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개인적인 생각은 --표로 따로 정리합니다.
614. 지혜에 관계된 문제에서 변덕이라는 것은 추잡한 것이다.
--변덕은 일관성의 손상을 말하는 것이다.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근거나 명분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보이는 상태에서 변덕을 행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615. 탁월함은 쇠퇴하기 마련이며, 명성도 그렇다. 쇠락한 탁월함은 새로운 평범함에 밀려나기도 한다.
--한 때 탁월했던 것들이 익숙함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경우는 많이 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업무의 영역, 아이디어, 유행의 부분들이 그런 영역으로 들어섰는가를 판단해야 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런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새로운 아이디어보다 유지 보수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유지 보수조차도 포기해야 할 타이밍이 있다. 이런 흐름을 잘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전술에서도 어떠한 요충지를 얻고 어떻게 진지를 보강하여 적을 막으며 어떻게 후퇴하고 어떻게 다음 진로를 이어나갈 것인가의 문제는 항상 지휘관들이 염두에 두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지휘관 자신에게도 달려있지만, 적의 움직임에도 달려있는 문제이다.
616. 태만함은 때로 재능 있는 자에게 가장 권할만한 일이다. 천박하고 억센 시기심은 재능있는 자를 박해한다. 완전함은 결함이 없다는 이유로 시기심의 미움을 사고 완전함의 죄목으로 단죄된다. 그러나 지혜에서는 결코 태만하지 말라.
--현재의 시대에 와서, 태만함을 보인다고 시기를 안 할 수 있는 상황은 지났다. 시기심은 이제 모든 것에서 불특정하게 나타나며, 시기만을 위한 시기심이 될 여건도 충분히 갖추었다. 그러므로, 시기심에 대항할만한 행동과 이미지를 구축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세력에 떠밀려 시기심은 못난이들의 표류하는 품평 정도로 남을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지혜에 있어 예민하고, 사람에 있어 친근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617. 현명한 자에겐 벗의 어리석음보다 적의 어리석음이 더 쓸모있다.
--벗도 어리석을 수 있고 적도 어리석을 수 있다.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고, 인간이란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 점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인간에게 그렇게 크게 실망할 일은 줄어든다. 상대를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자신의 속에서 과장된 것은 아니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618. 증오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첨이다. 증오는 결함을 없애려 하나 아첨은 이를 감추려 하기 때문에, 현명한 자는 남의 원한에서 자신을 바라볼 거울을 찾아낸다. 그것은 호의보다 충실하다.
619.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은 커다란 불행이다. 그러나 매사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은 더 큰 불행을 낳는다.
--태만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하다. 적절하게 계산된 형태로.
620. 언제나 중상하는 자들은 있는 것이며, 나쁜 명성은 쉽게 얻는다. 왜냐하면 나쁜 것은 더 믿을 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욕을 씻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현명한 자는 군중의 파렴치함에 언제나 주의한다. 시정하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심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상의 모습 혹은 살아왔던 과거를 밝히지 않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나, 지금은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한 시대에 들어섰다. 중상 혹은 상황에 대한 대처는 각 상황마다 그 대응을 달리 하여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621. 우아함이 없는 지식은 조잡하고 거칠다. 지식만이 아니라 말과 의지도 우아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프레임의 필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622. 정신의 재능이 열매라면 우아함은 나무껍질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거칠어서 자신이 지닌 탁월함조차 참을 수 없는 야만성으로 바꾸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남에게 거칠게 대한다는 것은 의외로 두려움의 산물일 수 있다. 인간관계에 대한, 혹은 자기비하적인 요소들이 보여질까봐,
623. 일치감을 보이면 호의를 얻는다. 그러나 그런 기술이 노련하기 위해선 많은 재능이 필요하다. 지식과 취미가 다방면인 사람에겐 적응하는 어려움이 줄어든다.
--항상 지식과 취미가 상대방과 같을 수는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상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상대를 통해 일정정도 듣고 배우는 것이다.
624.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어리석음과 방탕함이다. 어리석음은 생명을 지킬 분별력이 없고 방탕함은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미덕에는 보답이 따르듯 악덕에는 징벌이 따른다.
--이 부분은 자본주의가 오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미 사회구조가 잘못 짜여진 상태인데 그것을 절대적으로 간주하고 거기에 맞추지 않으면 악덕이요 낙오이니 그만큼의 징벌을 받는 게 응당하다고 외치는 부조리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부분은 민주주의와도 상충한다. 전체주의가 아닌 이상 모두가 동의할 수 없는 사회구조의 문제는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인데 이 악덕의 개념을 차용, 왜곡해 개선의 거부가 응당한 것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