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수천개의 크고 작은 수목원들이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쟁쟁한 박사급 식물학자들이 포진한 광릉 국립수목원, 태안반도 바닷가에 위치한 한국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 그리고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 자리한 ‘그림이 있는 정원’ 등이 있다.
이들 중 국내 아홉번째로 등록된 ‘그림이 있는 정원’에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아름다운 사연이 있다. 이 수목원의 파수꾼은 임진호씨(64). 임씨는 전신마비 아들을 위해 3만평의 땅에 소나무와 향나무를 비롯 1,500여종의 식물을 심고 가꾸어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그림이 있는 정원’은 그가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아들을 비롯한 장애인들이 휠체어로 두루 다니면서 자연과 벗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만든 아름다운 곳이다.
임씨는 처음부터 이곳에 수목원을 차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전통칠기 사업을 하면서 조금씩 사들인 땅이 3만평쯤 됐을 때 그는 ‘아담한 농원’을 꿈꾸고 취미삼아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인 농장으로 이곳에 꽃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막연하게는 노후에 내려와 살면서 조경사업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18년 전 장남 형재씨(38)가 사고로 목뼈를 다쳐 척수장애인이 됐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되었지요. 저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나중에 나 죽은 다음에도 살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이제 자유롭게 밖으로 다니지도 못하고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데….”
임씨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구족화가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고 “저 사람처럼 그림을 한번 그려 보라”고 아들에게 권했다. 마침 형재씨 누나가 미술 선생이어서 동생에게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형재씨는 손을 전혀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필사의 노력 끝에 입에 펜을 물고 그림공부에 전력, 구필화가가 됐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1999년과 2000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입선했다.
임씨는 아들이 그림 그리기를 즐기자 나무와 꽃을 볼 수 있도록 정원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했다. 아들은 평생을 장애인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
하지만 임씨는 소나무와 전나무조차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식물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취미였다곤 하지만 사실 그는 조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수목원 조성을 결심한 임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념했다. 백지상태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다른 수목원 관계자들을 만나 식물 공부를 했으며, 무거운 돌을 옮기고,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꿨고, 물길을 내어 인공 폭포와 계곡을 냈다.
“이 산은 온통 아카시아투성이였죠. 칡넝쿨이며 잡목이 그냥 곳곳에 뒤엉켜 있었어요. 그걸 죄다 캐내고 다듬고….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바위 하나가 7~8t이나 돼 25t 트럭에 이런 거 3개밖에 못들어갑니다. 그런 커다란 돌이 여기에 수천개는 되니까….”
그가 산책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길은 죄다 휠체어로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흙길이면 더 좋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 아이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죠.”
화장실엔 어김없이 장애인 전용 시설이 마련돼 있고, 나지막한 계단 옆엔 반드시 완만한 휠체어 도로가 설치돼 있다. 수목원에 쏟은 아버지의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가파르고 험한 산이 9년 만에 꽃동산으로 탈바꿈했다. ‘그림이 있는 정원’이 탄생한 것이다. 주위에 이런 사연이 전해져 이 정원은 최근 홍성군으로부터 ‘홍성 8경’으로 선정됐다.
처음 취미 생활로 시작한 조경사업이 이제 그에게는 평생의 사업이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만든 감동이 있는 ‘그림이 있는 정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