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책] 거실의 사자

로오데 작성일 21.10.24 13:31:03 수정일 21.10.24 13: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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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게일 터커 저/이다희 역 

 

 

고양이는 스스로 가축화를 선택한 독특한 동물이다.

인간은 가축과 매정한 거래를 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고양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수천 년 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인간을 위해 무언가를 하도록 진화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인간은 고양이를 사랑한다. - 본문 발췌

 

 

1. 사자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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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잇과는 포유류 식육목, 즉 “고기를 먹는 동물”에 속한다. 1킬로그램도 안 나가는 붉은 점살쾡이부터 3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시베리아호랑이까지 고양잇과에 속하는 30여 종의 동물들을 생물학자들은 고도 육식동물이라고 부른다. 고양잇과 동물의 이빨은 그 유일한 목적이 도살이므로 모든 고양잇과 동물의 주둥이는 생물학자도 분간하기 힘들 만큼 비슷하게 생겼다. 고양잇과 동물은 1000만년 이상 놀랍도록 다양한 서식지에서 살면서 최상위 포식자 위치에 있었다. 600~700만년 이전 인간은 고양잇과 동물의 먹이였다. 인간의 가축화와 텃밭의 첫 등장은 여러 다른 동물, 특히 고양잇과 동물에게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사람 잡아먹는 사자는 퇴위했을지 몰라도 보잘것없던 고양이가 새로운 세기의 사자로 등극해 동일한 왕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토록 힘이 세고 용맹해도 고양이처럼 멀리 뻗어나가지 못했다. 고양이는 북극권에서 하와이군도까지 차지했으며 도쿄와 뉴욕을 점령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체를 급습하여 접수했다. 그리고 그 와중 지구상에서 가장 값비싸고 경비가 삼엄한 영역까지 차지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요새를 손에 넣은 것이다.

 

 

2. 인간을 간택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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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온갖 다양한 소형 포식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거실에 오소리나 여우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고양이만 가축화되어 우리와 함께하게 됐을까? 게다가 고양잇과 동물과 인간 사이에 그토록 심한 불화가 있었는데도 우리는 도대체 왜 고양이를 집 안까지 들여놓았을까?

 가축화 특성의 결정적 특성 바로 온순한 품성이었다. 기본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짝짓기를 하고 번식을 할 수 있다. 토끼와 같이 우리의 혼란스러운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차분한 동물들을 사육했다. 고양이의 경우 흥미로운 점은 스스로 이 같은 특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우리들 사이로 처음 들어온 고양잇과 동물은 나약하고 온순한 녀석이 아니었다. 사자의 심장을 가진 용감한 녀석들이었다. 누구보다 겁 없는 고양잇과 동물들은 일단 침투해서 우리가 남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튼튼해진 다음, 근처에서 밥을 먹는 다른 용감한 고양잇과 동물들과 짝짓기를 해서 더욱 배짱 좋은 새끼들을 낳았다. 가축화 대상으로 간택된 동물이 아니라 침입자들이었다.

 

 

3. 고양이는 아무것도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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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는 양을 몰고, 도둑을 막으며, 인간에 복종하는 친숙한 동물다. 하지만 고양이는? 고양이는 정말 해로운 짐승을(쥐) 막을까? 존스홉킨스대학교는 ‘고양이와 쥐의 상호작용’이라는 연구 분야를 실시하고 볼티모어의 수많은 길고양이들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쥐의 개체 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연구한다. “고양이가 쥐를 죽이는 걸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어요. 그 환경에서 두 종은 천적 관계가 아니었어요. 동일한 자원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워낙 풍부하여 경쟁할 필요조차 없는 그 자원이란 바로 쓰레기였다. 현대적인 공중 위생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쓰레기는 여러 동물에게 골고루 돌아가고도 남는다. 연구에 임한 3년동안 차일즈는 쥐의 잔해를 통해 고양이가 쥐를 먹은 사례를 매우 드물게만 확인했으며 이나마도 아주 어린 새끼에 국한되어 있었다. 문제는 고양이가 때때로 설치류를 먹느냐가 아니다. 인간 문명에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양을 먹는가이다.

 고양이는 귀여운 요소들이 완벽하게 뒤섞인 외형을 지녔다. 그럼에도 동시에 한때 우리의 조상을 학살했던 동물과 아주 많이 닮았다. 고양이의 얼굴은 최고 포식자의 얼굴인 동시에 아이의 얼굴이고, 그 조합에 매혹적인 긴장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의 마을에 예쁘게 앉아 있거나 쓰레기를 먹거나 시궁쥐를 피하면서 우리 곁에 달라붙어 있기는 해도 고양이는 꼭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하는 동물은 아니다. 고양이는 결국 고양이다. 자연속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고양이는 더 이상 중위 포식자가 아니며 인간이 만든 세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4. 새 애호가들의 외로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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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의 조상이 우리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침범한 지 1만 년이 흐른 지금 고양이는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있다. 헌 대 존재감이 없었던 고양이들은 현재 전 세계에 6억 마리가 있고 일부 연구학자들은 그 숫자가 10억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고양이를 가장 많이 밀어준 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최대의 해상 권력을 장악했던 대영제국이었다.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은 1914년 고양이를 심지어 남극까지 끌고 갔다. 고양이의 쥐잡이 능력을 믿었던 영국인들은 사려 깊게도 잠재적인 식민지로 여긴 머나먼 섬들에 고양이를 놔두고 왔다. 고양이와 개의 차이점은 어디에 떨어져든 자생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포식자로서 고양이는 거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자외선을 볼 수 있으며 초음파를 들을 수 있고 3차원 공간에 대한 신비로울 정도의 이해를 갖고 있어서 소리가 발생하는 지점의 높이도 판단할 수 있다. 고양이는 고양잇과 동물에게만 주어진 이 특별한 재능을 다른 고양잇과 동물은 가지지 못한 유연한 친화력과 결합시킨다. 일부 야생 고양잇과 동물은 특정한 친칠라 또는 산토끼만을 먹는 반면 고양이가 먹는 동물은 1000종이 넘으며 여기에는 쓰레기통에 든 온갖 기이한 잡동사니는 포함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던 섬들은 생태 댜양성의 보고이다. 토종 먹잇감은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뭘 모르는 섬 동물들은 대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 심지어 두려움도 모른다. ‘섬 생물 특유의 온순함’ 때문에 그야말로 날지 못하는 새처럼 가만히 앉아 잡아먹히기를 기다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다센섬에 1800년대 후반 유입된 고양이들은 아프리카오스이스터캐처, 크라운드랩윙, 호로새 등을 사냥했다. 1950년대에 군 수비대가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간 멕시코의 소코로섬에서는 비둘깃과의 새가 멸종되었다. 

 이러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고양이 제거를 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고양이 자체의 놀라운 복원력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생태학자는 묻는다. 

“특정 동물에게는 넘치는 애정을 보이고 신경을 쓰면서 다른 동물의 안녕르 무시하는 것은 왜일까요?” 

이에 보전생물학자 크르스토퍼 레프치크는 말한다. 

“우리는 어떤 동물을 좋아할지 고르고 선택하죠.” 

우리가 좋아하는 동물은 다름 아닌 고양이인 것이다.

 

 

5. 고양이 로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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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로비스트 들은 사회화가 되지 않은 고양이는 밖에서 사는 것이 맞고 애초에 보호소 안에 갇힐 이유가 없으며 안락사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세계였다면 사회화가 되지 않은 고양이는 숲속에서 남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애완동물이 될 수 있는가와는 별개로 고양이의 가치가 결정되는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지금보다 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옛말대로 정말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놓아주라는 것이다.  

 고양이 로비스트의 주장에 따르면 더 나은 방법이란 고양이를 밖에 살게 내버려두되 그 놀라운 번식력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TNR이라고 불린다. ‘잡아서(Trap), 중성화하고(Neuter), 풀어준다(Release)를 줄인 말이다. 중성화한 뒤 풀어주는 이 방법은 전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고 여러 주요 도시들이 받아들였다. 

 동물 애호가들 가운데 가장 극렬하게 TNR에 반대하는 측은 당연히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밀물처럼 늘어나는 고양이와 싸우기 위해 미국조류보호협회는 ‘고양이는 집 안에’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물론 고양이의 생존 능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점이다. 중성화로 길고양이 숫자를 효과적으로 줄이려면 전체 개체 수의 약 71%에서 94%를 붙잡아 수술해야 하고 거의 모든 암컷이 여기 포함되어야 한다. 그 이하로는 소용이 없다. 수술받지 않은 고양이들이 번식을 늘리고 결국에는 주변 환경이 지탱할수 있는 수준까지 고양이의 숫자가 다시 늘어난다.

 “고양이는 번식 기계예요”

 터프츠대학교 수의사 로버트 매카시가 말한다.

 길고양이 집단을 중성화하는 방식이 효과가 없다고 한다면 안락사 또한 효과가 없다. TNR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이것을 인정한다. 개체 수에 영향을 줄 정도로 고양이를 붙잡아 중성화시키기도 어렵지만 붙잡아 죽이기도 똑같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연구 모델에 따르면 전체의 97%를 제거해야 비로소 살처분이 최선의 개체 수 관리 방식이 된다.

 문제는 고양이 활동가들이 정말 고양이 개체 수를 줄이고 싶어 하는지 끊임없이 의심이 든다.

 고양이 개체 수 감소 컨퍼런스 발표를 마친 발표자가 갑자기 갓 태어난 매우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띄웠다.

 “이 아이는 제 새끼 고양이 렉스입니다!”

발표장을 매운 청중은 자지러졌다. 

마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발표의 끝에 불붙인 코카인 파이프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6. 톡소플라즈마 조종 가설

 

 

7. 고양이를 미치게 하는 것

 

 

8. 사자와 토이거와 라이코이

 

 

9. 고양이 목숨은 ‘좋아요’ 개수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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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전반을 통해 나는 고양이 같은 동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의 놀잇감이 아닌 자기만의 전략과 사연을 가진 강인한 생명체로 보아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고양이를 본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지시하고 우리의 광범위한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친절과 잔혹이 기이하게 뒤섞인 우리의 태도를 직시하고 우리가 무제한적으로, 때로는 경솔하게 행사하는 우리의 영향력을 인정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구의 여러 생명체는 가망이 없다.

 고양이는 어쨌거나 잘 살 것이다. 4세기 기독교가 들어와 바스테트 신전이 문을 닫고 사제들이 죽임을 당했을 때도 고양이는 이겨냈다. 고양이의 목숨이 아홉 개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집트에서 생긴 생각이다.

 고양이들은 인간이 승승장구하는 한 괜찮을 것이고,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창조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동물이다. 우리의 ‘심부름꾼’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와 달리 고양이에게는 어떤 죄도 없다.

 

 

 결국 생태계 환경 파괴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환경오염, 인간의 욕심에 의한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과 동물은 그저 그자리에 적응하기 위하여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인간이 그 법칙을 깨고 인간의 기준에 맞추다 보니 파괴되어져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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