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내리쬔 햇살에 주환(가명·4)이가 눈살을 찌푸린다. 주환이는 늘 눈이 시리다. 날 때부터 홍채가 없었다. 홍채가 없으면 눈 속으로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지 못한다. 앞도 잘 못 본다. 두 달쯤 전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후진하는 차를 못 보고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지난 10월엔 백내장 수술까지 받았다.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도농동. 아파트촌 사이에 다세대주택이 몇 동 있고, 주환이네 집은 다세대주택 뒤편 외벽과 붙어 있다. 주환이와 동생 소영(가명·여·2)이가 이날 한 달 만에 임시보호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 달 전 정신과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어머니(신연화·34)가 집에 돌아와 있다 아이들을 반겨 맞는다. 신씨는 정신지체자이다. “주환아, 가자. 집에 가자.” 주환이가 눈을 희미하게 뜨고 어머니를 봤다. 주환이의 아버지 안영철(36)씨는 2급 시각장애인이다.
건물 뒷벽에 덧대 만든 반 지하집. 시멘트와 플라스틱 차양으로 얼기설기 만들어졌다.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들어가니 작은 화장실과 부엌이 보인다. 문이 부서진 화장실엔 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앉아 있다. 문짝이 달아난 부엌 싱크대 위 일회용 버너엔 김치찌개가 다 졸아붙어 있다.
계단을 몇 개 내려가자 방이 보인다. 시멘트 벽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남매는 방 안에서도 외투를 꽁꽁 여미고 있다. 보일러는 가끔 땐다. 금이 간 벽, 찢어진 장판 위로 바퀴벌레가 기어다녔다. 사회복지사 안형구(31)씨는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남매가 사시사철 감기를 달고 산다”고 했다.
주환이는 홍채 역할을 대신 해줄 특수 렌즈나 안경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력검사 한 번 못 받아봤다. 4살이지만 아직 대·소변도 못 가린다. “어머니, 이거 주환이 약. 하루에 네 번, 한 방울씩.” 사회복지사 안씨가 또박또박 일러줬다.
엄마랑 아들 병원비는 고스란히 빚이 됐다. 서울 망우리 가구공장에서 책장 조립을 하는 아버지 안씨의 수입은 월 100만원. 주환이네는 카드 서너 개를 돌려막으며 생계를 꾸린다. 이번 달 카드빚은 190만원. 남매의 어린이집 회비는 동사무소에서 지원해준다. 안씨에게 직업이 있어 생활보호대상자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아버지 안씨는 “장애를 물려준 내가 죄인”이라고 했다. 외투 속의 주환이에게 물었다.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니?” 하루 종일 말이 없던 아이가 반달눈을 하고서 귀엽게 웃더니 입이 열린다. “공놀이요.” 제대로 앞을 못 보는 아이, 냉골 지하방에서 외투를 껴입은 아이가 친구랑 공놀이 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