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신을 '전능한 자' '신으로서의 자각이 있는자' 로서 정의한다. 그리고 세상을 살펴보자.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먼저 북한을 생각해 볼 수 있고 그 외에도 여러 남미국가 아프리카 지역의 빈곤을 따져본다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문명으의 혜택 부분에서 크게 뒤떨어져있고 기본적 의식주에도 불충분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굳이 이런 멀리 떨어진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도 국내에서만도 빈부격차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있다. 여러가지 점을 종합했을때 불평등은 분명 존재하며 그 책임이 당사자에 있는것 또한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은 경제적 관점에서만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불량학생이 있다고 하자. 이 불량학생은 날때부터 어머니는 창녀이고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이며 이 아버지의 명령에의해 상습적으로 도둑질, 강도질을 해왔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불량학생에게는 죄가 있는가? 이 불량학생이 불량하게 된것은 이 불량학생의 책임인가? 또 이 불량학생이 죽는다면 기독교의 주장에 따라 지옥에 가야하는가? 그저 태어난 장소와 시간이 달랐다면 도덕적으로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불평등하고 또한 도덕적인자가 그 도덕적인것만큼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할때(천국과 지옥의 개념을 따진다 쳐도 이승에서만큼은 분명 그렇다) 한가지 가정이 가능하다
'신은 스스로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이 가정은 신이 존재한다는것과 하고자하면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것이다.어떤 자가 존재하고 어떤 상황을 바꿀 능력이있음에도 바꾸지 않는다면 그자가 상황을 바꿀 의지가 없는것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은 인간 스스로 도덕적이 되게끔, 세상을 공평하게 만들게끔 놔두고 있다.' , '신은 이승에서 도덕적인자에게 저승에서 보상하고 이승에서 부도덕한자를 저승에서 벌한다.'(다시말하면 이승에서의 불평등을 저승에서 바로잡는다)
각각의 반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먼저 신이 인간 스스로 하게끔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이라면 인간으로서는 신을 존경하고 경배할 이유가 없어진다. 신을 경배한다는것은 그 행위로서 인간의 어떤 이득을 위함이다. 혹은 스스로의 마음의 안정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 크지 않다. 어떤 인간이라도 신에게 기도를 할때 무언가의 부탁이있을것이다. 그러나 위의 가정대로라면 신은 어떠한 일도 하지않으므로 기도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저 인간은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둘째로 저승에서의 상벌로 평등하게끔 하는것은, 일단 저승이라는 개념 자체를 어느 누가 확인할 수 있겠는가를 차치해두더라도 (확신이라던가 하는 개념이 아니라 단 한번이라도 저승을 누군가가 인지할 수 있는가?) 위에 이미 밝힌 개념을 생각하면 이것또한 모순이있다. 바로 태어난 곳의 문제이다. 빈민가에 태어나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자는 어떻게 되는가? 귀족가문에서 부유하게 자라 흥청망청놀면서 남는돈으로 기부몇번이라도 한자는 천국에 가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 천국과 지옥이라는 지독한 이분법은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은 그야말로 사람이 쉽게 생각해내기 딱 좋은 개념이 아닌가?
이같은 논의를 이끌어가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신이 존재하든 하지않든간에, 인간이 신을 경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 위에서의 내용중 신이 방관할 뿐이다라는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찬찬히 생각해 보라고 하고싶다. 이런 부류의 경우 대개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시헙에 합격했다' 이런식의 주관적인 의견이 많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현실에서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의 아이가 아무죄없이 가위로 찢겨 죽는다. 그저 아프리카의 사막한가운데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하루에 한끼의 식사조차 겨우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잘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