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프랑스 월드컵을 기다리던 98년 봄...
그 날도 어김없이 학교를 마치고 여느때처럼 친구들과 용산으로 직행하여
애니메이션 사진과 포스터를 구경하며 신작 게임들의 물을 보고 있었다.
당시, 하루용돈 천원의 가난한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어렵게 모은 돈으로 산 개조된 중고플스를 가지고 있었고
플스게임CD도 항상 값싼 불법CD로 게임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용산역부터 윈도우쇼핑을 즐기며 도착한 단골가게.
단골가게에 들어서며 점원에게 말했다.
"요새 나온 재미있는 게임 없나요?"
단골가게 점원은 이리저리 여러가지 게임을 추천해주었지만 나에게는 그리 끌리는 작품들이 없었다.
이제 막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시작하는 고등학생에게 일본RPG를 추천해주면 무슨 재미로 한단 말인가?
공략본 보며 하면 재밌다는 점원의 말에 어린 마음에도 그럴 순 없다고 나 자신을 다잡았다.
대전액션하면 KOF였던 그 시기에 들어보지도 못한 격투게임을 추천해주면 무슨 재미로 한단 말인가?
게닛츠가 이별이라고 고하고 이오리가 폭주하는 마당에 다른 격투게임을 할 순 없었다.
결국, 점원이 대여섯개의 작품을 추천하고 결국 마지막에 한 게임을 추천해주었으니....
나는 어떤 내용의 게임인지를 점원에게 듣고 망설임없이 그 게임을 구입(물론 불법으로 만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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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잘할 필요가 없는 게임이었다.
수 많은 기술을 외울 필요가 없는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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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 방에 모인 친구들...
드디어 플스에 CD를 넣고 플레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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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날...
...밤을 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따뜻하게 비쳐지는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우리는 얼싸안고 울먹이며 말했다.
"에닉스 만세..."
제목 : Bust A Move
제작사 : ENIX
장르 : 댄스&리듬 액션
발매일 : 1998년 1월 29일
Bust A Move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전하고 있는 온라인 댄스게임 '오디션'.
이 오디션의 어머니 격으로 볼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이 'Bust A Move(이하 버스트 어 무브)'입니다.
발매되기 전에는 그리 기대를 받지 못했지만 정작 발매가 되자 대박을 터뜨린 작품이죠.
'게임 + 춤'이라는 참으로 신선한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게임플레이는 정말 간단합니다.
두 명의 춤꾼('1P vs 2P' or '1P vs Com')이 등장해 서로의 춤실력을 겨루는 내용입니다.
플레이어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화면에 뜨는 십자커맨드와 O버튼을 제대로 입력해주면 되는거죠.
정확한 커맨드로 춤을 잘추는 플레이어쪽으로 카메라(화면)이 돌아가게 되고
압도적으로 이길 경우에는 상대방이 화면에 아예 안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춤만 추면 재미없을까봐 친절하게도 대전요소를 넣어주는 에닉스.
캐릭터들은 각기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능력으로 상대방의 춤을 방해할 수가 있습니다.
공격이 성공하게 되면 상대방은 잠시동안 멍해져 춤을 출 수가 없게 되죠.
물론, 회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 치고박고 춤실력을 뽐내다가 카메라를 자기 쪽으로 더 돌리게 되면 승리하게 되는거죠.
하지만 커맨드를 자주 틀려 상대방쪽으로 카메라가 집중되게 되면 지고 맙니다.
배경
PS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버스트 어 무브.
여러명의 캐릭터들이 나와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춥니다.
등장 인물들이 서로 춤실력을 겨루는 이유는 그다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내가 너보다 잘춘다."라는 마음밖에 없는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궁극적으로 싸워야 할 적이 있으니 그가 바로 최종보스 Robo-Z.
지구를 침략하려는 우주악당로봇이죠.
그런데 지구를 침략하려면 캐리어라도 이끌고 와서 한판 붙을 것이지...
로봇주제에 춤바람이 나서 그런지 지구인과 춤으로 대결하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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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신이 이기면 지구는 감사히 접수하겠고 춤으로 자기를 이기면 조용히 물러가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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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도 춤바람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어쨌든 이렇게 버스트 어 무브의 오명(?)이기도 한 '막장 캐릭터'가 시작되버린겁니다.
캐릭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버스트 어 무브의 캐릭터.
정말 에닉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캐릭터들이 동양적이지 않고 서양적입니다.
팔다리 길고 늘씬한건 좋은데 생긴 것들이 하나같이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습니다.
때문에 첫이미지가 그리 좋아보일 수가 없죠.
어떻게 보면 캐릭터 생김새는 개성이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직 카레이서의 불을 자유자재로 쓰는 녀석...
남국의 섬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남미계 소녀...
갱스터랩에 심취한 탈옥한 은행강도...
거울과 빗으로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나르시스트...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흑인뚱땡이...
고양이슈트를 입은 여성전대 아이돌의 멤버...
정체모를 핑크펌에 두꺼운 입술의 흑인여가수...
간판을 수집하러 지구에 온 2명의 카포에라성인...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정신나간 생화학자...
코스튬 플레이에 환장해 갓난아기 코스프레를 한 서양아줌마...( ← 얘가 정말 밥맛이 뚝 떨어질 정도로 최악의 캐릭터입니다)
등등...
겉보기에도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데 설정 자체도 정말 끔직합니다.
그 많고 많은 좋은 설정들을 놔두고 왜 이렇게 나사빠진 설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들로 도배를 했는지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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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작 캐릭터를 골라 플레이를 하다보면 하나같이 정말 신들린 듯이 춤을 춥니다.
그리고 어느새 정이 들어 나중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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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막장 설정의 막장 캐릭터들이 판치는 버스트 어 무브에도 군계일학이 있었으니...
당시 PS의 '국민여동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큼 게이머의 사랑을 독차지한 캐릭터...
그 이름 하여 쇼티(Shorty)!
귀여운 음악에 맞춰 멜빵바지의 어린 여자 아이가 앙증맞은 춤으로 오라버니들의 마음을 훔쳐가버린거죠.
상대방을 공격할때도 사탕을 쏟아붓는 깜찍한 공격으로 인기 No.1이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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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얘도 알고보면 부모님이 일하느라 바빠 신경도 못써서 외로움에 살아있는 인형과 춤을 춘다는
막장 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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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t A Move' Hiro와 Kitty-N>
음악과 춤
역시 춤추는 게임이기 때문에 음악과 춤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이 게임이 성공한 이유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좋은 음악과 현란한 춤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일단, 음악은 전체적으로 정말 좋습니다.
저도 아직도 mp3에 넣어 듣고 다닐 정도로 중독성 있고 괜찮은 곡들이 많죠.(코스프레 아줌마 음악은 안넣고 다닙니다)
팝,펑키,힙합,유로댄스등등...
다양한 캐릭터마다 종류별로 각가지 음악들이 있죠.
하지만 음악 수가 적고 스테이지마다 음악이 고정이기 때문에 오래 플레이 하면 금방 질려버립니다.
춤도 마찬가지입니다.
막장 설정의 막장 캐릭터들이 정말 현란한 댄스를 지치지도 않고 선보입니다.(코스프레 아줌마는 춤도 저질)
하지만 역시 플레이 하다보면 춤동작이 반복된다는걸 금방 느껴지기에 쉽게 질리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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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방에서 혼자 버스트 어 무브를 틀어놓고 따라춰보면 참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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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t A Move2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후속작이 나오는데 이 또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여러 의미로 한층 더 진화한 버스트 어 무브가 됐죠.
업그레이드 된 게임~~~
커맨드에 선택지를 추가!!!
O만 쓰던 전작보다 어려워진 O,X,△,ㅁ 4버튼 사용!!!
이젠 십자키 막무가내로 비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십자키가 연속으로 틀려도 꽝!!!
고득점이 가능한 숨겨진 커맨드 추가!!!
이젠 맞고만 있지 않겠다! 회피 기능에 반격 기능까지 추가!!!
춤을 잘 추게 되면 상상도 못할 배경의 엄청난 변화!!!
보너스 캐릭터 출현!!!(춤은 똑같은데 모습만 다른...)
진 보스 출현!!!(망할놈의 팬더...)
춤동작을 감상하고 연습 할 수 있는 모드 추가!!!
전작같은 허망한 엔딩이 아닌 캐릭터들의 비화(막장 설정)를 보여주는 감동의 엔딩!!!
그리고 정말 쓸데없고 존재감없는 기능이 있었으나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기능 하나!!!
더욱 업그레이드 된 음악과 춤~~~
한층 신나지고 한층 중독성을 가지게 된 음악!!!
더욱 멋지고 현란한 동작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춤!!!
더더욱 업그레이드 된 막장 설정의 막장 캐릭터!!!
배고프고 목마르면 사람을 먹거리로 변신시켜 먹어버리는 초능력자 웨이트리스!!!(전작의 화가의 동생)
머리에 도끼를 박고 춤추는 좀비!!!(전작의 정신나간 생화학자의 아버지. 도끼도 아드님께서 친히 박아줌)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초등학생!!!(밤에 오줌 못가림. 왕따를 탈피할 생각은 안하고 담임을 짝사랑 중)
이번엔 여경(1P)과 찰리 채플린(2P) 코스프레다! 코스프레 아줌마 건재!!!(그나마 멀쩡한 애들 자르고....왜 또 나온건지......)
고양이슈트를 입은 여성전대에서 솔로로 독립한 아이돌!!!(그룹에서 쫓겨남)
이젠 소녀가 아닌 여자에요! 섹시춤을 추며 성숙해져버린 쇼티!!!(인기 수직하락)
<'Bust A Move2' Heat와 Kitt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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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등장과 함께 버스트 어 무브 3탄격인 작품이 나왔지만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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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먹었거든요.
버스트 어 무브가 인기를 끌자 일본의 게임센터에는 전용기기까지 나왔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방법으로 오락실에서 플레이 가능했었죠.
그만큼 쉽고 간편한 조작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겐 정말 잊혀지지 않을 게임이 될거 같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예전에 뮤지컬 안무짜는 누나에게 이 게임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게임 속 춤을 몇 개 가져다 쓰더군요.
...그런데 빌려준지가 몇 년째인데 아직 안돌려주나요,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