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선 제 소개를 간략히 드리겠습니다.
저는 제주도가 고향이고 현재 마산누나집에서 혈액암 투병중인 23살 남 입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저의 작은 사연하나를 들려 드리구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2003년 1월 20살에 중증 재성불량성 빈혈이라는 병을 판명받았습니다.
처음엔 재성불량성 빈혈이라는 병이 뭔지 몰랐기에
큰 신경안쓰구 차츰 낳아지겠지 라는 마음에
약으로만 치료받구 병에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않았습니다.
차차 병에대해 상세히 알게되구 최고의 치료법은 골수이식 이라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1월에 퇴원해서 2월에 바로 같은 골수세포를 갖구계신분을 한국골수협회 라는 단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1분이 골수조직이 동일하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유자분의 기증불가라는 통보를 듣구 상처받은 맘을 추스리구
새로운 맘을 먹구 치료를 쭉받고 있었습니다.
치료라구 해봐야 사이폴린(면역억제치료제) 과 수혈로 간간히 목숨을 이어가구 있었습니다.
수혈을통해 목숨을 이어갈뿐 수혈의 대가가 그렇게 클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1년이 지나구 2년째 투병중일쯤 골수 코디네이터 선생님을 통해서 대만에도 골수조직이
맞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구 바로 공유자분과 접촉을 시도한끝에 2004년 12월28일에
서울대학 병원에서 골수이식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이유인즉 정확한 실패이유는 없지만 2년간에 수혈을 너무 많이 받았서
그럴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과 무균실에서의 치료 과정중 열이 심하게 나서
골수생착 과정중에 골수가 생착을 못해서
실패한거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수혈로인한 실패라...
병원에서 퇴원을 하구 너무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이제 어떻게 살어야 할런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과 함께 눈물밖엔 나를 위로해 주지 않더군요.
골수이식이 실패한지라 그전의 몸상태에 비해서 너무나도 몸상태가 심각해졌습니다.
h.b는 6.0 혈소판은 10000도 안되었구 과립구 수는 500개 정도뿐이 안되었습니다.
퇴원후에 몸에 남은 항암제와 감염세포가 아직도 남아서인지 하루에도 열이 40도를 웃돌다가
34도까지 떨어지는 고통을 겪고있었고 결국 제주대학교 병원에서
혈소판 수혈도중에 쇼크사로
인해서 현재 치료받구 있는 마산 삼성병원으로 옮겨 치료받구있습니다.
박경태 교수님의 친절한 배려로 인해서 지금은 조금 좋아졌습니다.
혈소판 수혈을 일반 혈소판 수혈이 아닌
성분채혈 혈소판 수혈을 일주일에 한번 받구 적혈구 수혈은 2주에 한번
받고있습니다
하루는 교수님께 여주어봤습니다. 제 목숨이 얼마나 살수있는지를.
길게살면 10년이지만 짧게 살면 얼마나 살수있는지 모르겠다구.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 수혈받는
거 조차도 길면 길다고 봐야한다구.
오래 살수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10년 밖엔 안된다는것은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적극적인 치료를 해보는게 어떻냐 하는 설득에 다시금 골수이식을 받을려구
서울대학병원 골수 코디네이터 선생님에게 연락을 취하고 작년에 골수를 기증해 주었던
분께 접촉을 시도 해달라구 부탁드렸습니다.
2일후 결과가 통보왔습니다.골수를 기증해주겟다는 공유자 분이 결정하셧다구...
기쁜마음에 선생님과 통화후 날짜만 조정만 하면되니깐 조금만 기다리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께서 연락이 오셨습니다.공유자분이 골수기증을 못해주겠다구 마음이
바뀌었다구.
아 정말 세상이 너무나도 가혹하더군요.이때까지 한국 대만 일본에서
7번을 골수 공유자로 부터 거절받았지만
그때마다 사람 생명을 갖구 장난치는거 같기에 너무나도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거절은 저로 하여금 새로운 결정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3년간의 걸친 투병생활중에 생긴일과 왜 이렇게 글을 올려야 하는지
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이해하게끔 하기위해서 글을 적어봤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글을 올린 사연에 대한 목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가 마산삼성병원에서 수혈받는 혈소판은 일반 혈소판과는 많이 다르다구 합니다.
저의 주치의신 박경태 교수님 말씀을 빌어서 말씀드리자면 20년간의 의사 생활동안
제가 수혈받구 있는 혈소판을 혈액원에 직접전화해서 부탁을 하면서까지 혈소판을 맡게
해주기는 처음이라구 합니다.
혈소판 라벨에는 "PLT APHERESIS" 라구 적혀있었구 성분 채혈 혈소판이라구 혈액원
관계자분이 말씀하시더군요.
저같은 환자의 경우는 혈소판수혈중에 혈장반응이 너무심해서 심한 오열과 두드러기로 인해서
부작용이 심하다구 합니다.그래서 제주대학병원에서 쇼크사가 한번 있엇구요.
그래서 성분 채혈 혈소판 이라는 혈소판을 수혈해주는 것이라구 합니다.
더불어 적혈구 수혈도 성분적혈구 수혈을 받구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오래시간 제주도에서 떠나있으니 고향생각도 나구 환갑지난 어머니 생각도
나구 친구들도 만나고 싶어 제주도에 내려가서 치료를 받을려구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분 채혈 혈소판을 제주도에서는 못해준다구 합니다.
이유는 제주도 적십자 혈액원에는 성분채혈 혈소판을 만들어주는 기계도 없을뿐더러
열악한 환경과 직원이 부족하다는 이유와 더불어 제주도 인구가 너무 작다는 이유였습니다
인구가 작은 지역에 산다구 다른도시와 차별대우를 받는다는것은 너무 불공평해 보였습니다.
그리구 그 기계가 들어온다해도 협력 병원이 없으면 혈소판 공급이 어렵다구 합니다.
또 그 성분채혈 혈소판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즉 수지가 맞아야 하는데 수지가 안맞는다구 하네요.저 혼자만 공급받으니 그럴수밖엔
없다구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제주도에서 치료 받는것을 포기할려구 했습니다.
이글을 올리기전에도 많이 생각도 했구요.나 혼자를 위해서 제주도 적십자에 성분채혈 혈소판을
만들수 있는 기계를 설치해달라구 하는것은 나만의 이기심이구 힘들어도 그러면 안된다구.
다른분과도 얘기를 나누어봤습니다. 어떻게 하는것이 올바른 결정인지를
어느분이 이러시더군요.
"적십자사의 역활은 단 한사람이라도 혈액을 원하면 공급해주는게 당연한 의무라구.
자기도 혈액에 관련된 일을 하지만 이런경우는 첨이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리구 만약 기계를 설치해서 지금은 너 혼자만이 혈액을 공급받게 되겠지만 앞으로
너와같은 환자가 분명히 생기게 될것이고 지금도 너와같은 환자가 전국 어딘가에 고향에서
치료를 못받구 사람이 적다는 이유많으로 타지에서 치료를 받구있는 환자도 있을거라구"
저도 이말을 듣구 많은 생각을 한끝에 결심을 하게되었습니다.
뻔뻔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욕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간곡한 부탁을 드려보구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 길게 살아봐야 10년입니다.10년을 살지 내일 바로 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젊은 나이에 병에걸려 누구나 다해보구 싶은 일을 참으면서 3년이란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저도 다른친구들처럼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싶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도 해보구 싶었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여자친구 사귀어서 미래도 생각하구 취직도 걱정하면서 열심히 살아보고
싶었습니다.하지만 현실을 인식하면서 이때까지 이렇게 참고 살아왔습니다.
환갑을 지나신 어머니를 옆에 모셔서 살지는 못할망정 어머니 마음만 아프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운건 제 체력과 힘이 6살 꼬마보다 못해서 혹시라도 어머니랑 길거리를 지나다가
밭일을 하다가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시면 어머니를 업고 병원에 모시고 갈 체력와 힘이
안될까봐 무섭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주도 혈액원에 제발 성분채혈 혈소판을 만들수 있는 기계와 환경을 제공해 주십시요.
10년을 살더라도 사람같이 살아보고 싶고 하고 싶은일 하면서 제 고향에서 살고싶고
제 고향에도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분께 감사드리구 제 글이 힘을 얻을수있도록 저와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분이 계시다면 리플을 달아서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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