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전화를 받지마세요

잭바우어24 작성일 07.01.28 2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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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삣

샤워를 마치고 막 나온 우덕은 무심코 폴더를 열고 나직히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선 얼마간 침묵이 흐른 후 삐, 소리와 함께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새로 도착한 음성메시지가 있습니다. 삐~!"

그리곤 곧바로 그 새 메시지가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당신은 지금부터 휴대폰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그 당돌함에 우덕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가늘고 여린 10대 소녀의 음성같았다.

"당신은 이 시간 이후로 24시간이 지날때까지 절대로 휴대폰을 받으시면 안됩니다. 만약 당신이 이 금기사항을

무시하고 휴대폰을 받을 시엔, 엄청난 불행이 당신에게 닥칠 것입니다. 당신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애인이나 직

장동료가 죽거나 다칠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죽을 수도 있구요. 만약 당신이 이 휴대폰의 저주를 풀고 싶으시

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정확히 44분 이내로 44명의 다른 사람에게 똑 같은 메시지를 음성으로 보내셔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이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닙니다. 당신을 위한 진심어린 경고입니다. 지금까지 이 금기사항을 어겨

서 죽은 사람만 해도 수십명이 됩니다."

메시지는 그렇게 갑자기 뚝 끊어졌다. 우덕은 한참동안 그자리에 우두커니 선 자세 그대로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

었다. 휴대폰에서는 재청취는 1번~ 하는 안내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덕은 말없이 그대로 폴더를 닫아버렸

다. 문득 거실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펼쳐진 아침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무서운 아이들!'

초등학생 4명이 휴대폰 구입비를 마련하기 위해 40대 남자를 각목으로 때려 숨지게 한 후 지갑속에 든 7만원을

훔쳐 달아나다.

진절머리가 나게 하는 기사였다. 기껏 7만원때문에 사람을 때려죽이다니! 그것도 휴대폰을 구입하기 위해서. 그

러한 잔인무도한 범죄가 10대청소년들에 의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라니...

우덕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재수없는 장난전화를 받은 것 때문인지 아니면 신문의 기사때문인지 상당히

불쾌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아침을 먹는 내내 머리속이 본드액이라도 짜넣은 것마냥 멍멍했다. 밥알이 모래

알만 같았다.

'이제는 저주성 메시지가 휴대폰에까지 번졌나? 제기랄!'

우덕이 막 현관을 나선 후 문을 관건할 때였다. 그의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요란스레 울렸다. 왠일인지 그날따

라 열쇠가 구멍에 제대로 맞춰지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잔뜩 신경이 곤두서있던 우덕이었다. 우덕은 끊질기

게 울려퍼지는 벨소리를 무시한 채 계속 열쇠구멍 찾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결국 온전하게 문을 관건하고 나

니 전화벨 소리는 어느새 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덕은 조금전 상황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보았다. 정말 열쇠구멍이 맞춰지지 않아서였을까.

우덕은 어째서 자신이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그 자신의 행동을 쉽사리 해석하지 못했다. 뒷주머니에서 자신의 휴

대폰을 꺼집어 내 보았다. 얼마전에 새로 구입한 최신형 폴더여서 상당히 크기가 작았다. 거짓말 조금 붙여서 꼭

지프라이터 만했다.

이 조그만한 것, 까짓거 하루쯤 사용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야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덕에겐 휴대폰은 고사하고 삐삐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을 느끼지 못

했던 그였다.

그렇게 뚫어져라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모양이 눈의 착시현상 때문인지, 괴상하게 일그러져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자신의 손바닥안에 조그마한 외계인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아무도 모르게 자

연스레 지구 곳곳에 침투해서 모든 지구인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 이건 분명 외계에서 만

들어진 것일게다!

땡, 하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어섰다. 문이 열리며 서늘한 아침공기가 우덕의 머리속을 파고들때쯤 우덕

은 혼자만의 상상속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서며 우덕은 전화벨 소리를 진동모드로 전환시켜 놓

았다. 왜 진동모드로 바꾸었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무슨 전화였을까?'



#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안에서 휴대폰이 두번인가 더 울렸던 것도 같았다. 그의 뒷주머니에 밀착되어 있던 폴

더가 두어번 미세한 진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손 모두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던 터라 굳이 한 손을 떼어

서 불안정한 자세로 전화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회사에 도착해서 점심시간때 까지는 휴대폰이 울리지 않았다. 어쩌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진동이 온것

도 미처 못느꼈을 수 있었다.

다시 휴대폰 진동음이 분명하게 느껴진 것은 점심식사 후 휴계실에서 진한 블랙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뜨거운 커피를 조심스레 들어올려 막, 첫 모금을 마시려 할 때 울렸던 진동음이라 우덕으로선 흠칫 놀라며 커피

를 엎질러 버려야만 했다. 그바람에 넥타이 끝이 블랙커피로 검게 물들었다. 다행히 검정 넥타이라 그다지 표시

는 나지 않았다.

갑작스런 진동음에 커피까지 쏟은 우덕이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꺼집어 내었을 때 진동음은 멈추었다. 뭔가에

잔뜩 홀린듯한 기분이었다. 그 기분으로 탁자와 바닥에 질펀하게 엎질러진 커피액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그

것들이 누군가가 흘려놓은 피 같았다.

그와 동시에 우덕의 머리속에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어간 자신의 형이 떠올랐다.





10년전, 고등학생 시절 우덕의 형 우정은 13일의 금요일 밤에 깡패들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고 3 이었던 우정은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집으로 오던 중, 골목길에서 깡패들을 만났던 것이다. 깡패들은 다짜고짜 등

뒤에서 달려들어 집단 구타를 했다. 우정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일어서지도 못할 즈음, 그들은 우정의 주머니를

뒤져서 용돈으로 가지고 다니던 현금 2만3천6백원과 회수권 열두장을 훔쳐서 도망쳤다. 그들 중 누군가가 우정

의 머리를 돌맹이로 내리쳤던지 우정은 머리에서 대량의 피를 흘리며 곧바로 숨졌다.

친형이 동네 깡패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고1밖에 되지 않는 우덕으로선 너무나도 큰 충격이

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들이지만 그 깡패들은 당시 열 다섯살 밖에 되지 않는 중학생들로 기껏 유흥비 마련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형을 그렇게 허무하게 잃고 난 얼마 후, 우덕은 형의 서랍속에서 섬칫한 종이 한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형에게로

날아온 저주의 편지였다.

'이제부터 당신은 저주에 걸렸습니다.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으시다면 당신은 이 편지를 하루동안 정확히 100명

에게 보내세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그리고 우연히도 그것은 형이 죽기 바로 그 전날 보내어진 것이었다.




#





우덕은 아예 휴대폰을 가방속에 집어넣었다. 휴대폰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어느정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덕은

그제서야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얼토당토 않은 휴대폰 저주니 뭐니 하는 것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

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퇴근시간까지는 아무런 이상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덕으로선 일에 파묻혀 있다보니 휴대폰에 대해선 잠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퇴근무렵 자신을 찾아온 미정에 의해 다시 그 휴대폰이 떠올랐다.

"어떻게 된거예요? 하루종일 전화했는데. 아예 휴대폰을 꺼놓은 거예요?"

"엉? 아냐... 아침부터 장난전화가 걸려와서 말야."

"장난 전화라뇨?"

"아냐, 별거 아냐."

"쳇,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휴대폰을 그렇게 안받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우덕은 미정과 함께 회사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오늘이 그녀와 만난지 꼭 2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우

덕은 어제 저녁 미리 준비해 두었던 반지까지 선물했다.

"어머나 너무 예뻐요."

환하게 웃으며 반지를 껴보는 미정을 보고 있노라니 하루종일 불쾌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도 같았다. 거

기다가 맛있는 스테이크와 멋진 와인향이 우덕의 긴장감마저 완화시켜 주었다.

미정은 모델지망생이었다. 그런만큼 상당한 미인인데다가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성이었다. 만약 우덕이 국내에

서 알아주는 일류기업의 사원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자격지심때문에라도 그녀와 교제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

만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남자는 돈과 명예, 여자는 몸매와 미모라는 등식이 현시대에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공식인 것 같았다.

근사한 외모를 가진 미정이었지만 별볼일없게 생긴 우덕에게 처음부터 상당한 친밀함을 보여왔다. 우덕으로서

도 그런 미정이 싫지 않았던지라 여지껏 별 부담없이 만나오고 있던 터였다. 그 만남이 결혼으로 까지 이어지리

라곤 아직 판단할 단계가 아니지만.

저녁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미정의 집으로 갔다. 미정이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가자 우덕은 홀로 침대위에 누

웠다. 그렇게 우덕은 깜빡 잠이 들었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샤워기의 물소리가 우덕에겐 은은한 자장가쯤으로 들

렸던 모양이다.

삐삐삣~!

문득 울리는 벨 소리에 우덕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후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분나쁠 정도로 침묵만이 일관했다. 희미하게 누군가의 숨소

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순간적으로 오싹한 기운이 온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

'절대로 전화 받지 말 것~!'

이윽고 전화는 황급히 끊어지고 뚜, 하는 울림음만 계속되었다.

그제서야 그 전화는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 보라색 폴더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미정의 것이었다.

아마도 전화는 미정을 잘 아는 또다른 남자에게서 걸려온 것이리라. 우덕으로서도 미정에게 남자가 자기밖에 없

을리 만무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우덕으로선 그런것따윈 중요한 것이 아니었

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휴대폰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직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덕은 가방속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꺼집어 내보았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외계

생물체 마냥 빤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쪽으로 생각을 하니 갑자기 징그러운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찝찝한 기분에 우덕은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린 후 베란다 문을 조금열고는 그 밖으로 그것을 내던져 버

렸다. 내일 아침 날이 밝을 때까지 그렇게 내버려 두고만 싶었다.

그렇게 베란다 밖 어둠속으로 내던져진 휴대폰은 정말로 한을 품은 차가운 혼령처럼 느껴졌다.

바로 그 때,

또다시 휴대폰 소리가 들려왔다. 우덕은 흠칫 놀라며 미진의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진의 휴대

폰에서 흘러나오는 벨 소리가 아니었다.

섬칫한 한기가 뼈속까지 스며들었다. 우덕은 고개를 돌려 베란다 밖을 바라보았다. 전원이 꺼진 자신의 휴대폰

이 어둠속에 덩그라니 놓여져 있었다. 하지만 벨 소리는 분명 베란다 밖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허억~!! 말도 안 돼~!!"

공포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우덕은 천천히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다소

거칠게 폴더를 열고 수화기를 귓가로 가져갔다.

"여보세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보았다. 그러나, 분명 자신의 휴대폰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그러나 벨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등뒤에서 느껴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덕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뒤돌아보았다. 어두컴컴한 베란다 구석, 벨 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었

던 것이고, 그 어둠속에는 누군가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우덕은 미처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목이 시원해 짐을 느낌과 동시에 극도의 통증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비릿

한 피내음이 우덕의 코끝을 자극할 즈음 우덕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야만 했다. 쓰러진 우덕의 목에선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려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우덕을 살해한 이는 16살짜리 중학생 남자애였다. 그는 평소부터 취미삼아 빈집털이를 일삼는 동네 불량배였다.

그 날도 미정의 집으로 몰래 숨어들어간 그는 갑자기 미정과 우덕이 들어오는 바람에 베란다로 몸을 숨긴 후 기

회를 봐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자신의 휴대폰이 느닷없이 울렸고 그 소리를 듣고 베란다 밖으로

뛰쳐나온 우덕을 칼로 찌른 것이었다.


#


애띤 얼굴의 소녀들은 학교 운동장 뒤편에서 각자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꺌꺌대고 있었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로 차출한 휴대폰 번호 명단을 보고있었다.

"야, 야, 오늘은 이녀석에게 한 번 보내볼까? 기우덕. 왠지 이름이 촌발날리는게 열라 바보같을거 같지 않니? 아

마 백프로 믿을 것 같은데~!"

"우덕이라~ 하하 정말 바보같은 이름이야. 한번 보내보자."

그들은 키득거리며 우덕의 휴대폰 번호로 자신들의 음성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부터 휴대폰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당신은 이 시간 이후로 24시간이 지날때까지 절대로 휴대폰을 받

으시면 안됩니다. 만약 당신이 이 금기사항을 무시하고 휴대폰을 받을 시엔, 엄청난 불행이 당신에게 닥칠 것입

니다. 당신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애인이나 직장동료가 죽거나 다칠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이 죽을 수도 있구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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