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름 밤 (펌글)

예솔이 작성일 06.07.06 06:47:57
댓글 0조회 919추천 0
그것은 내가 새내기 태를 간신히 벗어낸 2학년 여름 방학때의 일이였다.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친하게 지내던 우리 여섯명은 학기중에 모아두었던 푼돈을 모아 방학이 시작하자 마자 피서시즌을 피해서 동해의 어느 호젓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일행중 한명의 삼촌 소개로 찾아간 호텔은 솔직히 말해 호텔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조악한 곳이였지만 도보로 5분도 되지 않는 곳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너무나도 깨끗한 자갈 해변을 가지고 있는 해수욕장과 닿아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7일간의 일정임에도 마치 전투에라도 임한듯이 첫날을 종일 바다에서 보낸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남녀 각각 하나씩 두개의 방을 잡았지만 일단은 한방에 모여서 술병을 까대며 밤새 놀 생각이였다.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재미때문에 빼놓을 수 없는 각종 게임들을 즐기던 우리는 어느새 여름밤에 걸맞는 괴담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호텔 주인과 잘 알고 있다는 삼촌을 둔 성환이 자신의 차례가 되자 우리가 묶고 있는 호텔에 관련한 얘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예전에 이 호텔을 처음 지을때 어느날 공사장에서 여자 시체가 발견됐데... 재수생이였다는데 스트레스때문에 기분 전환차 이곳에 왔다가 한밤중에 누군가에게 여기로 끌려와 강간을 당하고 나서는 목을 메고 자살을 했다는 거야... 아침에서야 인부들이 발견했는데 빨간색 상의에 청반바지를 입은 여자 다리 사이로 피하고 배설물이 떨어져서는..."

"우웩, 자세히 표현할거 없어!"

"알겠어, 하여튼 그 뒤로 종종 투숙객들이 한밤중에 말없이 복도를 거니는 여자를 본데.. 붉은 상의랑 청반바지 차림을 한 여자 말이야.. 어쩌면 지금도.... 으앗!!"

성환이 소리를 지르며 창문을 가리키는 바람에 다들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고 그제사 성환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속았지, 사실은 나도 삼촌한테 똑같이 당했.."

그때였다. 갑자기 방의 전기가 퍽 소리를 내며 모두 나갔고 순식간에 방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엄마~~ 뭐야?"

"정전인가봐..."

순간 천정에 설치된 스피커가 지직 소리를 내더니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객실 손님 여러분 지금 화재로 인해 이 건물의 전기가 차단 되었습니다. 아직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대피로도 확보된 상태이니 모두들 안내에 따라 침착하게 밖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불이 났다구? 전혀 모르겠는데 너희 무슨 냄새 나냐?"

"아니... 갑자기 왠 불.. 빨리 나가자"

그때 일행중 가장 겁이 많았던 미희의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근데 정전인데 저 스피커는 왜 작동하는거야?"

"그러게, 엄마!!"

"쫄지마, 쫄지마.. 저런건 비상 전력이 다 들어가 있게 마련이야"

성환이가 안심을 시켰다.

"아냐, 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적이 있어, 갑자기 정전이 돼서 밖으로 나오라고 방송이 나왔는데 나가보니까 문밖에서 기다리던 귀신이..."

"말도 안돼는 소리한다!!"

"잠깐, 있어봐 얘들아... 내가 인터폰으로 확인해 볼게... 인터폰은 확실히 정전이랑은 상관 없을거 아니야?"

"그래 그게 좋겠다..."

잠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화기를 집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관리인 아저씨가 그러는데 자기는 방송한 적이 없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우리 방문을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불이 났어요! 빨리 나오세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공포에 질린채 서로 부둥켜 안고 덜덜 떨수 밖에 없었다.
대체 문밖에서 우리를 불러대는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렇게 한참을 있노라니 문을 두들겨 대던 소리도, 우리를 소리쳐 불러대던 여자의 목소리도 잠잠해졌다.

우리는 그제서야 겨우 안심을 하면서도 서로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적어도 해가 뜨기 전까지는 방안에 가만히 있는게 상책일듯 싶었다.

왜 우리가 그때 이미 우리의 코끝을 슬며시 자극하기 시작한 타는내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는지는 지금도 알수 없는 노릇이다.
겨우 10여분 사이에 아래층에서 올라온 유독가스가 방안에 차면서 우리는 질식의 공포를 느끼며 열어놓은 유리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리창 밑에서 활활 피어오르는 불꽃의 열기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만들었다.
내가 거의 정신을 잃어갈 무렵 다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문을 따려는지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무래도 방안에 사람이 있는것 같다는 관리인의 말에 소방관들이 마스터키를 들고 올라왔던 것이였다. 하여튼 바로 그때 내 머릿속에 무엇인가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처음 방에 들어와서 둘러보았을때 은연중에 알아챈 것이지만 깜빡 하고 있었던 사실...

우리방엔 인터폰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방밖의 비상등 불빛이 새어들어왔을때 의식을 잃기 직전의 나는 보았다. 방문 옆에서 가만히 서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붉은 상의의 여자를...


예솔이의 최근 게시물

무서운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