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家族). 힘들 때나 기쁠 때나 가장 든든한 힘이 되는 인연입니다. 그 가족들이 내일이면 모여서 웃음꽃을 피웁니다. 여기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살고 있는 세 가족이 있습니다. 평범하되 조금은 특별한 이들 가족의 설맞이 풍경, 따뜻하고 정겹습니다.
26일 저녁 유영선(52)씨는 큰아들 상연(22)씨와 함께 입김을 하얗게 뿜으며 강원도 산길을 걸어 올랐다. 한 손엔 가래떡 상자가, 다른 손엔 아이들에게 줄 설빔 상자가 들려 있다. 서울에 있는 직장 때문에 주말에만 횡성 집을 찾는 그는 이번 주엔 일찌감치 고향길에 올랐다.
설을 앞두고 시골집에서 잔치를 벌이기로 하고 일찌감치 횡성을 찾았다. 길 끝 이층집엔 부인 김신혜(51)씨와 다른 네 아들 하연(16), 승리(11), 진리(8), 그리고 막내 호현(3)이가 산다. 상연이는 아내 몸으로 낳았고 하연이와 승리, 진리, 호현이는 ‘가슴으로’ 낳은 입양아, 위탁아들이다.
횡성군 횡성읍 정암 3리, 소나무길 끝 허름한 2층집. “애들아!” 아이들이 조르륵 뛰어 나왔다. 막내가 무릎에 올라오고 진리가 등에 매달린다. “어이구 무겁네, 몸무게가 몇이냐? 여보, 호현이 소화는 이제 잘 돼?” 엄마 김씨가 푸성귀와 쌀밥, 감자떡으로 저녁상을 내왔다.
열여섯살 하연이는 1995년 서울 노량진에 있는 보육원에서 입양했다. 큰 아들을 낳고 아이 없이 산 지 10년 만이었다. 시댁, 친정에선 펄쩍 뛰었다. 말과 행동이 더뎠던 하연이는 그러나 유치원과 학교에서 놀림을 받은 뒤로 성격이 거칠어졌다. 타일러도 보고 매도 들었으나 그만이었다. 결국 하연이와 함께 대안학교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2002년 5월 유씨 가족이 강원도 횡성에 터를 잡고 집을 지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직장이 서울인 남편만 서울에 남아야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와 붙어 다녔다. 밭도 매고, 수학 공부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거칠던 아이가 조금씩 순해져 갔다. 2003년에는 대구에서 위탁받은 승리·진리 형제, 작년 11월엔 원주에서 위탁받아 데려온 호현이도 ‘아름답게’ 자라났다.
어느 틈에 아이들은 가족이 되었다. 석달 동안 녹내장으로 눈이 멀었을 때, 아이들은 ‘내가 먼저 엄마 간호한다’고 달려들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들을 꼭 껴안아줬다. “아이들에게 가족이 뭔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내일 아침, 그 ‘가족’이 서울 큰집으로 ‘공연’을 떠난다. 앞구르기를 잘하는 막둥이 호현이가 친척에게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날이다. “아이들 끌어안고 할머니 노릇 좀 하자”며 외할머니 김수정(84)씨가 수화기 너머에서 얼른 올라오라 성화다. 27일 아침, 곱게 설빔을 차려 입고 산책 갔다가 돌아온 가족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남남으로 살다가 한 가족이 된 귀하디 귀한 인연들이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다. 맑고,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