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한국인의 프랑스에서 사는법

맹츄 작성일 05.11.22 17: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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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바이러스와 같은 것

“ 따르르르릉~~ ”
아침 7시.. 시계 종소리가 울리고 손이 절로 버튼을 누르게 된다. 여느 때처럼 씻고 옷을 입고 공부를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기 위해 플렛폼 위에 올라섰다.

오페라 역, 빠리의 중심부이자 가장 사람이 붐비는 곳. 어둠속에서 빛을 내 비추며 지하철은 천천히 플랫폼으로 정차하고 있다. 문이 열리자 바로 앞에 서있던 남성. 짙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그는 이곳 지하철에서는 왠지 어울리지 않은 소품이다. 그는 곧 접이식 지팡이를 피고 플랫폼으로 빠르게 한걸음 내딛는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잘사는 나라의 지하철이라 하지만 시설은 오랜 역사에 비추어볼 때 일부 고속전철을 제외하곤 한국보다 많이 낙후된 것도 사실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불편함을 겪고 있는 사람이나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의시설은 아직 빠리의 지하철에선 보기 힘들다.
흰머리가 힐끗한 중년의 빠리지앙의 바닥을 디디는 능숙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보이지 않았던 불편이 익숙해 진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비록 어둠속의 세상으로 길들여졌다 해도 결코 그는 북적이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빠리에서 본 영화중 인상 깊은 것을 꼽자면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 이다. 의사인 아버지의 심장병이란 오진으로 학교에 나가지 못하여 친구도 없는 아멜리에는 결국 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공부하며 외롭게 자란다. 아멜리에의 유일한 친구인 금붕어가 스스로 어항에서 뛰쳐나와 자살하고, 노트르담 성당 옥상에서 떨어지는 관광객의 몸에 깔려 아멜리에의 엄마가 어이없게 죽는 것으로 한없이 어두울 것과 같은 어린 시절에 상관없이 성장한 그녀는 악한 사람에게는 결코 밉지 않은 적당한 응징을 그리고 주위사람들에겐 알지 못하게 조금씩 잃어버린 사랑과 행복을 전해주다가 자신 역시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23살의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한 행복에 젖었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 거창하고 위대해 보이는 일은 아니더라도 깜찍한 행복 메신저로써 그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 때론 변장도 하고 가면을 쓰고 쾌걸 조로가 되어 역할을 수행하는 그녀를 보며 나 역시 그러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무씨유, 에스끄 쥬 뿌 부 에데 ? (저, 도와드려도 될까요?)'

난 서투른 불어로 그의 왼팔을 살짝 잡으며 이끌었다.

‘지금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걷고 있어요.
‘전 한국 학생이고 빠리에서 불어공부를 하고 있어요.
‘출근시간이라 사람들이 많네요.
‘최근엔 동양인들도 많이 다니고 있어요.
‘물론 저 역시 그런 사람 중 한명이고요’
‘어떤 여성은 지각을 하는지 뛰어가면서 샌드위치를 먹네요.
‘빵집에서 방금 갓 만든 빵이 만들어 나오네요. 맛있는 냄새죠?’
‘이제 올라왔어요, 전 반대쪽으로 가야겠네요.
‘오흐부아 (안녕히 가세요)’

난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단 한 대의 지하철을 놓쳤다. 빠리의 출근시간 지하철은 40초 후에 다시 온다. 남에게 행복을 나누어주고 나 역시 오늘 하루 종일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오직 40초도 걸리지 않았다. 난 뚜렷이 기억한다. 보이지 않던 그의 눈이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를 가진 행복한 얼굴표정을 기억한다. 그는 그의 옆에서 그런 즐거운 얼굴을 훔쳐보는 나의 기분을 알고 있었을까? 우연한 기회로 그를 알게 되었고 행복을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왠지 나의 인생이 완벽해질 것만 같다는 예감이 온몸을 감싸오기 시작했다. 나의 주변과 내 자신이 조화를 이루어짐을 느껴졌다. 빠리 지하철의 악취조차도 향기로우며 가난한 예술가들의 악기연주는 마치 나를 위한 오케스트라처럼 느껴졌다. 난 지하철 악단에게 주머니속의 1유로를 던져주었다. 그들 역시 나를 통해 자신들 연주의 조화와 헛된 수고가 아님을 얻었으리라. 23살 빠리에온 아프리카인의 눈엔 이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마치 찬란한 보석처럼 세상은 단순하지만 맑고 투명해 보였다.

행복이란 어쩌면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성질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행복이란 무엇이며 왜 인간은 사는지 말하였으며 어떤 과학자들은 인체의 화학성분의 분비에 따라 행복이 좌우된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는 돈이 많아야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어떤 부류의 사람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행복하다고 한다. 누군가에는 그 어떤 한부분만 충족되더라도 그것이 삶의 전부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행복이란 참 단순한 성질이다. 자신 주위에 있는 얻고 잃음에 의한 또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작은 행동으로도 그것을 이룰 수 있음을…….

철학적 혁명을 스스로 일으켰다는 칸트, 비록 칸트를 잘 안다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아니다. 철학을 공부했다고 세상을 잘 이해할 수 있음도 결코 아니다. 결국 인종차별주의자, 남성우월주의자로 죽은 칸트보다 더욱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죽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영혼을 난 더 많이 꼽을 수 있다. 행복은 나이나 지식 그리고 인종에 상관없이 그렇게 실천하고 봉사하는 가운데 자신의 가슴깊이 내려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깃털과 같아서 쉽게 날아가기 때문에 늘 인간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사이에선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 확실한 것은 칸트를 이해하기위해 분석하고 토론하고 이야기 하는 순간에 얻어지는 지식은 그것을 통해 역시 행복 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의 본질인 ‘행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생각만 가득한 칸트 보다 행동하는 나폴레옹이 되는 것이 낫다. 1톤의 생각보다 단 1그램의 실천이 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행동 아닐까. 그것이 칸트를 몰라도 약간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단순히 살아가며 행복을 얻어가는 이 시대의 아프리카인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인생을 빗대는 말들은 상당히 많지만 난 그중에서도 연극이란 말을 좋아한다. 인생이란 연극을 보는 것처럼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 구경만 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주인공이 없는 시시한 연극이 되지 않겠는가. 연극을 나서는 관객들 입가에 걸려 있을 미소와 가슴 속 행복의 잔잔한 물결을 낳을 연극을 기대하며 난 지금도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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