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강뇽 작성일 06.11.13 20:46:53
댓글 1조회 509추천 1
116341843222409.jpg


내남편 될 사람은



월급은 많지 않아도 너무 늦지않게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길


퇴근 길에 동네 슈퍼 야채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핫~' 하고 웃으며
저녁거리와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집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갈 수 있길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 날 있엇던 열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 들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 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들어와서 같이 후다닥 옷 갈아입고 손만 씻고, 한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겆이를 덜그럭덜그럭 하고 또한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배고파~" 해가며 찌게 간도 보는 싱거운 사람이었으면



다 먹고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겆이를 미루며 왜 니가 오늘은 설겆이를 해야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바위보로 가끔은 일부러, 그러나 내가 모르게 져주는 너그러운 남자였으면



주말 저녁이면 늦게까지 티브이 채널 싸움을 하다가 오 밤중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 바람을 맞으며 같이 비디오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 떡볶이에 오뎅국물을 후룩후룩~ "너 더 먹어~" "나 배불러~" 해가며 게걸스레 먹고나서는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 채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가끔은 나처럼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어떤 땐 귀찮게 부지런하기도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침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반바지 입혀서 눈도 안 떠지는 나를 끌고 공원으로 조깅하러가는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오는 길에 베스킨라빈스에 들러 아이엠 쌤이나... 프라린앤 크림이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콘을 두 개 사들고 "두 개 중에 너 뭐 먹을래?" 묻는 사람이었으면



약간은 구식이거나 촌스러워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어머님의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친 엄마한테하듯 농담도 하고, 장난쳐도 버릊없다 안 하시고, 당신 아들때문에 속상해하면 흉을 봐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그런 시원시원한 어머니를 가진 피붙이같이 느껴져 내가 살갑게 정 붙일 수 있는 그런 어머니를 가진 사람이였으면



나 처럼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를 닮은 듯 나를 닮고 날 닮은 듯 그를 닮은 아이를 같이 기다리고픈 그럼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의견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만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어른이 보기엔 분명 잘 못된 선택이어도 미리 단정지어 말하기 보다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이였으면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아이들이 잠 든 새벽 아내와 둘이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따라놓고 앉아 아직껏 품고있는 자기의 꿈 얘기라든지 그리움 담김 어릴적 이야기라든지 십 몇년을 같이 살면서도 몰랐던 저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젠 눈가에 주름잡힌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음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사람.


술 자리가 이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줄 아는 사람.



내가 그의 아내임을 의식하며 살 듯, 그도 나의 남편임을 항상 마음에 세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강뇽의 최근 게시물

좋은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