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에 환호하는 뉴욕

맹츄 작성일 05.11.09 16: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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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꼴찌'에 환호했다



[조선일보 김수혜 기자]

7일 오전 9시10분(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 센트럴파크에 환호성이 터졌다. ‘뉴욕 마라톤 꼴찌’ 조이 코플로위츠(57)가 양팔에 지팡이를 짚고 막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이었다. 전날 새벽 5시30분, 다른 참가자보다 5시간 빨리 뉴욕 남쪽 끝 스태튼 아일랜드를 출발한 지 27시간 40분 만이었다.

1시간 전부터 이슬 내린 산책로를 서성거리며 코플로위츠를 기다린 마라톤 팬, 자원봉사자, 친지, 기자 등 100여 명이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치며 축제처럼 마지막 수백m를 함께 걸었다. 여기저기서 “힘내요, 조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만 32년째 온몸의 중추신경이 제 기능을 잃는 희귀병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코플로위츠는 이날 밤새 내린 부슬비를 뚫고 브루클린~퀸스~브롱크스~맨해튼을 잇는 42.195km 코스를 완주했다. 남편이 싸준 땅콩버터 샌드위치 도시락으로 길에서 끼니를 때우고, 빗방울이 흩뿌릴 때마다 우비를 뒤집어썼다.

마라톤 참가자를 위한 경찰의 차량 통제는 일찌감치 해제됐다. 전날 밤 맨해튼과 퀸스를 잇는 2.2km 길이 퀸스보로 다리를 건널 때, 교각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느릿느릿 전진하는 코플로위츠는 위태로워 보였다. 옆구리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휙휙 비껴 지났다. 막역한 친구 헤스터 서덜랜드(50·간호사)와 루앤 스폴자(50·물리치료사)가 우비, 도시락, 물병, 약통을 실은 손수레를 돌돌 밀며 함께 완주했다. 중간중간 이들이 푸들푸들 떨리는 코플로위츠의 다리를 주물렀다.

코플로위츠는 달리는 내내 “누군가 불붙은 칼로 팔다리를 푹푹 쑤시는 듯한” 열감(熱感)과 통증에 시달렸다. 고혈압에 당뇨도 있어 서너 시간에 한 번씩 바늘로 팔뚝을 찔러 혈당치를 재지만, 코플로위츠는 “얼른 가자”며 친구들보다 먼저 일어섰다.

코플로위츠의 뉴욕 마라톤 완주는 올해로 18년째다. 보스턴 마라톤과 런던 마라톤까지 합치면 20번째 마라톤 완주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꼴찌’를 놓친 적이 없다. 대회 도중 눈바람이 휘몰아친 2002년 뉴욕 마라톤 때는 ‘33시간 10분’에 결승선을 끊어 ‘세계에서 가장 느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코플로위츠는 “내 인생 최악의 시기는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던 25세 때”라고 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자꾸 넘어지고, 가스레인지에 손을 올려놓고도 뜨거운 줄 몰라 화상을 입었다. 코플로위츠는 “병 자체보다, 병명에 붙은 ‘불치(不治)’ 딱지가 더 무서웠다”고 했다. 결혼했지만 “언제 내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될지 몰라” 아이를 갖는 걸 아예 포기했다.

투병 14년째 되던 해에는 대여섯 골목 떨어진 가게에 장보러 갔다가도 기진맥진했다. 어느 날 비타민 알약을 삼키다 약이 기도에 걸려 질식사할 뻔도 했다. 코플로위츠는 캑캑거리며 약을 토한 뒤 ‘이대로 병에 질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근력 훈련을 시작했고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잡았다.



“마라톤은 내게 두 가지를 가르쳤어요. 첫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는 것. 둘째, 코스가 아무리 길고 험하다 해도, 그걸 완주할 힘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

코플로위츠는 인생을 TV에 빗댔다.

“누구나 인생에 한 가지 괴로움은 있잖아요. 거기 사로잡히는 건 평생 한 가지 TV채널만 보는 것과 똑같아요.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채널이 많은 줄 아세요? 나는 마라톤으로 내 인생 채널을 돌렸어요. 또 누군가가 나를 보고 ‘나도 한번 채널을 돌려보자’ 결심한다면 그걸로 내 인생은 가치있다고 생각해요.”

센트럴파크 결승선에서, 코플로위츠는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장미 꽃다발을 번쩍 추켜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내년 마라톤? 꼭 뛰어야죠.”

(글·사진 뉴욕=김수혜기자 goodluc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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