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 이경자 (43.시각장애 1급)씨가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 안은 써늘하다. 이씨가 이곳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15년째. 지난 86년 남편 노기선(53.당뇨 및 췌장염)씨를 만나면서 비닐하우스 촌 생활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칠판 글씨가 안 보이기 시작한 이씨. 어려웠던 가정형편에 치료는 고사하고 검사조차 받아볼 수 없었던 이씨는 학업을 포기해야만했다. 그 후 시력을 차츰 잃어가더니 급기야 2년 전에는 시각장애 1급 진단을 받았다.
"그때 공부만 더 했으면...내가 꿈이 학교선생님이었는데...그 꿈만 이뤄졌으면 이런 고생은 안 했을 텐데..."
시각장애를 안고 있는 이씨의 하루는 고달프기만 하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이 씨는 연탄불을 갈아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터라 연탄구멍 하나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 뿐만 아니라 설거지며 집안 청소 특히 가스 불이나 칼질을 할 경우는 더욱 더 조심성을 요한다.
장애를 안고 있는 아내를 호강은커녕 고생만 시키는 거 같아 죄스러운 남편 노씨. 그런 미안한 마음에 그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집안일이며 아이 돌보는 일 까지 도와주고 있다. 노씨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 조금이라도 편한 생활을 아이와 아내에게 안겨 주고 싶은 마음에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고 결국에는 당뇨와 췌장염 그리고 간 질환까지 앓게 되었다 지난 92년에는 물 혹 제거 수술을 2번 받았고 지금도 몸 안에는 담석이 돌아다니고 있어 꾸준한 치료와 식이요업을 요하는 상황이다.
장애와 건강이 좋지 못한 이 씨 부부는 노동능력이 없어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보조금으로 한달 생활을 하고 있다. 200여 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장지동 화훼마을. 이씨 세 식구는 비닐하우스 촌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욕실 시설이 없어 싱크대에서 세수를 한다. 여름에는 씻을 수 없어 고생이고 겨울에는 추위에서 견뎌야만 한다. 더욱이 앞을 잘 볼 수 없는 이씨는 혼자 외출은 꿈도 못 꿀 일이며 화장실 가는 일 조차도 아들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할 정도.
비닐하우스 촌에서 태어나 12년째 이 곳에서 사는 경륜(남.12)이. 또래 친구들 모두 학원에 갈 시간에 경륜이는 강아지랑 시간을 보낸다. 정부보조금으로 세 식구 생활도 해야 하고 노씨의 병원비 까지. 빠듯한 형편에 경륜이 학원까지 챙길 여유가 없어 경륜이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학원을 다닐 수도 없고 비닐하우스 촌에서 산다는 게 부끄럽기는 하지만 자신이 커서 돈을 벌면 "엄마 안경 사 드리고 아빠 병 치료하고...엄마가 눈이 아프니까 잘 보이는 안경으로 밤에도 잘 보이는 안경으로... 해 주고 싶은 것이 많다"며 경륜이는 말을 덧붙인다.
아직 겨울 준비를 못한 이 씨네 세 식구. 매서워진 겨울바람이 이 가족의 마음을 더욱 허하게 만든다. 추운 겨울을 보내야하는 이 씨에게는 연탄 값도 버겁기 만하다. 난방비 걱정에 불 한번 속 시원히 피워보지 못해보고, 또 이번 겨울 김장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