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하던 그녀의 손이 우연히 스치던 순간의 짜릿함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평양 시내 도로 한복판을 달리고 있는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내던, 아니면 반갑게 흔들어대던, 그 수많은 손들 가운데 하나가 내 손바닥과 맞부딪혀 ‘짝’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인도를 오가는 평범한 평양 시민들과 우리 사이엔 철조망은커녕 마음의 벽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강 안개는 너무 쉽게 허물어졌다
오마이뉴스 평양-남포 통일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24일 아침 출발지인 서산축구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반겨준 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만드는 자욱한 강 안개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궁금하게 한 것은 짙은 베일에 가려진 북측 마라톤 선수들의 면면이었다.
30여명의 북측 선수들이 등장했을 때 우리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쏠렸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다부진 인상을 주는 남자선수들과 역시 짧은 커트머리에 앳돼 보이는 여자선수들의 모습은 우리를 모두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각자 몸을 풀고 제대로 눈치작전을 펼칠 틈도 없이 안개를 깨는 총성소리와 함께 경기는 시작됐다. 애초부터 치열한 승부 다툼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내건 친선대회. 그러나 남과 북을 대표하는 200여명이 뒤섞여 평양시내 한복판을 달린다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기선을 잡으려는 남측 베테랑들과 북측 선수 대부분은 멀찌감치 치고 나갔다. 반면 대회 우승이나 기록 달성보다는 참가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둔 우리들은,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풍광과 거리를 오가는 평양 시민들을 바라보는 여유를 만끽했다.
그때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평양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외치는 자신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시민들도 거리낌 없이 호응했다. "반갑습네다!" "힘내시라요!"라고 화답하면서 밝은 얼굴로 우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박수를 보냈다.
"힘이 불끈불끈 솟는데..."
"우리가 언제 마라톤대회 나가서 이렇게 환대받아본 적 있냐?"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뜻밖의 응원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뛰는 듯 걷는 듯 느긋하던 우리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저 양반, 오늘은 그냥 완주하는 게 목표라더니 왜 저리 빨리 달려?"
"야, 그러다 이러다 오버페이스 할라. 좀 천천히 달려!"
"우리가 평양에서 이렇게 달려볼 기회가 또 있겠어?"
"이렇게 마구 손잡아도 되는 겁니까?"
▲ 오마이뉴스 주최 `평양-남포 통일 마라톤대회`가 24일 오전 평양 서산경기장에서 남북 선수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여자자부는 1,2등을 북측의 장선옥(가운데), 임명옥(맨왼쪽) 선수가 3등을 남측의 육해숙(가운데)선수가 차지했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출발 3km지점, 각종 경기장이 몰려있어 비교적 한적한 청춘거리를 지나 왕복 10차선 광복거리를 꺾어 돌 즈음 뜨문뜨문 하던 행인은 수십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아기 업은 엄마, 손자 손을 끌고 거리로 나온 70대 할아버지, 도구를 걸친 채 작업장으로 발길을 서두르는 노동자들. 바로 그때 우리 가운데 하나가 행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200여 km를 달려보는 게 소망인 한 울트라 마라토너는 감격스런 기분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한 시민과 거의 얼싸안다시피 팔을 맞붙잡았다. 시민을 얼싸안았던 그가 서너 살짜리 꼬마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아이가 황급히 엄마 다리 뒤로 숨는 바람에 행인과 우리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아기가 할아버지에 이끌려 손을 흔드는 모습에, 아직 손자가 없다는 50대 후반 마라토너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10번 남짓 달렸다는 그이지만 이렇게 평양 한복판을 달릴 수 있게 된 것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것도 모자라 양팔을 계속 휘저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출발한 지 20분 남짓, 북녘 땅의 초겨울 날씨를 훈훈하게 만드는 열기 때문이었을까? 평양시민들과 우리들 사이에 놓여있던 마지막 장벽, 두꺼운 강 안개마저 어느새 자취를 감춰 버렸다.
평양 번화가인 광복거리를 빠져나와 6km 지점인 순화강을 건너자, 청년영웅도로에 차를 세운 채 떼 지어 일하는 북측 노동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반응 역시 시내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텅 빈 10차선 도로 중앙을 달려야 하는 우리들과 그들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린 또 다른 ‘접촉’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와 함께 뛴 또 다른 우리
반환점을 돌아 나오는 남측 선수와 북측 선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둘씩, 셋씩 짝지어 달리는 모습을 마냥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우리들은 새로운 소통 수단을 찾아냈다. 중앙선을 사이에 두고 힘내라고 격려하거나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우리들은 서로 스치는 순간 '하이파이브'를 시도했다. 북측 선수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손과 손이 맞부딪히는 순간 더 강렬한 느낌이 가슴 속까지 파고들었다.
노련한 마라토너에게도 만만치 않은 21km 코스. 대회 참가 자체가 목적이었던 남측 마라톤 초심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공식기록조차 남지 않을 이날 경기에서 '오버 페이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3km만 뛰고 말겠다던 한 참가자는 결국 버스에 올라야 했지만 10km 반환점까지 달렸고, 반환점이 목표였던 이는 느릿느릿 완주에 성공했다.
"함께 뛴 북측선수가 아니었으면 난 이 시간에 못 들어왔을 거야. 계속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챙겨주더라니까."
"골인지점을 앞두고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런데 태권도회관쯤에서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도로로 뛰쳐나와 저랑 함께 뛰는 거예요. 순간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어요."
평양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미 하나가 된 우리들을 '오버'하게 한 건 우리와 함께 뛴 또 다른 우리, 북측 선수들과 평양시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