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207:+::+::+::+::+::+::+::+::+::+::+:워낙 유명한 것이니 다들 아시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전도사들이 자주 써먹는 방법이기도 하죠.
기독교 철학자 빠스깔의 유명한 도박론은 빠스깔이 신앙을 거부하던 자유주의자들에게 제시한 이론이며, 이해 관계를 떠난 순수한 선택이 아니라 노름꾼이 내기를 하는 도박을 말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이 십자가를 놓고 도박을 한다면, 그래서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판돈을 걸었다면, 신이 존재할 경우 그들은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복락을 얻을 것이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실 생활의 비참한 쾌락 밖에는 잃는 것이 없을 것입니 다. 도박에 건 돈은 그것으로 따낼 수도 있는 무한이라는 소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 니다. 다만, 이런 논의는 신이 도박을 인정하고 신 자신이 도박에 참여해야만 가능하게 되죠. 그렇지 않다면, 수리오라는 사람의 말과 같이, 이런 도박을 하는 자유주의자는 이 런 똘추와 같습니다. 한 똘추가 시냇물을 따라 떠내려가던 나뭇잎 하나가 돌맹이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똘추와 백만원을 걸고 내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저 나뭇잎이 돌멩이의 오른 쪽으로 흘러 가는 쪽에 걸겠습니다.) 그 나뭇잎은 돌멩 이의 오른쪽으로 떠내려 갔고 그 바보는 (나는 백만원을 땄다.) 고 말합니다. 어떤 점에 서 그는 똘추 일까요? 그가 똘추인 이유는 백만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똘추가 (나도 노름에 참여한다.) 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싸 해 보이는 이 빠스깔의 도박론에 의해서 신에게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무(無)를 말하지 않고, 지옥에 대한 공포를 말하였기 때문에 그 의미가 변질되었지만요. 사실 빠스깔의 도박론에는 지옥의 협박이 깔려있죠. 신의 존재처럼 미스테리한 것도 없죠. (물론 저는 미스테리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또, 신존재 증명놀이처럼 재밌는것도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