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의 여인 # 1. 희망이 시들어버린 아침

나영선 작성일 06.11.02 23:4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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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Writing]
ㅠ_ㅠ;; 아아 한편한편 쓰는게 정말로 힘든 일인지 이제 좀 알겠습니다 ㅠ_ㅠ;;
힘들게 썼으니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시작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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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 다시‥ 만난 것은

3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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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너스의 여인 ]

1부 - SHE IS FROM the 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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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희망이 시들어버린 아침



“네… 네 이 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는 거냐?”

나는 발갛게 상기된 아버지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어요.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이제 더 이상은 듣

고 싶지 않다고요.“

초췌한 아버지의 얼굴은 더욱 심하게 일그러졌다는 것을 저는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어

요.

단 한 번도 그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었던 제가 이제는 대놓고서 반항을 해보는 것은 이

번이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저 또한 어쩔 수는 없습니다.

책임이라는 무지막지한 무게를 혼자 짊어진 체 무너지고 그래서 짓밟혀야만 했던 이 엿같은

제 자신을, 그 무력함을 증오하게 되었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내가 으스러지고 있을 때 옆에서 방관만 하던 아니 오히

려 돌을 던지던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기도 합니다.

무책임한 아버지도 냉정히 보면 제겐 위선자이고 방관자일 뿐입니다.

아버지의 눈을 떳떳이 바라보고 제 뜻을 말할 겁니다.

처음입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주눅 한 번 들지 않고 제 의사를 당당히 밝혀 본다는 것.

‘아버지! 이 일도 잘만 되면 판사, 검사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성공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전 애초에 그딴 공부에는 관심도 없었다니까요. 저도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고 싶어요. 이제 저도 고3이고 이제는 제 인생을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아버지께서도 크게 반대하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이런 실성한 놈을 봤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돼!”

“…….”

비록 현실은 이렇지만 말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바이기에 저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제가 잠자코 있자 아버지께서 다시 차분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입에서는 아직 역

한 술 냄새가 풍기는군요.

“영민아.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보렴. 넌 성실한 아이니까 공부도 잘할 거라는 거 아버지는

믿고 있단다. 네가 기울어진 우리 집 일으켜 세울 대들보라는 거 알면서도 그렇게 어리석은

소리를 하면 쓰겠니?”

‘아버지는 제 고등학교 교문 앞에도 와보신 적이 없으시잖아요! 저에 대해선 아무것도 아

는 게 없고 또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시면서 매일 노름하고 술 마시고 집에도 일주일에

한 번도 올까 말까 하시는 분이 저를 믿는다구요? 절 진정 믿으신다면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격려라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버지는 항상 자기 자신만의 되도

않는 기준을 세워 놓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기준에 맞추기를 바라고 계신다구요! 그리

고… 지금 이 엿같은 우리 집 대들보는 제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시라고요!’

머리 속에서 분노가 격렬히 끓어오르지만 저는 한숨만 내쉴 뿐 내색도 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길게 말할 것도 없어요. 정 그렇게 받아드릴 수 없으시다면 전 이 집을 나가서 따

로 살겠어요. 그러니 더 이상 절 묶어 둘 생각은….”

‘ 찰 싹 ’

“이 노무 자식아.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그딴 식으로 말해 봐!”

나는 그냥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니까요.

그러자 아버지는 어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셨습니다.

“네가 뭘 처먹고 이렇게 돌아버려서 이 아비한테 눈에 쌍심지를 켜들고 대드는 건지는 모르

겠다만 그래, 나도 내 말 안 듣고 막 나가겠다는 자식 잡아 세울 생각은 없다.”

그럼 얘기는 끝났군요.

전 방문을 거칠게 열고 현관문을 향해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말씀 한마디가 제 귓전을 때립니다.

“단 네가 이 집 나가는 순간부터 이 아비와의 연도 그걸로 끝이라는 거 명심해라.”

“형……. 가지마.”

7살 된 코흘리개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옷자락을 잡습니다.

“서영재, 네가 왜 저 촌뜨기 새끼 집 나가는 걸 신경 쓰고 그래! 넌 그냥 저기 가만히 앉아

있으란 말야!”

여동생은 영재한테 공연히 화를 내더니 저를 차가운 눈길로 한 번 훑어보고는 그를 데리

고 자기 방으로 획 들어가 버렸습니다.

뭐 사실 여동생도 아닙니다.

저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냥 ‘발랑 까진 년’일 뿐이죠.

저는 그렇게 조용히 집을 나왔습니다.


.
.
.
.
.
.


“아…….”

눈을 떻습니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제 얼굴을 간질이는 탓에 다시 잠을 청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머리맡에 놓여진 시계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알람을 맞춘 시간 보다 30분 정도는 일찍 일어난 것 같군요.

다시 얼굴을 베개에 파묻으려다가 무심코 벽에 걸린 달력을 봤습니다.

“11월... 12일.”

작은 목소리로 오늘 날짜를 읽었습니다.


오늘로 3개월이 다 되었습니다.

집에 나온 지 … 그러니까 가출 한 후로부터 말이죠…….

이런 생각에 입에서는 허전한 한숨이 하품과 동시에 새어 나옵니다

“으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픕니다.

어제 포장마차에서 친구 녀석들과 퍼마신 술 때문이겠죠.

어떻게 이 옥탑방까지 올라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정신으로 시계 알람까지 맞춘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하며 방바닥을 뒹굴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뇌리를 스칩니다.

벌떡 일어서서 뚫어져라 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알람은 8시 반 정도에 맞춰져 있군요.

아차, 이런 젠장할. 역시 이건 비몽사몽으로 어제 밤에 맞춘게 아니었습니다.

한 십년 전에나 맞춰 놓았던 알람 인지도 모르죠. 어차피 고장난 거니까요.

저는 또 한 번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지금 가봤자 이미 제 차례는 훨씬 지나고도 남았을 테니까요.

그래요. 엿 같게도 오늘은 S 기획사 1차 오디션을 보는 날입니다.

정말 요즘은 정신을 어디에 놓고 다니는 놈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다음 날 오디션 본다는 놈이 술나발이나 불고 말입니다.

어제는 아마 어렵게 지원한 저번 M 기획사 오디션에서도 노래 한 번 부르지 못하고,

쫓겨나듯 푸대접을 받으며 보기 좋게 떨어진 한 병신을 자위하자는 차원에서 포장마차를 찾

았던 거구요.

요즘 트렌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고, 꾀죄죄한 옷차림만으로도

낙방시키기는 충분하다는 것은 저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끈질기게 항의도 해보았습니다만.

그러면 돌아오는 것은 ‘나이트 가수나 할 것이지……. 왜 자꾸 귀찮게 그러냐’ 라는 식의 욕

지거리 뿐이었죠.

그날도 술고래가 되어 신세타령을 곁들이며 통기타를 업고 명동 시내를 활보했던 걸로 기억

합니다.

투덜거리며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은 뒤에 기타를 어깨에 걸치고 현관문을 나서려다가 말고

저는 그냥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쳇……. 어차피 또 노래 한 번 못 부르고, 기타 한 번 손에 못 잡을 텐데. 개망신 당할 바

에는 안가고 말지, 씨발.“

옆에 뉜 기타를 잡았습니다.

같이 밴드가수를 하려던 친구들과 키워온 꿈은 한낱 백일몽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제 노래를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처음부터 난 패배자이고 아무런 쓸모도 없는 쓰레기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 나 같은 쓰레기가 무슨 가수냐. 다 개소리지. 그렇다고 가출한 놈이 무슨 상전인

냥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건 더욱 웃기는 일이지.”

맞는 얘깁니다. 이제 그동안 제 미래를 위해 모아두었던 돈도 동전 몇 닢으로 탈바꿈을 해

버렸거든요.



좋다 이겁니다. 어차피 밀린 옥탑방 사글세까지 내려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누구 말대로 나이트 가수를 하든 구두닦이를 하든 말입니다…….


이 개 같은 세상…….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었습니다.

회색 도시의 한복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콧잔등을 간질이고

뭉게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 한 줌이 머리위에 살포시 내려앉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떼며 한참을 그렇게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안녕?”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보이질 않습니다.

“여기야.”

나는 발밑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놀랍게도 옆에는 작은 민들레 싹이 피어있었습니다.

그 싹 자체는 그냥 평범해 보였지만 제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더

군요.

하지만 그냥 무시하려고 했습니다.

아직 술이 덜 깨서 그런 줄 알았거든요.

내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을 그 녀석도 알아챈 것인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야. 인간이 하찮은 내게도 관심을 가져주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이 귓전에 울리는 그의 생생한 목소리 때문에요.

전 말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이런 저를 보았다면 미친놈이라고 욕 했을지도 모르죠.

“넌 누구니?”

그 녀석은 내 질문은 묵살하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뭐 저도 굳이 알고 싶어서 물은 건 아닙니다.

(보다시피 그냥 민들레 싹이잖아요!)

“난 지금 너무나 기뻐! 여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여태 수십 번도 더 말을 걸었어. 하지만

그때마다 철저히 외면당했지. 그게 너무나 당연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제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어서 난 정말로 행복해.”

“마지막이라니?”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난 여기서 태어났어. 메마른 땅 속에 작은 뿌리를 내리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비집고 올

라와 싹을 틔웠지. 헌데 이곳에서는 따스한 햇빛도 깨끗한 빗물도 상쾌한 공기도 단 한

모금조차 마실 수 없었어. 그래서 보다시피 내 몸은 이렇게 죽어가고 있어…….”

그의 말대로 그는 축축한 음지 속에서 조용히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

왠지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보통 때는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던 하찮은 민들레 싹이 말이죠.

“그 후로 나는 내 자신을 너무도 증오하고 저주하게 되었지. 이렇게 난 죽어가고 있는데,

너희 발걸음으로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내 몸에도 따스한 햇빛이 내릴 수 있는데 그저 조용

히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나약한 내 자신이 너무도 싫었거든.”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해줄 말도 없었습니다.

“너희는 아마 모를 거야. 외로움이 어떤 건지,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말야. 밤이 되면 난 외

로움과 두려움을 품에 끼고 잠이 들고는 해. 내 곁엔 그 누구도 없었어. 검은 하늘엔 별

님도 달님도 보이지를 않고 잿빛 땅에는 온통 싸늘한 시신으로 가득해. 다 죽어버렸거든.

이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서 뿌리 내릴 곳을 찾지 못해 싹도 피우지 못하고 뒹굴던 녀석들

도, 누렇게 뜬 얼굴로 비를 찾다 말라버린 녀석들도 모두 고통을 토하면서 죽어갔지. 죽음

에 침식당하는 생명을 지켜본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야. 더욱이 그게 내 생

명이라면 말이지…….”

“…….”

그는 힘없이 말했습니다.

“난 너희들이 너무도 부러웠어.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따스한 햇볕 아래서 상

쾌한 공기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할 수 있는 너희들이. 그래. 난 이런 지옥도 대수롭지 않게

벗어날 수 있는 너희들이 가진 그 두 다리가 너무나도 부러웠어…….“

“…….”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도 곧 다리를 가질 수 있어.”

“어째서?”

제가 묻자 그가 곧바로 답했습니다.

“난 이제 곧 죽을 테니까.”

그는 미소를 입에 머금고 말을 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그러셨어. 자유를 갈망하는 생명에게는 영혼이라는 게 있다고 …

영혼이 된다는 거. 그건 마치 내가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던 민들레 씨였을 때

와 같은 것이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이제 난 다시 근사한 다리를 가질 수 있게 될

꺼야…….“

.
.
.


그 싹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죽어버린 걸까요.

그래서 그의 말대로 근사한 다리를 가지게 된 걸까요.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이후로 저는 다시 그 싹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말없이 고개를 떨군 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나도 자유로운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어. 내게도 두 다리는 없거든…….”




# 1. 희망이 시들어버린 아침 The End

[To be continued]

Next - # 2. 만남.. 그리고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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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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