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
-동양화재, 정건섭 대표
[머니투데이] "CEO보다는 조직이 더 중요합니다. 조직이 있고나서 CEO지요."
키 180㎝가 넘는 거구의 동양화재보험 정건섭 사장(61)은 덩치와 달리 한사코 몸을 낮췄다. "나에 대해선 묻지 말고 회사에 도움이 되도록 잘 좀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자는 입이 탔다. `박종인이 만난 사람""이란 코너가 회사경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CEO의 개인사를 담담히 정리하는 곳이라는 말을 여러번 했건만 대화가 한걸음만 나가도 또 다시 화제는 회사로 돌아오곤 했다.
정말이지 정 사장의 조직(결국은 회사와 직원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집요해 보였는데 그를 그 자리까지 밀어올린 힘이 바로 그 것이 아닌가 싶었다.
#늦깎이
그는 늦깎이 보험인이다. 대학(성균관대 경영학과)을 졸업하고 학군장교(ROTC)로 군생활을 마친 뒤 4년간 사업(본인은 그냥 `장사""라고 몇 번을 강조했지만)을 했으나 여의치 않아 뒤늦게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에 입사했다. 비록 사업에는 실패했지만 사회에 대한 `진한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은 그가 보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두고두고 `보약""이 된다.
직장생활을 한다면 금융 쪽에서 하고 싶었는데 보험을 택한건 순전히 나이 때문이었다. 한국자동차보험이 국내 자동차보험을 독점하고 있을 땐데 사원모집에 나이를 문제삼지 않았던 것. 보상에서부터 기획, 인사, 총무 등 주요 업무를 두루 해봤다.
자동차보험의 독점이 풀린 1983년 그는 동양화재로 스카우트됐고 그후 16년만에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뚜벅뚜벅...보험외길 28년만에 월급쟁이의 꿈, CEO가 된 것이다.
나이 탓에 보험회사에 들어갔지만 그는 "다시 태어나도 보험을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보험이 뭐길래 그를 그토록 사로잡았을까.
"보험의 매력은 무엇보다 남의 불행을 관리해 준다는데 있습니다. 타인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거지요. 좋은 일 아닙니까?"
이타주의가 훌륭하다는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글쎄 직업으로까지는…. 이 정도 설명으로는 납득이 안갔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보람을 느낀 사례를 하나 들어달라고 졸랐다.
"어떤 업체인지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그 업체가 손해보험에 가입하는데 우리 계산으론 자산이 10억원 이상인데도 그 쪽에선 자꾸 장부가를 기준으로 5억원이라고 깎는 거예요. 보험료를 적게 내려고 그런 거지요. 보험물건의 가격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니까. 그걸 잘 설득해서 10억원에 계약했는데, 그만 한달도 안돼 그 업체에 불이 나서 공장이 다 타버렸죠."
자칫 망할 뻔했던 그 회사는 보험금을 받아서 곧바로 정상화됐고 그 회사 사장은 만날 때 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는 것.
#사람
정 사장의 강점은 부드러움, 그리고 주특기는 인화(人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한다. 동양화재 정인현 홍보실장은 "사장께서 직원들에게 큰소리로 화내는 걸 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까지 말했다. 물론 과장이 섞였겠지만 기자의 느낌에도 정 사장은 무척 부드러웠다.
사람이 최대의 무기이자 끝까지 지켜야할 재산이라는 보험업계의 리더역에 잘맞는 성격 같았다. 그래서 `제일 꼴보기 싫은 직원은 어떤 부류냐""고 역습을 해봤다.
그는 기다렸다는듯 "월급쟁이 근성"이라고 딱부러지게 말했다. `그런 거 없다. 모든 직원을 다 품고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복지부동, 은폐, 리스크에 대한 불감증…. 이런 직원들이 가장 골치지요.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고 월급쟁이 근성에 사로잡히면 그렇게 됩니다."
특히 금융업에서는 직원 한사람 한사람이 사장을 대리해서 결정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주인의식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럼 어여쁜 직원은 어떤 사람일까.
"성품이 좋아야 합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람 됨됨이가 더 우선이지요. 그리고 하고자 해야 하고, 또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변화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매사에 겸손하기 마련인데 그는 이런 직원을 최고로 꼽았다.
반면 `나는 변화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독불장군형이 최악이라며 이런 직원은 버릴 수 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같은 단단한 원칙이 있기에 그의 부드러움은 유약함으로 흐르지 않고 되려 강점이 되는 게 아닐까.
#돈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즉 재테크에 대해서 묻자 그는 살면서 필요한 `5가지 테크""가 있다며 하나씩 풀어놓았다.
첫번째는 건강테크. 물을 많이 마시고, 토막잠으로 피로는 그때 그때 풀고, 짬만 나면 간단하게 나마 운동을 할 것.
둘째는 재테크. 월급쟁이는 월급쟁이의 도(道)가 있고 장사에는 장사의 도가 있는 법. 분수껏 살아야 돈이 쌓인다. 그리고 많이 베풀 것. 술값 커피값 아끼지 말고 남에게 베풀어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 것. 돈 보다는 사람이 재산.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열정과 희생이 필요한 법. 다른 사람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셋째는 시테크. 매일 해야 할 일을 수첩에 적어놓고 하나씩 점검할 것.
넷째는 재능테크. 필요한 정보는 꼭 메모해서 자기 것으로 삼을 것. 이런 식으로 정보가 쌓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남들로부터 `저 사람은 꼭 필요한 인재""라는 평가를 받기 마련.
다섯째는 심(心)테크. 세상사 모두 마음먹기에 달린 법. 마음을 편하게 가질 것. 특히 남을 용서할 줄 알아야 마음이 편하다는 걸 명심할 것.
심테크를 설명하면서 그는 "자기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인색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는데 목소리는 낮았지만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인터뷰가 아니라 경험이 많은 선배님을 만나 좋은 가르침을 받은 셈이다. <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