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게임업계 뒷이야기 - 12 "한글화에 대한 단상 3번째"

J-너스 작성일 06.04.07 1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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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내공 : 상태나쁨


요즘들어 역시나 제 글솜씨는 형편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밑의 글들에 달리는 리플을 보니 저를 일빠에 과대망상증 환자로 몰고싶어 안달인 분들이 계신것 같네요. 헐... 그냥 제가 낚인건지 아니면 실제로 제가 과민반응을 하는건지는 뭐 다른분들이 판단하실 일인것 같지만...

뭐 꿀꿀한 이야긴 그만 두죠. 이래봤자 진짜로 과민반응에 쓸데없는 자기변호밖에 안될테니까요..
자 그럼 다음 글로 넘어가 보죠. 줄맞추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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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 번역에 대해서 쓸려고 해도 이런 글 몇개를 써도 모자라지만 대충의 분위기는 저번 글에서 어느정도 설명을 했다고 치고, 이번엔 그 다음의 문제, 즉 줄맞추기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애니나 영화 자막 만드시는 분들은 한번 쯤 경험해 보신 일이 있을거로 생각합니다만, 열심히 번역을 해서 그것을 자막으로 만들고 나면 가끔 당황스런 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번역한 글이 너무 많아서 자막의 상당수가 화면을 가려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해당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연히 자막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영상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역시 화면과 소리입니다. 그런데 자막이 그 화면의 상당수를 가려버린다면 문제가 커지지요.
어지간한 대형화면이 아니라면 자막이 2줄을 넘어가면 시청시에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비록 알아듣지는 못한다 해도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해당 캐릭터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었지만, 단지 글로만 읽는 것 보다는 소리로 듣는것이 상대의 감정을 잘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귀로 들려오는 억양을 통해 해당 캐릭터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자막 내요엥 대입해서 어떠한 의도로 말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만, 자막이 부담스럽게 많다면 글 읽느라 다른 데 신경쓰기 힘든것이 사실이죠.

그나마 영화나 애니는 어느정도의 편법이 가능합니다. 정 안되겠다 싶으면 다음 자막에 어느정도 내용을 포함시킨다거나, 여유가 있다면 자막이 나오는 시간을 늘려서(즉 싱크 조절을 잘 해서) 최대한 많은 글을 써 넣을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게임의 경우 이것이 좀 힘들어집니다.
게임 역시 프로그램입니다. 모든것이 정확히 딱딱 맞아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죠.
특히 음성까지 들어간 경우엔 어떻게 빼도박도 못합니다.

만약 하나의 장면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캐릭터가 말을 하고 있다면 자막에도 그것과 같은 자막이 떠 줘야 합니다.
그런데 대사창의 크기가 작아서 "보우하사"까지만 들어간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선 상당히 눈에 거슬리기 마련입니다.

정발 게임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외국어로 되어있는 게임을 우리말로 바꿔어 넣게 됩니다.
그런데, 모두들 영어를 배우셨으니 한번씩은 느껴보셨을 문제일텐데, 해당 외국어의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글자의 수가 마구 바뀌게 됩니다.

그나마 영어의 경우엔 괜찮습니다. 상대적으로 영어 스펠링은 긴데 우리말로 바꾸면 글자 수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SHIP은 4글자인데 우리발로 하면 배, 길게 해봤자 선박이 되죠. SISTER는 6글자인데 우리말로는 아무리 길게해봤자 "여동생"의 3글자입니다.
물론 영어 스펠링으론 글자수가 적은데 우리말로 바꿀 때 글자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얼추 양쪽 균형이 맞거나 더 적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런데, 일본어의 경우는 조금 다른게, 영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말로 바꾸면 글자수가 늘어나는 단어들이 꽤 많습니다.
쉬운 예로 한자 左, 右를 우리말로 하면 왼쪽, 오른쪽이 되지만 일어로 하면 히다리, 미기가 됩니다. 우리말과는 반대로 왼쪽이 3글자이고 오른쪽이 2글자이죠.
이 외에도 기본적으로 단어 자체가 우리말보다 글자수가 적은 단어들이 꽤 됩니다.

게다가, 번역에서의 가장 큰 문제! 글의 내적 의미를 우리말로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단어로 대체할 경우엔 진짜 심각해집니다. 즉,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말을 덧붙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죠.
문장이 길어질수록 이런 경우는 더 빈번해 집니다. 심지어는 상대적으로 글자수가 적은 영어에서도 이런 경우는 많이 생깁니다.

자 다시 게임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통 일본식 게임은 대부분 화면 하단이나 상단에 말상자가 있고, 캐릭터의 모습과 함께 대사가 보여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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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위의 스샷들과 비슷한 식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저 대사들은 번역이 되더라도 무조건 대사창 안에 다 들어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위의 2번재 샷의 경우, 제가 직접 대사창에 우리말을 넣어 봤더니 거의 비슷한 폰트 크기로 번역한 말들이 들어가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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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얼추 비슷하게 맞아들어갔지요?
폰트 크기도 얼추 비슷하고, 내용도 직역을 했으니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딱 맞게 나오는 대사들이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글자수가 약간 오버하는 경우.
이런 상황이 의외로 자주 발생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앞서 말했듯이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기 위해 필요한 추가로 덧붙여지는 말들, 그리고 '띄어쓰기'에 있습니다.
일본어엔 기본적으로 띄어쓰기가 없죠.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대사라도 문장이 길면 길수록 우리말이 점점 더 원문보다 길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실제로 위의 번역 전의 스샷을 보시면 가독성을 위해서 글자와 글자간의 간격이 좀 넓긴 하지만 띄어쓰기는 거의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서 번역을 한 글이 실제 작업때에는 약간씩 잘려나가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대사량이 약 5천줄 정도 되는 원고의 경우 대충 3-40줄 정도는 이렇게 늘어난 글을 잘라내게 되는데, 말씀드렸다시피 그런 현상은 대사량이 많은... 즉 뭔가 중요한 대사들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데, 계속 언급을 했지만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보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을 하기 위해선 부득이하게 글이 늘어나는 경우도 생기고, 또 글은 그다지 늘리지 않았음에도 띄어쓰기 문제로 글이 넘치는 경우도 발생을 합니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다시 글을 삭제, 축소해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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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가 멋대로 만들어 본 대본입니다.
보통 번역을 해서 넘기는 대본은 저런식으로 되서 돌아오곤 합니다.
대사 후반부에 줄이 그어진 것이 보이십니까? 바로 그 선 까지 대사를 줄여야, 한글화 작업때 대사창 안에 다 들어간다는 뜻이지요.

뭐 이유는 앞서 설명을 했듯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하나의 창 안에 글을 다 넣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죠 뭐. 그래서 다음과 식으로 작업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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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원문 내용에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도록 어떻게든 글을 고쳐서 양을 채워야 하는 것이지요.
사실 음성이 없는 게임일 경우 어떻게든 꽁수를 부릴 수도 있습니다.
약간의 프로그램 조절을 통해 대사창이 한번 더 뜨게 한다거나 해서 억지로라도 대사량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럴경우 약간이나마 프로그램을 다시 짜야 하는데다, 또 우리가 보기엔 약간이라고 해도 작업상으론 막대한 시간이 소요되게 됩니다(뒷줄을 다시 다 짜야 하니까요.. 쩝..).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코에이사의 삼국지10을 해 보신 분들 계실겁니다.
거기서 보면, 맨 처음 일기토를 할 때 손상향이 나와서 일기토의 설명을 해 주겠다는 부분이 있는거 기억 나실겁니다.
그런데, 이 요청을 거부할 경우 손상향이 무지하게 꿍시렁 거리지요.
그리고 여기서 웃긴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한참 떠들다가 다음 대사창으로 넘어가면 그 넓은 대사창에 "다."라는 한글자만 덜렁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지금 정확히 '다' 인지 '요'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어쨌든 한글자였습니다).

이 경우 억지로 늘린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원래 2칸짜리 대사인데 글에 맞추다 보니 한칸을 꽉 채우고 한글자만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보기에 심히 괴롭지요. 광할한 대사창에 덜렁 한글자(마침표까지 포함해도 2글자)만 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대사량을 좀 늘리던가 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안되니 대충 처리한 것 같은데, 이렇게 흉한 장면을 연출 해서라도 주어진 대사창에 맞추는 행위, 즉 재프로그래밍은 극구 피하고 있는것이 현실이죠. 삼국지10 처럼 글이 모자라는 상태도 그런데 글이 넘쳐나는 경우라고 해서 대사창을 추가할 수는 없겠지요?

이렇게, 번역자는 물론이요 제작진 측에서도 부득이한 이유로 멀쩡한 글을 잘라내거나 줄여야 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이 발생합니다.
제가 풍운 막말전을 번역할 당시, 메인 번역을 담당한 친구가 이 작업을 하는 모습을 봤는데, 거의 10줄에 한번 꼴로는 이렇게 과도한 대사를 줄이는 작업을 하더군요.
풍운막말전이란 게임 특유의 특성때문에 원문 대사보다 번역대사가 늘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상은 대사량이 많은 게임에선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이 되겠죠.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번역자로선 최대한 원문의 뜻에 맞게 번역을 했는데, 대사창에 맞추기 위해서 억지로 글을 줄인다면 과연 그 글이 원문의 뜻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있을까요?

9화 글에서 어떤 분이 리플로 이렇게 달아 주셨었죠?
"국내 정발판 게임들의 경우 원작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대사를 그냥 놔둬도 외국 게임이기 때문에 그 내용과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해 주기 힘든데, 거기서 억지로 대사를 마구 줄여버렸다면 더욱 더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되어 버리겠지요.

물론 번역자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고, 철저한 감수자가 있다면 이러한 괴리감을 어느정도는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실력 어디 가는것도 아니고 억지로 글을 줄인다 해도 최대한 원문의 어감을 살리는 작업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럴 경우가 어디 쉽게 나오겠습니까?

영어로 된 게임이든, 일어로 된 게임이든, 아니면 다른 나라들의 언어로 된 게임이든 이렇게 우리말로 바꿔 정발을 하게 되면 그 맛은 한참 떨어지게 됩니다. 게임이란 존재가 영상은 물론이요 음향, 음성, 자막 등등 보여지고 들려지는 모든것을 이용해 받아들여야 하는 종합적인 장르의 매체이기 때문이지요.
특히나 게임기기의 성능이 높아져서 더욱 현실적인 영상과 음향, 그리고 이제는 거의 필수적으로 음성이 들어가게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앞으로 이런 괴리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집니다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의 한글화란 것이 그만큼이나 어렵다는 것 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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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업체측 입장을 대변해서 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만, 뭐 좋지 않겠습니까? 이런 글 한두개 정도 있어도...
다음 글은 실제 한글화 작업과 교정 문제에 대해서 써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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