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우리는 별말 하지않아도 매트리스에 함께 누웠다.
약 9개월전쯤이 마지막으로 이 매트리스에 누웠던 때가 아닌가 싶다.
이 매트리스와, 내가 사는 아파트를 오가며 약 3개월 가까이
많게는 일주일에 서너번씩 잠자리를 함께했다.
말로만 듣던 그녀의 큰 가슴을 처음 움켜쥘때의 느낌은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쥐고있는 그녀의 가슴도,
별로 듣기좋지 않았던 쇳소리같던 그녀의 신음도,
그때와는 뭔가 좀 달랐다.
가슴에는 그전에 없던 작은 십자가 모양의 타투가 있었고,
신음소리는 야동에서나 들어봤을법한 소리였다.
꽤 수북했던걸로 기억되는 그녀의 아랫도리도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최근 헤어졌다던 군바리와도 이곳에서 함께 했겠지.
하지만 별로 개의치않았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라면 모를까.
알록달록하게 바뀐 매트리스 커버 아래쪽에 있는 큼지막한 남자 슬리퍼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그녀의 몸을 사랑했다.
아니, 여자의 몸이라면 다 사랑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참 쓰레기같이 굴었다.
최근 한달넘게 여자와의 잠자리가 없어서였을까, 꽤나 강렬한 20분여정도가 흐르고
배 위에 마무리를 하자, 그녀는 옆에놓인 티슈를 5장 정도 뽑아들어 기다렸다는 듯이 닦아댔다.
난
갈증이 밀려왔고 매트리스가 있는 복층에서 내려와 아래층 냉장고로 향했다.
물을 한모금 머금은채로 화장실에 들어가서 땀과 아랫도리에 누구것인지 모를 끈적이는 것들을 닦았다.
거울을 보자 나도 모르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
그녀와 작년 말까지만해도 꽤나 많은 밤을 보냈다.
그때마다 지금처럼 대충 중요부위를 씻을때면, 내가 잘하고 있는짓인가 몇번이고 되물었다.
결론은 늘 같았다.
말그대로 양아치, 나쁜놈이었다.
몸을 섞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녀의 대한 뭔지모를 감정은 조금씩 사그러졌고,
연락하는 빈도수도 함께 사그라질수밖에 없었다.
취기가 오르면 여느때처럼 그녀를 찾았고, 그녀는 날 받아주었다.
'왜 나쁜남자에게 여자가 끌리는가'에 대한 해답도 그때 어느정도 알게되었다.
어지간 해서는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무렵
잔뜩 취기가 오른채 붉은 얼굴을 한 그녀가 집앞으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물었다.
'우리가 무슨사이인지 확실하게 하고싶다'
내지는
'내가 너에게 무엇이냐'
올게 왔구나 싶은 질문들이었다.
'널 사랑한적도 없고, 널 좋아한적도 없다.
그냥 몸이 섞고싶을때 연락했고, 그때마다 받아준 니가 바보 아니냐'
라는 솔직한 대답은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뭔지 모를 알량함에 나쁜사람으로 기억되긴 싫었던 모양이다.
"미안해, 나도 요즘 그 생각에 힘들어, 우리가 과연 잘 만날 수 있을지..
우리가 어린 나이도 아닌데,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내가 너무 여유가 없어.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갖자. 내가 찾아가서 이야기 할게..."
대충 이런 말도 안되는 대답을 지껄였던것 같다.
그녀는 쓸쓸히 뒤돌아갔고 그렇게 인연은 끝인가 싶었다.
그때 끝냈어야 했다.
...........
쿵쿵쿵
그녀가 복층에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난 아무것도 걸치치 않은채 샤워기로 물만 뿌리고있었다.
그녀가 들어왔고 그녀또한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방금, 몇초전
왜그랬을까, 내가 뭐하고있는건가
라는걸 고뇌했던 사람이 맞는지.
어느새 그녀는 내 앞에 등을 보이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연신 앞뒤로 흔들고 있던 거울속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일요일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