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게임업계 뒷이야기 - 06 "기자의 조건 두번째 이야기"

J-너스 작성일 06.03.04 12: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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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내공 : 상태나쁨


기자관련 이야기는 별로 호응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호응이 좋은듯 하여 바로 두번째 글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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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6~2001년까지의 기자의 분류.
대충 96년정도 부터 2001년 정도까지의 저번 글에서 제가 언급한 두번째 유형의 기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인터넷 활발해 지고, 일본문화도 슬슬 개방이 되고, 상대적으로 일본 게임잡지나 공략본 구하기가 쉬었으며, 독자들 수가 펑펑 늘어나던 시기였지요.

이 당시 기자들은 대충 4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번째가 "중간관리직 타입".
말 그대로 기자라기 보단 회사의 과장이나 부장처럼 부하직원들 다루는 유형인데요, 보통은 이런 직책의 분들이 "팀장" 또는 "수석기자"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계셨죠.
솔직히 이 타입의 분들 중엔 게임 잘 못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 타입에게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어떤 게임을 얼마만한 분량으로 구성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가장 적절한 글을 써 올 필자를 선정하고, 기자와 필자간의 트러블을 조정할 수 있는 관리자의 능력"이었으니까요.

예전 게임매거진 팀장이었고 후에 게임라인 팀장도 거치셨던 "짱팀장 아저씨" 장길순 기자님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까요?
솔직히 장기자님이 주로 하시는 일은 필자들 어르고 달래기, 공략 및 기사의 페이지 조정하기, 게임 소프트의 적절한 수급, 그리고 원고의 오타 및 무성의한 부분 교정이었습니다.

제 경우 지금도 오타가 엄청나게 많은 편입니다만, 97년에 처음 매거진 들어갔을 때는 정말 장난 아니었죠.
제가 원고 써서 올리면 장기자님이 교정을 봐 주셨는데 돌아온 원고를 보면 완전 피바다!!
(여기서 피바다란, 오자 및 교정해야 할 부분에는 빨간 팬으로 지적을 해서 돌려주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교정할 부분이 워낙에 많아서 빨간색 교정부호 투성이인 너덜너덜한 원고를 가리킵니다)
뭐 솔직히 그 당시 장기자님이 그렇게 원고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주신 덕에 지금 이정도나마 맞춤법 맞추면서 글 쓸 수 있는거라고 생각해서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 중입니다만(그래도 아직 제 글솜씨는 중학생 수준. 헤휴... 국어공부를 다시하든지 해야지 원..), 어쨌든 그 당시엔 진짜 힘들었죠.

게다가 필자들 어르고 달래는 솜씨가 가히 예술이시던 분이라...

제 예를 들어보죠.
제 경운 처음 매거진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당시 매거진 기자였던 지인의 음모로 우연히 애니메이션 관련 기사 하나 쓴 것이 덜컥 채택되면서 그 수렁에 빠져든 것이었는데요, 그 당시 제가 "일본어과 다녀서 일어가 어느정도 가능합니다"라고 말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죠.
은근슬쩍 제게 "필자 안해볼래?"라고 꼬시시는데 못당하겠더군요.
게다가 치열한 잔머리 싸움에도 도가 트신게...

제가 처음으로 공략을 맡은 게임이 세가 세턴판 '에베루즈'. 당시 유행하던 미연시(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여기에서 미연시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입니다. 18금 성인용 게임이 아니구요)게임이었죠. 그리고 다음에 공략을 맡은 게임이.. 잘 기억은 안나는데 역시 세가세턴 게임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맡은 게임이 역시 세가 세턴용 '젤드너 실트'...
사실 제가 그 당시까지만 해도 세가를 상당히 싫어했기 때문에 "팀장님~ 제발 PS게임 좀 맡겨 주세요!!!"라고 애원을 했으나 끝끝내 세턴 게임만 맡기시더라구요.
그래서 하루는 진짜로 하소연을 했죠.
"팀장님, 저 진짜 세턴게임 별로예요. 제발 세턴 게임 아닌걸로 맡겨주세요~~~"
.. 이러한 간절한 소원이 통했는지
"알았어. 세턴 게임 말고 다른걸로 해 줄게"
라고 하시더군요. 저로선 당연히 "세턴 게임이 아니면 드디어 PS게임이구나~"라면서 좋아했으나... 제게 맡겨진 게임은 닌텐도64용 '힘내라 고에몽'.... (게다가 제가 가장 약한 "액션"게임이었죠)
게다가 그 다음달 부턴 "세턴게임 아닌거 한번 맡았으니 됐지?"라시며 다시 세턴 게임 줄창...
우워어어어어어어어~~~~~~ 라는 괴성과 함께 결국 "좋다 이겁니다! 그렇게 세턴 게임만 맡기시겠다면 제가 아예 세턴 사버립니다!!"라고 약간은 반항끼에 넘쳐 그달 원고료 몽땅 투입해서 세가 세턴을 구입했지요.

"팀장님! 저 세턴 샀어요! 이제부턴 회사에세 기계 안빌려도 되요!!(지금도 그렇지만, 해당 게임을 필자에게 맡길 때 해당 게임기가 없으면 당연히 회사에서 빌려줬습니다. 하지만 회사 물건이다 보니 필자들도 막 다루기 십상이고, 그러다보니 회사 기계들은 수명이 짧았죠. 그래서 어지간하면 필자가 보유하고 있는 기종의 게임을 맡기는 것이 관례였습죠)"
"오오~ 좋겠네~ 자 그럼 이번달 니가 맡을 게임이다"
"옙!! ...... 팀장님.. 저 이거 PS게임 아닌가요?"
"그런데?"
"저 세턴 샀걸랑요?"
"그런데?"
"... 아뇨.. 할게요... ㅜ.ㅜ"

그렇게 PS게임 시켜달랠때는 안시켜 주시더니만, 세가 세턴을 구입한 그 달부터 줄창 PS게임만 시키시더만요. 결국 PS까지 사버렸습니다. 그 후에 팀장님 하시는 말쌈이 "이젠 너 주요 게임기 다 있으니까 기계 안빌려줘도 되지?".
노리는게 그거였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게임필자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고 있던 제게 "에라이 게임기까지 다 샀겠다 아예 이 길로 나가자"라고 결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었지요...



게임기자의 두번째 유형은 "박학다식"입니다.
뭐가 어찌됐든 아는게 많아야 하는 사람. 주로 공략관계보다는 특집이나 기획기사를 쓰는 기자분들에 많은 유형입니다. 일단 아는게 많다보면 뭔가 기사 하나 쓰는데도 뽀대가 나는데다, 여러가지 상식이 많기 때문에 공략 필자들의 원고에도 많은 도움을 주곤 했지요.
이 유형으로 게임매거진 최후의 팀장님이었던 남기덕 팀장님이나 게임라인 기자였던 VVVS씨나 최낙윤 기자, 그리고 제가 들어갑니다.

남기덕 팀장님 경우엔 일본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일본 기행문 관련 기자나 시류관련 기사를 쓰길 떄 많은 파워를 발휘하셨죠. 게다가 일본 연애가에도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당시 아주 조금씩이나마 발매되던 "연애인 관련 게임"들의 기사를 쓰실때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VVVS씨는 조금 당황스런 취미로 "서울시내 전 버스 및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고 다니던 분이었죠. 그래서 취재 나갔다가 길 잃으면 VVVS기자에게 전화해서 "여기 어디어딘데, 여기서 회사로 들어가려면 뭐 타야 돼?라고 물오보곤 했습니다.
최낙윤 기자야 워낙에 다양한 부분에 대해서 알고있다 보니 혼자 알아서 이것저것 다 써댔고..
제 경우엔 밀리터리, 성우 부분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 관련 기사 쓸 때 제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꽤 있더군요.

이런 유형의 기자들은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에 모자란 페이지 메꾸는 일에는 최적입니다.
제 경우를 들어서 설명해 보죠.
2차 대전을 기본으로 한 전차전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고 할 때, 그냥 게임만 하던 필자라면 "어떤어떤 전차가 좋고, 어떤 전차를 상대할 때는 어떤 탄종을 쓰고, 여기선 이렇게 가고 저기선 저렇게 가고..."의 식으로 글을 쓰겠지요?
하지만 제 경우 그 게임에 등장하는 전차에 대한 지식, 전장에 대한 지식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공략 이외에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등을 적어줄 수 있고, 또 그 지식을 기반으로 글을 좀 더 풍부하게 꾸밀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보기엔 어떨까요? 그냥 단순하게 "이 미션에선 적 전차가 무지하게 많이 나오니 아군을 잘 활용하라"라고만 씌여있는 공략보다 "이 미션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이라던 쿠르스크 전투를 재현한 것으로, 원래 역사에선 소련군이 승리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면 독자 여러분이 독일군으로 플레이 할 때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라고 씌여있는 공략이 뭔가 뽀대나 보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제 경우야 그냥 알고있는 짧은 지식들 후려갈겨서 양만 늘려놓은 잡탕기사를 만드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리고 보는 입장에서도 일단 이렇게 뽀대나고 "아아.. 이거 쓴 사람이 뭘 좀 아는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가 더 대우받았을 거라는 건 대충 예상이 가실겁니다.

여기에도 관련 에피소드 하나 적어볼까요.
제가 제대하고 게임매거진 재입사 했을시의 팀장님이 위에 언급한 남기덕 팀장님이셨는데, 말씀드렸다시피 일본 여행도 자주 하시곤 해서 일본쪽 문화나 지리등에 상당히 해박하셨죠.
그러다가 언제였더라..? 어쨌든 게임이 하나 나왔는데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국민적 아이돌' 모닝구 무스메를 주제로 한 PS2 게임이 하나 나왔습니다.
제목은 까먹었는데 어쨌든 이 게임 소개를 할려고 하는데 제가 모닝구 무스메에 대해 뭘 알아야죠. 아니, 저만이 아니라 책을 읽을 독자들도 "그게 뭐하는 그룹인데?"라고 하실 상황이었죠 당시는.. 그런데 남두목님(당시 팀장님 별명) 왈.

"홍기자. 그 기사 나한테 넘겨"
"예? 아니 왜요?"
"내가 모닝구 무스메 팬클럽 회원이었다 이거야. 내가 그쪽엔 좀 빠삭하지"
"우와 다행이다~ 안그래도 글 쓰기 애매했는데 잘됐네요"
"좋아. 그럼 내가 책임지고 쓸테니까 4페이지 줘"
"...... 저기요 팀장님. 이런 게임 프리뷰에 4페이지라니요. 드래곤퀘스트도 2페이지밖에 안들어가는데..."
"어허~ 팀 역사와 멤버 설명 할려면 그정도로도 모자라"
"아니 게임 소개하는데 팀 역사에 멤버설명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아아아~~"
"닥치고 내놔~"
"PS담당기자로서 그렇겐 못합니다~~"

결국 이런저런 실랑이를 벌이다 제가 승리하여 한페이지로 낙찰.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다못해 2페이지 정도는 드렸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그럼 꽤나 튼실한 프리뷰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하거든요(사실 그 모닝구 무스메란 그룹이 캐릭터성 내세운 아이돌 그룹이다 보니 팀장님 말씀대로 "멤버의 소개"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었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으니.... 여담이지만, 그 이후 팀장님의 집요한 세뇌공작의 결과 현재는 저도 모닝구 무스메 팬이 되어버렸다는... ㅜ.ㅜ)


당시 기자들의 세번째 유형은 "죽으나 사나 게임플레이 일직선".
필자에서 올라온 경우가 대부분인 이 유형은 주로 글솜씨 보다는 게임실력이 우선시되는 액션, 슈팅, 대전격투 관련 기자들에 많은 유형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때부터 기자란 직책이 게임 공략보단 원고교정, 일반 기사작성이 주가된다고는 해도 필자들이 공략해 온 게임의 질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에선 어느정도 게임을 잘 해야 했던것 역시 사실이고, 특히 액션이나 대전격투의 경우엔 필자보다 잘하진 못해도 전문필자에 버금갈 정도의 능력은 있어야 했던 것이 현실이었죠.
게다가 기자가 단순하게 필자에게 "이거 공략해 와"로 끝나는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그것을 정리해서 필자에게 전달해 주기도 해야 하고, 본인 역시 어느정도는 플레이를 해서 감을 잡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장르의 게임들 보다는 확실히 기자들의 게임 숙련도가 뛰어나야 했던 유형이었습니다.
현재 게이머즈에서 일하면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중인 김경문 기자가 대표적이랄까요?
뭐 본인이 직접 플레이 해서 필자들이 찾지 못한 콤보등을 추가하기도 했으니 뭐 능력 면에선 최고였던 거죠(게다가 상대적으로 플레이 시간도 짧은 편이니까요. RPG나 시뮬레이션 담당 기자들은 죽어도 못할 짓입죠).


마지막 네번째 유형이 "현실과 이상의 갭은 컸다"형입니다.
역시 주로 필자에서 기자로 올라온 사람들 중에 많은 타입이었는데요..
그 당시엔 잡지사 일이란게 말 그대로 야근의 연속입니다.
한 달 중 최대 20일 정도까지 집에 못들어가고 회사에서 밤을 새야 했던것은 예사였고, 온갖 사고들에 직면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게다가 나중에 다시한번 언급 하겠지만 정말 몰상식한 독자들에게도 대응해야 했고, 위에선 판매부수나 이런저런 이유로 찍어내리고, 아래에선 원고료 더 달라, 페이지 더 달라는 하소연 하는 것을 다 들어줘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예 기자들하고 같이 생활하는 주력 필자들 경우엔 이런 상황을 뻔히 아니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지만 그저 단순히 필자일만 하다가, 또는 독자로서 책을 보다가 "나도 게임잡지 기자가 되어 보자!"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기자로 지원한 경우엔 이러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뭐 여기서 어찌어찌 잘 이겨내면 괜찮겠지만 그게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얼마 못버티고 회사를 그만두는 기자들도 몇명 보아왔었던 기억으론 참 씁쓸 하더군요.
밖에서 보기엔 즐겁고 쉬운 일로 보인다고 해서 속내용까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 압박을 못견디는 거야 뭐, 저도 다른 직장 다닐 때 경험해 봐서 아는일이다 보니...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본인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고통도 참고 넘어서는 기자들이 더 많았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군 입대 전에 "행정직"으로 들어왔다가 어이없게도 기자로 배치되는 바람에 생고생 하던 형이 한 분 계셨는데, 얼마전에 알게됐는데 지금도 모 웹진에서 기자일을 하시고 계시더군요. 당시엔 "난 기자일 하러 들어온게 아닌데..."라고 한탄하던 그 형이 쭈욱 기자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되니 뭐랄까... 존경스럽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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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져서 다음화로 넘겨야 겠네요. 다음에는 마감기간에 제가 겪었던 에피소드, 또는 들었던 에피소드들을 적어볼께요. 의외로 이 마감기간의 에피소드들이 재미있는게 많아서요.
그럼~

ps. 아.. 이번 글 속의 유형은 어디까지나 국내에 PS2등이 정식 발매되기 이전의, 잡지사 기자들의 유형입니다. 현재의 잡지사나 웹진 기자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니 오해하진 말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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