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진리, 김선욱, 책세상, 2001
정치 영역에 철학적으로 접근함으로서 생기는 결과는, 의견의 복수성과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인간의 복수성의 파괴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설득'의 역할을 부정하는 '절대적 준거'를 정치영역으로 도입한 데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행동은 이러한 준거와 척도에 의해 일괄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복수성은 더 이상 존중될 필요가 없어진다. (80p)
정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주장은 진리 주장이 아니라 의견의 형태로서 드러나는 주장이다. 의견이란 의견을 제출하는 개인의 생각이며, 다양성이 생명이다. 의견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갈릴 수 있지만, 그의 진리성을 단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준거는 없다. 의견은 결국 의견을 말하는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언어의 개성 중 현시적 특성에 의존한다.
그런데 의견은 어떤 문제에 대해 제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견은 의견 제시자의 개성 표출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며, 의견을 듣는 사람을 설득하고 그의 동의를 얻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의견은 설득력을 필요로 한다. (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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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독서노트다. 그동안에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딱히 소개시켜드릴만한 책이 없었다. 기웃거린 끝에 유레카를 외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첫번째로 떠오른 것은 정치적인 발언을 하려 할 때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대한 것이었다. 간혹 정치경제사회 게시판에서 정치에 대해 말해보고 싶지만 아는 것이 없어서 어떠한 길을 구하는 분들의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사회의 제반 문제, 이념과 양극화의 갈등 등의 문제를 그런 분들이 돌아보기 전에 이책을 먼저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두번째로 떠오른 것은 왜 항상 정치적인 논쟁의 문제에서 결국은 아집의 문제가 발생하는가의 문제였다. 그것도 이 책의 논리대로라면 명쾌하게 설명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은 정치를 바라봄에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을 가진 분들에게도 역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의외로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오류들이 이 책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몇몇 혹자 중에 특정 정치인을 싫어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 자체는 일종의 정치적 의견이다. 그런데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 사람을 싫어하는 근거를 말할 때 그 부분은 정치적 의견이 아닌 사회적 판단이 된다.
사회적 판단은 기준과 준거틀이 있고 이 확정된 것으로 판단하는 문제이다. 때로 우리는 법을 이용한 준거틀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법에 의한 준거틀도 사실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법의 준거틀 역시 변화하거나 조작될 수 있는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사람이 그랬기 때문에'와 '그 사람을 싫어한다'라는 부분이 구분되어야 한다. '그랬기 때문에' 는 팩트를 생명으로 가야 하는 부분이지만 '그 사람을 싫어한다'는 정치적인 개인의견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자주 착시가 생긴다. '그랬기 때문에' 라는 진리의 영역에서 '그 사람을 싫어한다' 의 영역이 고정된 진리의 성격을 띄고 파생된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사람을 싫어해야 한다' 라는 설득을 하고 싶은 주장으로 끝내 정치적 의견 자체까지 변질된다.
이때문에 논쟁적 공격을 당할 때는 이러한 착각된 진리의 무결성을 훼손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인간의 무시당하기 싫어하는 정치적 본성이 이빨을 드러낸다. 결국 최초의 논쟁점을 서로가 확정지어 이해하는 것도,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도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이러한 패턴이 바로 정치적 이슈들에서 항상 보이는 모습들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항상 좌와 우의 구분이 없이 진행되는 것들이다. 즉, 절대적 진리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전달하겠다는 그 습성 때문에 모든 논쟁의 사단이 벌어지는 것이다. 비단 이것이 정치적 문제만의 일일까? 근자에 sns의 행동을 둘러싼 모 대학 학생들의 분쟁이 사회뉴스로까지 떠오르는 등, 그 영역은 도처에 존재한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런 기본적인 정치적 대화의 메카니즘을 이해하는 것을 추천하고자 하는 의도에 있다. 상호간에 이런 것들을 전제로 할 때, 우리의 대화와 설득의 초점은 좀 더 연마될 수 있어, 이 책이 나온 무려 2001년 때의 상황으로부터 조금도 변하지 않은 소용돌이 속에 좀 더 변화의 씨앗을 꿈꿔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