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때문에 자신이 스무살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진 중학생. 그리고 아픈 친구를 위해 3년간 같은 반에 넣어달라며 선생님께 부탁하고 손발이 되어준 친구. 그들을 위해 3년간 성금을 모아 300만원짜리 전동 휠체어를 사준 선생님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방학식이 열린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양동중학교. 떠들썩하게 마련인 방학식이지만 이 학교 전교생은 숨을 죽인 채 방송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루게릭병을 앓는 이재현(16)군이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전동 휠체어에 올라타자 학생들은 학교가 떠나갈 듯 박수치며 환호했다.
몸은 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서도 꿋꿋이 살아왔던 이군은 흘러내렸던 바지를 추켜올려 앉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3년간 이군의 휠체어를 밀며 등하교를 도왔던 단짝친구 조용재(15)군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특히 조군은 움직임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학년이 오를 때마다 선생님에게 같은 반으로 해달라고 요청,이군의 손발이 돼왔다. 부모를 대신해 손자의 등하교를 도왔던 할머니도 눈시울을 적셨다. 재현이와 용재의 특별한 우정에 감동한 선생님들도 3년간 돈을 모아 300만원짜리 전동 휠체어를 사줬다.
이군은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스무살도 살기 힘들다는 생각에 항상 절망만 하며 살았다”면서 “하지만 3년간 나를 돌봐준 용재와 할머니,그리고 고마우신 선생님들 덕분에 움직일 수 있게 돼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화장실 출입부터 급식,수업준비까지 모든 것을 이군과 함께 했던 조군은 “평소 많이 힘들어 하던 재현이가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뻐 눈물이 났다”면서 “많이 아플텐데도 자꾸 움직이려 하고 즐겁게 생활하려는 재현이를 보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이군은 한살 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고 초등학교 6학년 여름부터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이군의 기대 수명이 20세에 불과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했지만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이군 부모는 재활치료비를 댈 능력이 없었다.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 정기분(46)씨는 “서울대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차도 없고 병원비도 부담돼 제대로 재활치료를 시킬 수가 없었다”면서 “선생님들께서 좋은 선물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 최병영 교감은 “일기 첫줄에 ‘너희가 절망이라는 단어를 아느냐’고 쓸 정도로 좌절했던 이군이 다시 용기를 얻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양동중학교는 2월 졸업식에서 조군에게 학교장상을,이군 할머니에게는 장한 어버이상을 수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