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기로 한 날이다.
간만에 휴일이고, 낮잠을 실컷 자서 그런지, 나른하게 기분이 좋았다.
나는 샤워를 한 후, 화장을 시작했다.
스킨, 에센스, 로션, 선크림,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을 정성스럽게 바르고, 마지막으로 파우더를 하려는데,
파우더 통이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주문한다는 걸 깜빡했네...
뒤늦은 후회를 하고선, 파우더를 대신해서, 얼굴 위에 트윈케익을 두드렸다.
파우더 보다 느낌이 훨씬 무거웠다.
얼굴에 가면을 쓴 것 마냥, 두터웠고 그 느낌은 짜증으로 이어졌다.
화장이 마음에 안 드니까, 나가기가 싫어졌다.
나는 곧,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
세수를 말끔히 해버리자, 짜증은 이내 사라졌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자주 이용하는 화장품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저번에 썼던 파우더는 별로였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걸로 써봐야지...
그 사이트에는 사용 후기를 올리는 상품 리뷰란이 있었다.
나는 리뷰란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어떤 파우더를 발견했는데, 리뷰가 놀라울 정도로 굉장히 많았다.
글을 올린 회원들 약1100명 전부가 그 파우더가 매우 좋다며 추천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리뷰란을 다 읽은 후, 처음 보는 그 파우더를 당장 주문했다.
며칠 후, 파우더가 도착했다.
며칠동안 파우더 대신 트윈케익으로 무거운 화장을 했던 나는 내심 반가웠다.
새로운 파우더를 느껴보기 위해, 나는 괜히 세수를 하고 다시 화장을 시작했다.
기초화장을 끝마치고, 조심스럽게 파우더를 꼼꼼하게 두드렸다.
와우~ 솔직히, 기대 이상으로 무척 맘에 들었다.
나는 리뷰란에 글을 올렸던 사람들한테, 괜시리 고마움을 느꼈다.
얼굴이 다른 때보다 화사하게 보이자, 화장한 게 아까워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나는 저번에 약속을 취소했던 친구에게 가볍게 맥주나 먹자며 전화를 했다.
버스를 탔다.
왠지 사람들이 한번씩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 같았다.
후후~ 이게 화장발이란 건가?
나는 내심 흡족해하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들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다.
얼굴이 조금 따끔거렸다.
화장품을 새로운 걸로 바꿀 때면 얼굴을 길들이느라 나타나는 현상이겠거니 생각을 했다.
얼굴을 좀 만져보려다가, 괜히 손독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따끔거림에 가려움까지 찾아왔을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차가 많이 밀려서 늦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핸드폰을 내려놓는데, 그때, 바지위로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모처럼 하얀 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이게 뭐람...
나는 재빠르게 탁자 위의 냅킨을 뽑아서, 닦아내려 했다.
그때, 또 한 방울이 그 얼룩의 옆에 사뿐하게 내려앉으며 다른 얼룩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또 한 방울, 또 한 방울이...
나는 놀라서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다.
이것들은 분명히 내 얼굴에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거울을 볼 사이도 없이, 나는 손수건을 꺼내며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상에...!
얼굴 여기저기서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병원으로 가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잠깐 망설였지만, 급한 마음에 택시를 집어탔다.
택시기사는 나의 얼굴을 보더니 경악한 얼굴로 묵묵히 나의 집으로 차를 몰고갔다.
집에 도착해보니
옷은 엉망이 되었고, 손수건은 진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거울을 보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누런 진물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고, 하릴없이 흐르고 있었다.
괴기영화의 분장을 해도 이보다 더 끔찍하진 않을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원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파우더가 떠올랐다.
급하게 파우더의 케이스에서 제조회사 및 상표 같은걸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수가...
그래도, 이것 때문은 아닐 거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내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파우더를 손등에 찍어보았다.
분명히, 얼굴이 녹아내리고 있다.
진물이 흘렀던 곳은 속살이 드러나고 있었다.
더 이상 눈물도 흐르지 않았고,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히히히히"
마치 실성이라도 한듯 웃음만 나왔다.
나는 진물이 고여 가는 손등을 잠시 내려다본다.
이윽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
이렇게 쓴 후, 입력하기를 누르자, 등록하겠냐는 메시지가 뜬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위로 클릭을 한다.
곧, 내 리플은 등록이 된다.
나처럼 누군가가 저 리플을 보고, 저 파우더를 구입하겠지... 히히히...
... 다른 이가 쓴 리플들을 다시 훑어보니, 내 자신도 그들도 점점 처절하게 느껴진다.
어떤 이유이든, 누군가 일부러 이런 파우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그들은 분명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휴... 이 놀이는 언제부터,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
어떤 동기로 그 미치광이는 이런 파우더를 만들었으며, 어떤 심정으로 그들은 그런 리플을 달았을까...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난 이미 그들에게 속해버렸으니...
후후~ 어쩌면 난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있긴 했지만, 나 혼자만 이렇게 남을까봐서...
그래, 어쩌면 그들도 이런 심정으로 리플을 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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