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시작되었다. 서로간에 밀고 밀리는 치열한 총격전 속에 부상자가 속출하는 전장은 온통 아수라장 이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던 자욱한 화염이 걷히고 전투는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병사들이 참호에서 잠시 숨을 돌릴 때 다리에 총상을 입은 상사가 고통스럽게 울부 짖었다.
" 물, 나에게 물을 좀...."
그때 마침 위생병이 마지막 하나 남은 수통을 조심스럽게 상사에게 건넸다. 상사가 막 수통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시려고하는 순간 상사는 자신에게 집중된 소대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격전을 치룬 끝이라 상사 못지않게 목이 말라 있던 병사들이 상사가 들고 있는 수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상사는 차마 마시지 못하고 목이 탄 듯 입술이 까칠한 소대장에게 수통을 권했다. 소대장은 부하들을 한번 돌아보고는 수통꼭지에 입술을 대고는 한 모금 마셨다. 그리 고는 다시 상사에게 수통을 넘겼다. 수통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상사는 수통의 물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을 알았다. 소대장은 마시는 시늉만 한 것이이었다. 소대장의 마음을 안 상사는 자신도 마시는 시늉만 하고는 다음 병사에게 수통을 넘겨 주었다. 이렇게 전 소대원의 수통을 전달받아 물을 마셨지만 수통의 물은 처음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목이 마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