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때문이었을까
무엇이 그녀를 자살이라는 마지막 비상구를 택하게 만든것일까
그렇게 가버린 그녀는
홀로 남겨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단말인가
아직도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기고간 신발을 이렇게 안고 있는데 말이야..
-민우와의 대화중에서..-
장르/공포.단편
제목/자살할때 신발을 벗는 이유
글/기억저편에 (by루시페르)
커피잔속에 들어 있는 커피는 이미 식어버렸지만, 나는 살며시 커피잔을 들어 식어버린 커피 한모금
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 창밖에 내리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내앞에는 오랜친구 민우가 앉아 있었지만, 우리들은 벌써 몇십분째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은체 멍하니
창밖에 내리는 비만 바라보고 있는중이다.
"진우야?"
오랜 시간동안의 침묵을 깨고, 민우녀석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느낄수
있었다. 분명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하려는것을.
"응!"
"진우 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건줄 다 알고 있겠지?"
"또 민주 얘기냐?"
"그래!"
녀석은 언제나 그랬다.
그녀의 이야기가 나올때쯤이면, 목소리가 떨렸다. 물론 녀석의 마음을 이해못하는건 아니다. 이미 죽은
자신의 옛여인의 이야기를 하는 남자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다는것쯤은 나역시나 너무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 그녀가 죽은지 1년이 지났다. 그런데 왜 민우녀석은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걸까, 그녀의 유언
장에는 자신의 이름조차도 없었다는것을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는데도, 왜지, 왜 그녀를 잊으려 하지
않는걸까..
"이제 그만 잊을때도 되지 않았냐?"
"그렇지!"
녀석은 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1년전만해도, 이녀석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런녀석이 담배를 피우게된 이유는 아마 그녀의 죽음에
대한 괴로운 마음때문일것이다. 오늘역시나, 녀석의 입에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녀석은 계속
해서 줄담배를 피워댄다.
괴로움..
그 괴로움을 전부다 이해는 못하지만, 어느정도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었지만, 지금 내가 보는 친구의 모습은 아니다. 분명 아니였다.
"너 지금 네모습을 민주가 보면 좋아할까 생각해 봤냐?"
"글쎄 그녀는 워낙 말이 없어서.."
무엇이 녀석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나
정말 녀석에게 있어서 그녀는 세상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였을까,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버릴 만큼이
나..
"진우야?"
"듣고 있다."
"있잖아, 너에게만은 꼭 털어 놓아야 할것같다."
"뭘?"
"너 귀신을 믿냐?"
"무슨 소리냐?"
귀신에 대한 알수없는 소리
과연 그런게 있을까, 지금은 가을이다. 그렇기에 귀신에 대한 존재여부는 여름에 비해 아주 약해져있었
다. 그런 이유를 알고 있는 녀석이 갑자기 왠 귀신 타령이지..
"말해봐 진우야!"
"귀신의 존재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거냐?"
"그래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이야.."
"솔직히 말해줄께..난 귀신따위를 믿지 않아!"
"왜지?"
"간단한거 아니냐, 내눈으로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그 존재를 어떻게 믿을수 있냐!"
평생동안 살아오면서 귀신을 본적도 만난적도 없었다.
물론 약간의 환청정도는 몇번 들은적이 있었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난 귀신이다.' 하고 나에게 다가왔
던 존재는 분명 없었기에 단호히 말할수 있었다. 그런건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그렇구나, 그렇지만 난 봤는걸."
"무슨 소리냐?"
"죽은 민주가 나에게 나타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떠한 답변이 녀석에게 도움이 될수 있을까..
이미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는것은,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믿을수 없는다는게 지금 내심정이
다. 하지만 이런 상황속에서 '넌 정신과의사와 상담이 필요한것 같다.' 라는 말을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세히 이야기 해볼수 있냐?"
"응.."
녀석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그렇기에 지금 민우가 하려는 이야기는 동물적 본능으로 봤을때 나
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소재였기에,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럼 한번 이야기 해봐!"
"너도 알고 있지?"
"뭘?"
"아직도 그녀가 마지막 남긴 유품말이야.."
"그 빨간 구두 말이냐?"
"그래.."
민우가 말하는 있는 구두는
1년전 자살한 그의 옛여인 민주가 세상에 마지막 남긴 유품이다.
"아마도 그 구두 때문인것 같아.."
"왜 그 구두가 어째서?"
"모르겠어, 구두를 가지고 있을때부터 그녀는 계속해서 나에게 나타나.."
따뜻한 카페 안에 있음에도, 녀석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온몸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살아 있을때에는 절
대적으로 모르는것, 하지만 죽어서는 알게되는것..
바로 공포다.
죽어 있는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아온다는것. 그것은 옛추억의 감회가 아닌 공포라는것이다.
"그녀를 봤단 말이지?"
"응..하지만 살아 있을때 모습이 아니야.."
"그렇다면?"
"그래..그녀가 빌딩에서 떨어져 죽어 있을때 모습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떨어져 죽어 있는 모습말이야?"
"응..머리는 반쯤 함몰 되었고, 그녀의 흰색 원피는 붉은 피로 자욱했지, 물론 그녀의 몸에는 알수없는 내
장같은것들이 튀어나와 있었고.."
죽었던 사람이 산사람에게 멀쩡히 나타난다 하더라도, 엄청난 공포를 가지게 될것이다. 그런데, 그런 공
포의 몇배가 되는 죽어 있을때의 모습이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공포인것만큼은 분명했다.
"지금도 민주가 나타나냐?"
"아니..이젠 나타나지 않아.."
"그럼 다행이구나.."
"아니..그렇지 않아.."
"무슨 소리냐?"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나봐.."
다시 녀석의 알수없는 말들...
"비록 생김새는 처참했지만, 분명 그녀는 내가세상에서 가장 사랑했었던 민주였어, 내목숨을 다 받칠수
있을 만큼이나 사랑했었던 그녀였단 말이야..크윽.."
나로써는 이해할수 없는 녀석의 말
하지만 녀석은 마지막말을 다하지 못한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비록 녀석과는 오랜 친구였지만, 지금
이상황에 어떠한 위로도 해줄수 없었다. 녀석의 이야기는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말이기에..
"미안...이제 가봐야 겠다."
한참 동안 훌쩍이던 녀석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좀더 녀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떠한것으로
도 녀석을 위로할수 없음을 잘알고 있기에, 그냥 말없이 그를 보낼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녀석을 떠나 보낸게
내 인생의 가장 큰 후회가 될줄이야..
녀석과의 헤어짐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후, 받게된 충격적인 전화 한통화..수화기 너머로는 민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
다. 아주 떨리는 목소리로..
"진우야..우..리..민..우..가..죽었..어..흑...흑..네..가..마지막..가는길..을..좀..봐줬으면..좋겠구나.."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춰진듯 했다. 머리속에는 그저 윙윙 거리는 소리만 들려올뿐,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느
낌도 나지 않은체 그저 옛친구의 죽었다는 믿기 힘든 현실만이 기억속에 멈춰 버린듯 했다.
...
.....
그렇게 떠나는 친구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았다.
이상한건 녀석 역시나 자살이라는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방에서 목을 메단체 인간으로써 마지
막 비상구라 할수 있는 다신 돌아올수 없는 길을 가버렸던 것이다.
녀석의 장례식을 끝마친후, 친구의 방안에 잠시 들러 멍하니 녀석의 얼마남지 않은 옷가지등을 챙겼다.
이승에서의 모든 연을 끊기 위해, 그가 사용했던것들을 모아 불에 태워 그의 극락왕생을 바라기 위해
서..
그때였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것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냐?"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시선을 분명 느꼈기에, 보일러가 들어오는 방안임에도 아주 사늘한 느낌. 그리고 알수없는 이
상한 기분, 그런기분들이 나를 서서히 공포에 몰아 넣는다.
하지만 방안은 나혼자였다.
나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쓸쓸한 공간, 그곳에는 그저 나혼자만 존재했다.
그리고 시야에 비춰지는 사진들
그녀와녀석이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녀석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 그녀와 녀석과 내가 함께 웃으며 찍
었던 사진들을 바라보며 잠시동안 옛추억에 잠겨 있을무렵..발에 무언가 부딛히는 느낌이 들었다.
"어..신발!!"
붉은색의 단화
내발에 부딛친것은 붉은색의 단화였다. 분명 알수 있었다. 민주 역시나 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친구였기
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붉은색..이 신발은..분명 그녀의 마지막 유품인것이다. 그런데..왜..
"헛!"
다시 느껴지는 사늘한 기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럴수가.."
등뒤에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
그렇게 바라본곳에는, 평생 살아오면서 한번도 느낄수 없었던 궁극의 공포가 온몸을 뒤덮었다.
"너..너..왜..?"
떨리는 내 입술은 말을 할수 없을 정도였다. 죽어 있는 사람과의 만남, 그것도 고어영화에서나 볼수 있
는 처참한 그녀의 모습
이대로 가만히 있을수 없다. 방안에는 나 혼자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수 없었다. 갑자기 죽음이라는 단
어가 생각난다. 나는 아직 죽기 싫다. 더 살고 싶다.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온 신경을 주먹으로 집중 시켰
다. 그리고 떨리는 가슴을 이내 진정 시키며..
"넌.죽.었.어.그.러.니.네.가.있.는.곳.으.로.가.!"
한 단어 한단어 또박 또박 말했다. 아주 침착한 마음을 말을 했다지만, 역시나 떨리는 몸과 공포때문에
차마 그녀의 얼굴을 마주 하고 말할수는 없었다. 그리고 짧지만 긴 공포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헛 너..민우..."
민우 녀석도 내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목까지 내려온 긴 혀를 내밀며..퀭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
보는 민우의 모습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한걸음씩 빠르게 이곳에서 벗어 나고 싶었기에..
겨우 문앞에 다가서는 순간
보았다.. 그녀와 녀석의 모습..비록 표정은 없었지만, 매우 행복한 모습인것 같았다. 이건 어디 까지나
내 느낌이었지만..
그렇게 난 그곳에서 벗어 날수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는 점점 내 머리속에 사그러들어 갔다. 하
지만 요즘들어 문득 생각 난다.
민우 녀석은 자살할때 신발을 벗지 않았다.
왜였을까..대부분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을 신발을 벗는데 말이야..그는 무엇때문에 신발을 벗지 않았었
고, 그녀는 무엇때문에 신발을 벗었단 말인가..
혹시
자살할때 신발을 벗는 이유
그건 아직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가장 아끼던 어떠한 한가지를 가져가기 위함이 아니였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