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 밝아온다.
어느새 밖에서 푸른빛이 새어 들어온다.
화장실에서의 2차전을 끝내고 먼저 샤워를 도망치듯 끝냈다.
채 물기를 다 닦지도 않고 화장실 앞이 떨어진 물로 흥건했다.
정말이지 도망치듯 나왔다.
그 전에 만나던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던 샤워와는 너무 다르다.
샴푸도 해주고, 몸 구석구석을 바디샴프를 사용해서 타월없이 손으로 닦아주곤했다.
미끌거리는 촉감도 좋고, 사랑했던 그녀와 함께하는건 무엇이든 좋았다.
하지만 오늘 같이 한 샤워는 샤워라기 보다는 정말 씻는 행위에 가까웠다.
복층으로 올라가 뱀 허물처럼 놓여있는 바지를 입고,
한쪽에 납작히 눌려있는 티셔츠를 탁탁 털어입었다.
양말 옆에 내 팬티가 말려있었고 대충 주머니에 쑤셔넣고 나설 준비를했다.
아라비안처럼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그녀가 올라왔다.
"미안한데 나 먼저 갈게, 내일 아침에 조기축구 가기로했어, 아무것도 챙겨온게 없어서.."
얼마나 말같지도 않은 핑계인가..그녀도 눈치를 챘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내일은 뭐해? 나 운동끝나고 올테니까 점심이나 먹을까?"
이것또한 맘에없는 개 소리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뱉은 단어들이다
찌그려트려 놓은 맥주캔을 휴지통에 버리고 남은 과자 입구를 돌돌말아 한쪽에 세워두었다.
최소한의 예의를 이런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신발을 신고 인사를 건내자 그녀는 조심히 가라며 가까이 다가왔다.
뭐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나 싶을 정도로 다가왔다.
당연히 가벼운 입맞춤정도는 해야하는 거리다.
방금전 두번이나 몸을 섞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뒤돌아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삐리리릭 소리와함께 돌아가는 자물쇠소리는 매우 컸다.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아까 그녀를 만나러 올때 걸린시간보다 훨씬 빨리 올수있었다.
집에도착해 주머니에 있는 양말과 팬티는 세탁기에 던져두고바지는 대충벗고 잠을 청했다.
13만원을 아낀거 말고는 이대역 앞 오피에 다녀온거랑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고, 대체 내가 왜그랬나 싶은 후회감만 밀려왔다.
담배한모금 피우고 잠이들었다.
일어나니 11시가 훌쩍 지났다.
조기축구따위는 작년말에 발목인대 수술을 한 이후로 6개월간 나가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만 그녀에게 연락은 하지 않았다.
같이 밥먹기로 내뱉은 이야기가아무 의미없는 이야기인걸 그녀도 아는지 카톡도 전화도 한통 울리지 않았다.
토요일 예능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다시보고
어느새 개그콘서트 밴드의 연주가금방 월요일이 오고있음을 알렸다.
평소처럼 출근을 했고, 기분이 너무 별로였다.
어렸을땐 주말을 보낸 여자이야기, 그 여자와 잠자리, 체위까지 약간의 픽션을 보태이야기하는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의미없는 이야기들이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사무실에 출근한지 1달쯤 된 여직원이 말을걸어왔다
"퇴근하고 김대리랑 고기먹기로 했다면서요? 저도 같이 가면 안돼요?"
나보다 1살 많은 옆 부서 대리였다.
나도 대리다.
퇴근하고 같이 고기를 먹기로한 후배도 남자 대리다.
대리끼리 회식한번 하자는 그녀의 제안을 쉽게 수긍했다.
작고 까무잡잡하지만 가끔 입고오는 아이보리색 원피스는
까무잡잡하고 눈이 동그랗던 그녀가 매력적으로 보이게하는 일종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그런것이었다.
예정보다 조금 늦은 7시 반쯤,동그란 양철식탁에 셋이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무실과 걸어서 5분 거리였고, 차는 사무실 앞에 있었다.
후배 김대리는 남양주 진접에 살았고, 이 여자대리 또한 퇴계원쪽에 살았다.
다들 한살씩 터울이라 회사 뒷얘기, 선배 뒷담화등을 하며 쉽게 친해졌고,
이렇게 술을 마시면 우리집에서 종종 자고가던 남자 김대리는
무슨 일이 있는지 전화를 받으러 나간지 20분째 들어오지 않는다.
양철식탁위에 뒤집혀있던 핸드폰 진동소리가 크게 울렸다.
연희동 그녀의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