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 도마동 좁다란 골목에 노란 조끼를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찌그러져 가는 철문을 두드리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시는 주인 박득금(80) 할머니는 "어서와, 반가워, 추운데 빨리 들어와"하시며 인사를 건넨다.
"할머니 그동안 건강하셨죠? 일주일 동안 뭐하고 지내셨어요? 점심식사는 하셨어요?"하며 쉴 틈 없이 질문을 해대는 김재년(35)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정신장애인이다. 박 할머니는 김씨에게 "매번 이렇게 도움만 받아서 어떡하나? 자기들 몸도 성치 않으면서…"하시며 고마운 마음에 손을 덥석 잡으셨다.
김씨는 현재 대전시 서구 도마동에 위치한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인 '한울타리(원장 정운석)'의 정신장애인 자원봉사단의 일원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이면 도마동과 변동 등에 있는 독거노인, 중증장애인 등 형편이 어려운 분들에게 밑반찬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이 서비스는 정신장애인들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사회와 마음의 벽을 쌓고 있는 정신장애인들, 그리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지역사회가 서로 만나는 다리가 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정신장애인들에게는 '우리도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역주민들에게는 '정신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현재는 2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자와 사회복지사 등 10여명이 이들을 돕고 있다. 이들이 밑반찬을 전달하는 집은 모두 50가구. 이를 위해 수요일 오전 10시면 부엌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반찬을 만들고, 각 가정에 배달하기 위해 반찬통에 정성껏 담아 포장한다. 물론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재료는 지역사회에서 후원해주는 것으로 충당한다.
그리고는 정신장애인 2인과 자원봉사자 1인 등으로 조를 나눈 뒤 각자 흩어져 어렵게 사는 노인들을 방문하여 밑반찬을 전달하게 된다. 이러한 방문이 1년여가 넘다 보니 이제는 아주 절친한 사이가 됐다.
"할머니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반찬은 냉장고에 넣어놓을게요."
"한번 맛 좀 보세요. 간이 맞는지…."
함께 동행한 이상진(29)씨가 다리가 아파서 걷지를 못하시는 손은자(65) 할머니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손 할머니는 "너무 너무 고맙다"며 "하루 종일 찾아오는 사람 한명 없으니까 외로워서 항상 수요일만 되면 언제 오나 기다리게 된다"고 말했다.
손 할머니는 또 "살기가 힘들어서 독한 마음을 먹었다가도, 자기 몸도 건강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이 사람들을 보면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며 "나도 건강해지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손 할머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렀다. 이를 본 이씨는 "울지 마세요, 앞으로 더 좋은 날이 올 거예요"하며 위로의 말을 건낸다.
모든 배달을 마친 이씨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렵게 사시는 노인 분들을 보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며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한울타리 정신장애인 자원봉사단은 이 밖에도 지역사회를 위한 많은 봉사활동을 해왔다. 시설인근 도로에 코스모스와 보리를 심어 가꾸기도 하고, 추석과 설맞이 경노잔치, 중증장애아동을 위한 7월의 크리스마스 행사 등도 개최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와 올해 무려 1000포기나 되는 김장을 담아 지역의 독거노인과 저소득층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이러한 왕성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한울타리 공동체에게 부족한 것은 아직 너무도 많다. 서비스할 반찬재료가 더 필요하고, 함께 도와줄 자원봉사자도 부족한 형편이다.
정운석 원장은 "정신장애인들의 자원봉사는 그 어떤 사회복귀프로그램보다 효과적"이라며 "특히 정신장애인들은 '대인관계가 어렵다'거나 '위험하다'는 등의 편견의 벽을 허무는데 매우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대전지역에 2만명으로 추정되는 정신장애인들이 있으나, 이러한 사회복귀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리는 정신장애인은 600여명 정도에 불과하다"며 "좀 더 체계적이고도 광범위한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 프로그램이 정부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