할 당시, 볼보의 매출액은 Greely 매출액의 5배가 넘었습니다. 총 직원수도 볼보가 1.5배 많았지요. 게다가 중국 자동차 회사가 유럽의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다는 사건이 세계 자동차 업계를 놀라게 할만 했습니다.
중국 자동차 회사에 인수된 볼보. 전통적으로 가장 안전한 자동차로 포지셔닝 하던 볼보는 포드를 만나 세련된 디자인으로의 포지셔닝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다시 새로운 변화에 직면하게 됩니다. 볼보가 다시 원래의 안전성 포지셔닝으로 회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포지셔닝을 시도 할 것인지 세계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볼보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갈등과 논의가 뜨거웠습니다. 특히 볼보를 인수한 Greely의 회장 Li Shufu와 볼보의 최고경영자 Hakan는 볼보의 포지셔닝에 대해 뜨겁게 대립하게 됩니다.
"볼보는 프리미엄 럭셔리 자동차로 포지셔닝 해야 한다"
볼보의 실소유주인 Li 회장은 볼보의 미래가 중국시장에 달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프리미엄 럭셔리 시장은 중국에서도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는 시장이기에, Li 회장을 볼보를 통해 중국의 고급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Li 회장이 볼보를 인수한 이유도 바로 이 고급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기존 Greely 브랜드로는 메르세데스, BMW와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했죠. 그래서 볼보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해서 브랜드 파워를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Li 회장은 볼보가 더욱 세련되고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벤츠와 BMW와 같은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로 볼보가 재탄생 해야 한다는 것이 Li 회장의 주장이었습니다
"볼보는 안전성 포지셔닝으로 돌아가야 한다"
볼보의 CEO인 Hakan은 Li 회장과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드가 실패했던 사례에서처럼, 볼보는 BMW나 벤츠와 경쟁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볼보의 "안전성" 그리고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절제미"가 앞으로 볼보가 추구해야 할 포지셔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중국시장이 볼보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더이상 예전처럼 값비싼 자동차로 자신의 신분을 뽐내려는 "Show-off" 소비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도 안전성과 절제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결국 볼보가 추구해야 할 시장이 바로 이 소비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 vs. 안전하고 절제미의 브랜드. 볼보는 결국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동영상을 보시고 나니, 그 답이 보이시나요? 2014년, 볼보가 Greely에 인수된지 4년만에 볼보는 중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Volvo Vision 2020이라고 불리는 선언에서 "2020년부터 볼보로 인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도록 한다" 라는 혁신적인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볼보의 안전성을 몇퍼센트 높이겠다, 안전성을 높이는 어떤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차원의 선언이 아니라, 볼보로 인한 사망자가 단 한명도 생기지 않도록 회사의 모든 역량을 안전성에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처럼 볼보는 백년 가까이 볼보를 지켜온 "안전성"의 포지셔닝으로 회귀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포드가 볼보를 소유하는 동안 세련된 럭셔리 자동차를 추구하기도 했고, Greely에 인수되어 중국시장공략을 위한 프리미엄 럭셔리 자동차를 추구할뻔 하기도 했지만, 결국 전세계 소비자들의 머리속에 깊이 박혀있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동차"의 포지셔닝에 회사의 미래를 걸기로 한 것입니다. 볼보가 처음 설립되는 1927년에 설립자가 "Cars are driven by people. The guiding principle behind everything we make at Volvo, therefore, is and must remain SAFETY"라고 선언했던 것으로 볼보는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볼보가 자전거 발광 스프레이는 개발하게 된 것은 바로 가장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한 계획의 일환 입니다. 2020년에는 볼보 자동차로 인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게 하기 위해서, 볼보와 충돌하는 자전거도 한대도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죠. 실제로 볼보는 자동차 사고의 수백가지 모든 유형을 분석해서 각 유형별로 사고를 줄이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 자전거 스프레이 개발 소식이 나왔을때, 사람들은 볼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바이럴 마케팅의 수단일 것이라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볼보의 Vision 2020을 이루기 위한 치밀하고도 완벽한 계획의 일환이란 것을 깨닫게 되고서는 과연 볼보라고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볼보의 브랜드 포지셔닝에 대한 결단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볼보의 이번 결정이 볼보가 안전성에만 매진하다가 일본 자동차 회사의 공격에 침몰하여 포드에 매각되었던 것 같은 20년 전의 과거를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로서 니치 마켓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과거의 전성기를 회복할 수도 있겠죠. 볼보의 브랜드 포지셔닝에 대한 이번 사례가 흥미로운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예측보다, 브랜드 포지셔닝이 회사의 전략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를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브랜드 포지셔닝이 곧 전략이다 라고 말할수 있을 만큼, 포지셔닝에 대한 결정 이면에는 회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경쟁상황, 자사의 강약점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내부의 격력한 토론이 존재합니다. 그 수많은 분석의 노력과 결정이 단 한마디의 "안전성" 이라는 포지셔닝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일반 소비자들은 "안전성" 이면에 녹아있는 배경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볼보가 개발한 자전거용 발광 스프레이. 그 이면의 이야기를 이해하면 더 재미있지 않나요? 포드에 매각되었다가 다시 중국 자동차 회사에 매각된 아픈 역사, Li 회장과 Hakan 사장의 볼보 브랜드에 대한 갈등, 그리고 볼보로 인한 사망자를 한명도 없게 만들겠다는 야심찬 비전. 이 모든 이야기들이 스프레이 병에 가득 담겨있는것 같습니다.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는 앞으로도 작은 사실 뒤에 숨어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드리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출처 및 동영상보러가기: http://blog.naver.com/hbogi/220319141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