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잡지 기자. 한때는 게임잡지를 구매해 보는 유저들의 선망이 대상이 되기도 했었고, 또 모르는 사람들에겐 "게임 실컷하고 돈벌어 먹는 땡보직업"으로 잘못된 인식이 박히기도 했었던 직업입니다. 하지만 게임잡지라는 매체를 만들어 내는데 없어서는 안될 3가지 직업 중 하나이고(나머지가 필자와 디자이너. 여기서 더 들어가면 돈 대주는 '회사'와 직접 책을 뽑아내는 "인쇄소"도 들어가긴 합니다만..), 지금도 다른 언론매체에 비해서 "이름값"이 꽤나 중요한 직업이기도 하지요.
사실 게임잡지 기자는 시대변천에 따라 3가지 유형으로 구분이 됩니다.
가장 첫번째 유형이 게임월드때의 대선배 기자님들(지금은 대부분 어딘가의 부장, 내지는 전무 등 고위직을 차지하고 계시죠)에게 많았던 유형인데, 뭐가 어찌됐든 간에 일단 "게임을 잘해야 한다"라는 타입이죠. 게임잡지 초창기때만 해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공략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인터넷은 커녕 PC통신이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이었죠. 즉 국내 PC통신을 통해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게임의 원 제작국(미국, 일본, 심지어는 대만까지.. 게임매거진 초기만 해도 PC용으로 발매된 대만제 게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에서 만들어진 정식 공략본을 구입하기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나이드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당시엔 일본문화 개방 전이었기 때문에 일본책은 당연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고 미국에선 공략본이란게 거의 안나왔으니까요. 대만이요? 공략본이 나오면 뭐합니까. 중국어를 모르는데... 그렇기 때문에 일단 "빠른 시간안에 게임을 클리어하고, 그것을 문서화 할 수 있는"것이 무었보다도 중요한 기자의 요소였습니다.
그러다가 시대가 지나면서 게임잡지들이 여기저기서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두번째 유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참고로 저도 이 두번째 유형에 속합니다). 그건 바로 "일정 이상의 외국어 번역능력"입니다. 콘솔게임의 경우엔 주로 일본어, PC게임에선 영어 능력이 필요해 진거죠. 사실 게임월드 시절은 물론 이후의 게임월드, 게임챔프, 게임 매거진 3파전 시절의 초기에만 해도 번역능력은 그렇게 크게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게임의 메뉴 정도만 확실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수준이면 되었죠. 그런데 어디서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말하는 "대사공략"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부터 이 번역능력이 중요해 지기 시작합니다.
솔직한 말로 저나 제 동료였던 기자, 필자들은 이 "대사공략"이란 단어를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공략시에 필요에 의해서 일정량의 대사를 번역해 주는것은 공략에 첨부되는 하나의 팬 서비스일 뿐, 중요한 것은 정확한 데이터와 확실하게 확인된 공략 루트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제 세대의 기자, 필자들에겐 대량의 대사번역은 "쓰잘데기 없는 페이지 메꾸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게임 내용이야 전체적인 스토리 다이제스트 해 주는 정도로 충분하고, 나머지 페이지엔 공략에 하나라도 도움이 될 내용을 적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제 나이대의 세대(참고로 올해 30살입니다 저)는 게임을 상당히 무식하게 즐겼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요. "일본 게임을 해야 하는데 일본어 몰라? 그럼 노가다를 해서 레벨을 올려! RPG게임이라 힌트가 나오는데 일본어라 모르겠다고? 그럼 사전 펴고 찾아 봐!" 라는 식의 막무가내 플레이를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해당 언어도 알고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또 모르면 자신이 직접 찾아보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일본어를 배운것도 애니 보고 게임 하는데 일어 몰라서 자막에 의존하는게 귀찮아서였죠. 제 나이대에 일본어 배우신 분들 중 상당수는 저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국내에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늘어나고 잡지사들이 많아지면서 경쟁체제가 갖춰질 때엔 "일본어, 영어는 잘 못하지만 게임은 즐기고 싶다"는 분들이 꽤나 많았죠. 그리고 당시에 유행하던 장르인 미연시(현재 통용되는 "18금 성인용 게임"으로서의 미연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미소녀와의 연애 스토리를 중시하는, 시뮬레이션 요소가 중요한 게임"으로서의 의미입니다)게임, 즉 두근두근 메모리얼, 에베루쥬, 미츠메테 나이트 등의 소위 "스토리가 좋은 게임"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 게임 스토리가 좋다는데 난 일본어를 모른다. 그래서 플레이 할 수가 없다"라는 독자들의 의견이 많아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미연시 게임만이 아니죠. 게임기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저장용량이 많아지자 텍스트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게임 스토리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 것도 한목을 했구요.
여기에, 슬슬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해외 사이트를 찾아가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또 슬금슬금 "일본문화 개방"이 되어가면서 일본에서 발매된 공략본들을 이전에 비해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기자들 역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게 이러한 원판 공략본을 많이 보게 되었죠. 사실 공략이야 아무래도 기자들보다 필자들이 많이 하게 되니 기자들이 꼭 게임을 잘 해야 할 이유는 없었고, 솔직한 말로 이 당시의 게임잡지들은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불법잡지(일본 게임의 경우 솔직히 정식 수입불가 품목 중 하나였죠. 정식으로 국내에 수입이 안되는 불법매체의 소식을 전해주고 공략을 해 주는 잡지가 공인된 정식 잡지일리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였기 때문에 기사를 쓸 때 일본 잡지를 배끼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아니, 실제론 거의 배꼈죠. 심지어는 사진 같은 경우엔 아예 일본 잡지에 나온 사진을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이 당시의 기자들은 게임 잘하는 것 보다 번역을 잘 하는것이 무었보다도 중요했습니다(공략을 안한다 해도 필자들이 공략해 온 원고의 교정을 보는것은 기자들의 몫이니 기자들 역시 기본적인 번역능력이 되어야 했죠). 실제로 게임매거진 팀장 및 게임라인 팀장을 거쳤던 장길순 기자님이나 게임챔프 기자, 월간 패미통PS2의 팀장을 거쳤던 구언정 기자님의 경우 게임을 잘한다기 보단 기자들 관리와 번역에 더 힘쓰던 분들이었던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겠죠(물론 이 분들이 게임업계에선 귀한 "여성 기자"였다는 점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다가 소니와 MS, 그리고 닌텐도가 한국에 정식으로 게임을 발매하기 시작하면서 세번째 기자들의 유형, 즉 "발로뛰는 능력"을 중시하는 기자들이 등장합니다. 이게 뭔소린고 하니.. 앞서 설명드렸듯이 SCEK가 국내에 정식으로 법인 세우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국내 대부분의 콘솔 게임잡지는 "불법매체의 구입 및 사용을 권장하는 불순한 잡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임잡지에서 소개-공략하는 게임의 거의 대부분이 속칭 보따리 장사들이 들여온 불법 밀수품이거나 그것의 복사품이었고, "기자들이 쓴 기사"라는 물건들도 대부분은 일본 잡지의 내용을 그대로 배끼거나 적당히 자신의 의견을 써 넣은 것 뿐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나마 몇몇 잡지들이 일본 잡지사와 제휴를 맺고 기사 제공을 받아 "정식 기사"를 쓰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게임기와 그 소프트가 보따리 장사들이 들여온 불법 밀수품인건 변함이 없었던 건데, SCEK가 국내 정식 법인을 세우면서 기자들이 "취재하러 갈 곳"이 생긴 것이죠. 게다가 게임 퍼블리셔들이 로컬라이징, 즉 한글화를 한 게임들을 발매하기 시작하면서, 기자들이 예전처럼 외국 잡지의 기사들을 보고 기사를 번역할 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국내에 정식으로 게임이 나오는데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정발 게임'의 기사를 쓰려면 당연히 국내 업체를 찾아가야 하니 외국어 아무리 잘해봤자 소용이 없어진 거죠.
이때부터 게임잡지 기자들도 실제 기자들처럼 업체 찾아다니고, 업체 사람들과 인맥 만들고, 남들 모르는 기사 찾기위해 발로 뛰기 시작합니다. 물론 진짜 신문사나 방송국 기자들의 경우엔 아직도 게임잡지 기자들은 상당히 무시하는 편입니다만, 이때부터 게임잡지 기자들은 진짜 의미에서 "언론사 기자"들이 되어가기 시작한 거죠.
... 솔직히 저 자신은 이 세번째 유형의 기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뭐랄까... 낭만이 없다고나 할까요? 저와는 다른 유형의 기자들이기 때문으로도 생각되지만 역시 한동안 이 세번째 유형의 기자일을 하면서 뭔~가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중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재미난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두번째 유형의 기자들 시대에 몰려있기 때문에 세번째 유형은 아무래도 "딱딱하고 재미없는 기자"라고 느끼고 있는것이 사실인지라...
뭐 그런 의미에서 완벽하게 제 주관적인 의미에서 "낭만과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두번째 유형의 기자들 이야기를 다시 유형별로 나눠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어허.. 이거 쓰다보니 또 길어지네요. 이거 참, 한번 글 쓰기 시작하면 쓸데없는 내용으로 글 길게쓰는 것이 완전 고질병으로 정착을 한 듯... 이번에 쓴 글은 쉽게말해 '서문'입니다. 본문은 다음편으로 넘겨야 겠네요. 쩝...
ps. 이번글은 굉장히 재미없는 글이 되었습니다만, 다음글을 읽기 위한 사전지식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길... ps. 솔직히 2002년 정도까지만 해도 "저도 게임잡지 기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요즘은 별로 그런분들을 못본 것 같네요. 그래서 기자 이야기를 쓰는게 상당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만... 뭐 어떻습니까요. 잡담인데... 어쨌든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과연 기대해 주시는 분이 몇분이나 계시겠습니까만은 폼으로나마...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