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사회] ○…'딸들이 살아있어 다행입니다. 몸은 좀 다쳤지만 그보다 더한 것을 얻었으니…." 집에 불이 나자 어린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신한 이들을 껴안고 20여분간 불길을 온몸으로 막아낸 구용수(40·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씨는 화상투성이의 몸으로 병실에 누웠지만 자못 안도하는 모습이다.
10평 남짓한 단층주택인 구씨의 집에 불이 난 것은 26일 오전 4시. 현관쪽에서 누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길이 치솟자 거실에서 아들(7)과 함께 잠을 자던 구씨의 부인 황창임(36)씨는 황급히 아들을 안고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황씨는 곧 방안에서 잠자던 딸 가영(15),한솔(11)양이 위험하다고 깨닫고는 손님을 모시고 이웃집에서 잠자던 구씨에게 이를 황급히 알렸다.
구씨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집에 왔을 때는 이미 불길이 집안 전체에 번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 구씨는 솟구치는 화염과 연기를 뚫고 창문 좁은 틈으로라도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창문을 열다 깨진 유리조각이 구씨의 팔꿈치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검은 연기가 폐속으로 밀려들어와 숨조차 쉬기 힘들었지만 구씨는 방에 실신해 누워있는 딸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방으로 들어간 구씨는 정신을 잃은 두 딸을 안은 채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화재가 현관 출입문 쪽에서 발생한 데다 치솟는 불길과 연기로 탈출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상태였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딸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구씨는 이들을 두 팔로 감싸 끌어안고 자신의 등으로 뜨거운 열기를 막아냈다. 이 상태로 구씨는 방안 곳곳을 이리저리 헤맸다.
그러나 구씨도 이내 연기로 인해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딸들과 함께 죽음의 고비에서 20여분간 사투를 벌이던 구씨의 두 팔에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구씨가 의식을 잃을 무렵 멀리서 이웃 주민들과 부산 해운대소방서 소속 소방관들이 구씨를 찾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은 점차 잡혀갔고 구씨와 두 딸은 극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구씨의 두 딸은 가벼운 외상과 기도 손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구씨는 전신에 1∼2도 화상을 입었지만 딸을 지켜냈다는 기쁨에 아픔조차 잊었다. 딸들의 생사가 걱정돼 발만 동동 구르던 부인 황씨는 "119 아저씨들, 너무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구씨는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일단 딸부터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이웃 주민들이 신속하게 신고를 해주고 집안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쳐 줘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소방서 허영호 안전계장은 "10평의 좁은 공간에서 불길에 20여분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며 "목숨을 건 아버지의 노력이 딸들의 생명을 구한 것 아니냐"고 감탄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제휴사/부산일보 방준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