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장르의 재발명, 진.D.필립스 엮음, 마음산책, 2014
감독은 아이디어와 감식력을 만드는 일종의 기계입니다. - 9P
근래에 인터스텔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한스 짐머의 음악을 제외하면 그렇게 크게 경이로운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마약에 비유하자면 더 엄청난 마약을 먼저 맛본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고, 그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10여 년 전만 해도 개인적인 치기로 생각하기를, 예술가란 무릇 기능공과는 틀리다고 보았다. 영화를 예로 든다면 기능공들이 그 쪽의 공구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능수능란하게 제품을 뽑아낸다 하더라도, 예술가들은 기능공들이 노닐고 있는 트램폴린 밖으로 과감하게 뛰어나와 그 이상을 능히 생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들은 그저 개인의 오류로 끝났음을 밝혀둔다. 그렇게 정의한들 칼처럼 딱 맞아 떨어지지도 않는 범주의 구분들은 그 정의 자체를 용도폐기하게 만들었다. 기능공들이라도 예술적인 면들을 발견하여 활용할 수 있고, 예술가라 하더라도 기능공과 같은 기술들은 결국 필요하게 마련이니.
인터스텔라의 영향 이전에 있었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떠올리며 문득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 졌을 때. 때마침 도서관에는 이 책이 내 손을 당겨대고 있었다.
이것은 위인전기 같은 구성이 아니다. 전기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 정체는 그와의 인터뷰 모음집에 불과하다. 그것만으로 사실 그의 모든 생각을 파악한다고 하면 오만이며 오산이 되겠지만, 그 편린들은 꽤 중요한 지점들을 던져주고 있다. 그 중에는 위의 개인적인 생각이 완벽한 오류였음을 확인시켜 주는 요소들도 있고, 그 외에 큐브릭의 여러 가지 면들로 하여금, 예술가의 노력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만드는 데도 또한 효과적이다.
책에 나오는 인터뷰들 속에서 큐브릭의 말은 항상 반복되는 점들이 있다. 또 큐브릭의 인생을 소개하는 단락도 계속 반복되어 읽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전체의 책 중에서 에스프레소를 우려내듯, 그의 생각 중 임팩트가 있는 부분을 찾으면 몇 가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을 감화시킬 정도의 힘도 사실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것은, 그는 예술가와 기능공의 태도 모두를 갖추었다는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데 있을 것이다. 필모그래피 속의 작품 숫자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지만, 그 작품 하나하나는 도저히 잊혀지지 않을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그것들을 만들기 위해 그는 그 주제나 내부 문제에 관련된 모든 서적을 읽으며 자료를 체크하고,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전부 생각하려 애썼으며, 그 중에서도 좋은 테이크들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후에는 편집까지 전부 도맡아 해버렸다.
적어도 1-1.5년 안에 결과물을 뽑아내는 지금의 상황과는 천차만별이며,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기피대상에 낙오자처럼 되어버릴 지경의 인물이 시대가 만든 제작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해 전해지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물론 이것이 진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최소한은 갖고 있어야 할 태도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그것이 비단 예술이나 영화라는 장르적 내부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분야 전체에 대한 기본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
그것이 이 서적에서 건져내고 유념해야 할 점이다.
-----사족으로,
스탠리 큐브릭은 훌륭한 영화감독이 되는 좋은 길은 직접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닥치고 한 편 만들어보라고 한다. 시대는 스탠리 큐브릭이 옴팡지게 부러워할 시대다. 예전처럼 필름 카메라 따위가 아닌, 동시녹음이 되는 디지털 고화질 무비 카메라들을 우리는 주머니에 하나씩 가지고 있고, 사운드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제대로 편집할 프로그램도 컴퓨터에서 가볍게 돌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역설적인 현실 속에는 한 가지 숨은 사실이 있다. 기계는 발전하는데, 인간들의 두려움은 더 커졌다는 것. 스탠리 큐브릭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려고 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