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5

백두장사 작성일 07.04.12 14: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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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이 형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고, 그 사진들을 지우지 않기로 결심했어. 좀 위험한 일이지만, 여기서 모든 것을 없앤다면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걸 포기한다는 의미같았거든.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동이트고 있었어. 벌써 새벽 다섯시가 넘어 있었어. 거의 밤을 꼬박 샌 격이었어.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 것을 보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더라. 태어나서 그렇게 피곤하고 긴 밤은 처음이었어. 혹시 누군가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문을 꼭꼭 잠가놓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어. 얼마나 피곤했는지, 정말 눕자마자 잠이 든 것 같아. 한 다섯 시간 정도 잤을 거야. 아니, 악몽에 시달렸다는 말이 맞지.


내가 이제까지 봐왔던 온간 잔혹사진들이 꿈속에서 나를 괴롭혔고, 내 주변에 나타나던 그 여자는 계속해서 나를 쫓아왔어. 결국은 내가 침대에 묶여 그 여자에게 온몸이 잘려나가는 장면에서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난 거야.

너무 끔찍했던 악몽이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고 머리만 깨질 듯 아팠어. 하지만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만있을 수 없었어. 몸을 일으켜 한승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어. 다행이 한승이형은 스튜디오에 있더라. 급한 일이라고 좀 도와달라고 하니, 선선하게 그 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 한승이 형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니 좀 마음이 놓였어.


사진과 사진 파일을 담은 집 드라이브를 챙겨가지고 나갔어. 저쪽 복도 끝에는 아직도 조사할 것이 남았는지 경찰들이 왔다갔다 하더라고. 그 방 쪽을 보니, 어젯밤 그 끔찍했던 살인현장이 떠올랐어. 나도 모르게 두려움으로 몸이 부르르 떨리더라.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니, 갑자기 어디선가 그 여자가 튀어 나올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어. 대낮에 그런 생각을 하고 무서워하는 내 모습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들더라.


복도를 나서다 보니, 경비실 쪽에서 뭔가 다투는 듯한 소리가 들렸어. 걸음을 멈추고 경비실을 들여다보니, 어젯밤 나를 찾아온 그 형사가 나와같이 시체를 발견한 경비 아저씨를 조사하고 있는것 같았어. 그 경비 아저씨는 몹시 기분이 상했는지, 싸우듯이 언성을 높이고 형사에게 대들었어.

"나는 정말 아무거도 모른다니까요! 아무도 왔다갔다한 사람이 없고, 받은 것도 준 것도 없어요! 당신도 알잖아! 왜 나를 그렇게 안 믿은 거야! 그런 식으로 나를 의심한다면, 나도 당신을 의심할거야! 어떻게 보면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입장이잖아! 안 그래?"

형사는 어제 나를 대할 때와 전혀 딴판인 흥분된 모습으로 그 경비 아저씨에게 소리를 치더라.

"그런 식으로 무성의하게 대답하지 말라니까요! 여기서 진상을 밝혀내지 않으면 다음 희생자는 당신이 될 수도 있소. 그러니 아는 것 있으면 모두 얘기하라니까요!"

경비 아저씨의 얼굴에는 좀 겁이 난 것 같은 표정이 스쳤지만, 지지 않으려는 기색으로 더욱 크게 소리쳤어.

"뭐라고? 다음이 내 차례라고? 지금 협박하는 거요! 만약 내가 그렇게 된다면, 당신도 온전할 수 없을거야! 형사면 다야!"

둘이 싸우는 얘기를 계속 들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아 현관을 나섰어. 두 사람은 싸우느라 내가 지나가는 것을 못 봤어. 형사의 그런 태도를 보니 좀 안심이 되었어.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만 의심받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야.


한승이 형에게 가다가 갑자기 그 형사의 행동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떠올랐어. 만약 어젯밤에 내 방에서 그 형사가 사진을 가져갔다면, 나에게 왜 아무런 조치를 안 하느냐는 것이지. 그 형사에게는 그 사진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는지, 아니면 그 사진을 가져간 사람이 그 형사가 아니었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 단지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진 이 사진이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
한승이 형은 오랜만에 찾아간 나를 반갑게 맞아줬어.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을 알아챈 한승이 형은 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내 주변에 일어난 일에 대해 물어보았어. 나는 그 여자를 보게 된 일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얘기 해주었어. 나를 정신병자로 취급할지도 모른다는 애초의 걱정과는 달리 한승이 형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어.

내 얘기가 끝나자, 한승이 형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일한이 네 얘기를 꺼내더라.

"휴, 전에 일한이도 그런 사진을 들고 와 내게 부탁을 하더니.... 그때도 결국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는데....정말 세상에는 그런 불가사이한 일들이 많나봐, 그런데, 인석이 네가 그런 일을 할 줄은 몰랐다. 내게 네게 이런 충고를 할 입장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진들을 팔고 사고 하는 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이야. 사진은 신문이나 자료를 위해서 있는 그대로 찍어내는 기능도 있지만, 사물을 좀더 아름답게, 의미를 부여해서 찍는 예술적 기능도 있는 거야. 그런데 네가 취급했던 사진들은 사진이 가진 기능을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악용하는 일이야.


휴~ 내가 찍은 사진이 항상 아름답고 훌륭한 사진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인간의 아름다운 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해. 대분분의 사진이 다 그렇지.
여하튼 일이 거기까지 갔다고 하니, 내가 도와줄수 있는 일은 도와줄께. 대신 나와 약속은 하자.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런 사진을 취급하는 일들은 절대로 안 한다고. 인간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해서 잔혹성을 일깨우는 그런 사진들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돼. 그런 사진들은 흔한 포르노 사진들보다 훨씬 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진들이거든. 아무튼 그 문제의 사진 좀 보자."


한승이 형의말에 나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렸어. 나는 가져온 그 문제의 사진들과 파일을 한승이 형에게 내밀었어.
한승이 형은 아무 말 없이 사진을 살펴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어.

"이 사진들은 정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그냥 보기에는 조작된 사진 같지는 않아. 무슨 얘기인지 알아? 어떤 미친놈이 진짜 이런 끔찍한 장면을 그대로 사진으로 찍었다는 거야. 어떤 악마 같은 놈이....."

나는 한승이 형에게 내가 발견했던 부위를 확대해서 좀더 깨끗하게 보여달라고 했어.
작업실로 나를 데려간 한승이 형은, 그 사진을 모니터로 보고 확대해 봤어. 내 컴퓨터로 본 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또렸하게게 볼 수 있었어. 거울에 비친 것은 사람의 얼굴이 확실해졌어. 하지만 어떤 얼굴인지 뚜렷이 드러나지 않아 여전히 잘 알수가 없었어. 한승이 형은 한참 컴퓨터를 조작하며 이러저리 검사해 보더니 얘기해 주더라.


"이 사진은 네 말대로 알반 카메라고 찍은 사진이라,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하루 정도 걸길 것 같아. 그리고 내 나름대로 좀 조사해 볼것도 있고 하니 내일 다시올래? 그때까지는 내가 확실한 사실을 밝혀줄 수 있어."

한승이 형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그 사진을 분석해 주기로 했어. 한번에 사실을 알 수 없어 좀 아쉬웠지만, 너무 고맙더라.
사진 분석이 끝나는 대로 연락해 주기로 하고, 한승이 형 스튜디오를 나섰어. 한승이 형은 작업실을 나서는 나에게 고뇌에 찬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어.

"나도 처음에는 이런 사진들을 취급하기 싫었어. 그리고 믿지도 않았지. 하지만 일한이가 예전에 가져다준 스티커 사진이 내 사진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어. 사진은 결코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저 건너편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그것이 암흑의 것인지, 광명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승이 형의 그 말은 내게 뭔가 찜찜함을 남겨줬어. 하지만 한승이 형이 뭔가 진실을 밝혀주리라 믿고 거기를 나섰어.

거리는 어느새 어움에 싸여 있었어. 시계를 보니, 밤 아홉시가 다 되었어.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일이 마무리된 뒤에는 절대로 그런 사진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거야.

너희들에게도 얘기하는데, 그 동안 나는 돈에 눈이 어두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헷갈렸던 것 같아. 그놈의 돈이 뭔지....휴~"
오피스텔에 온자 일찍 들어가기 싫어, 근처 포장마차에서 저녁겸 술을 한잔 걸치고 들어가니 밤 열두시가 넘었더라. 피곤한 몸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소주 한 병도 안 마셨는데 몸이 알딸딸하고 좀 취기가 돌더라.


경비실 안은 불이 켜저 있었지만, 경비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퍽! 퍽!'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는 거야. 지하실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감기 잘 잡히제 않았어. 사실 어떤 소린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가 내리치는 소리였어. 괜히 겁이 나더라.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자 얼른 올라탔어. 문이 닫히니 그 소리는 들지 않더라. 하지만 혼자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또 그 여자 얼굴이 떠오르는거야. 엘리베이터 어딘선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무서웠어.

너희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겁이 난 나는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붙이고 빨리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만을 빌었어. 한층 한층 올라갈 때마다, 지난번처럼 문이 열리고 그 여자가 그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을 것 같아 겁이났어.

하지만 그날은 다행이 아무일도 없었어. 아무 일 없이 구층까지 올라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나는 잽싸게 내렸어. 복도에 서서, 살인이 났던 복도 끝의 방을 보니 이제 더 이상 조사할 것이 없는지 아무도 없었고 불도 꺼져 있었어. 보이는것은 출입금지를 나타내는 테이프뿐이였어.

그것을 보니 등골이 오짝해지더라. 도망치듯이 복도 반대편에 있는 내 방 쪽으로 뛰어갔어. 어두운 독도 구석에서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어. 복두 주위를 돌아보며 떨리는 손으로 방 열쇠를 들었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니. 분명히 낮에 잠그고 나간 방문이 스르를 열리는거야. 그 순간 얼마나 겁이 나던지....움직일수 없더라. 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어.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어.

방안은 칠흙같은 어둠속에 싸여 있었어. 혹시 뭔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주먹에 힘이 가더라. 식은땀이 흘렀어. 벽을 더듬어 방안 전드을 켰어. 방안이 밝아지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어. 누군가가 방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거야. 도둑이 들어왔는지, 책상이며 옷장 할것 없이 안에 있는 것들이 다 꺼내져 있고, 온 방안이 뒤집어져 있는 거야.


불긴한 예감이 들어 책상을 보니 컴퓨터가 통째로 없어졌어. 그리고 그 문제의 사진들이 한 장도 남김없이 다 없어진거야. 내가 이제까지 모아왔던 잔혹사진과 자료들이 모두 없어졌어. 더욱 이상한것은 그것들 외에 없어진 것은 없는거야. 없어진 것들이 그런 사진들이었으니 경찰에 신고할수도 없었어.

혹시 경비 아저씨가 누가 왔다갔다한 것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터폰으로 경비실에 연락했어. 그런데 자리에 없는지 한참 신호가 갔는데도 대답이 없는 거야.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인터폰을 들고 있었어. 갑자기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인터폰을 받는거야.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인터폰에 대고 내방에 누가 들어왔었다고 얘기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터폰 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거야. 단지 '시......식, 시......식'하는 귀에 거슬리는 낮은 신음소리만 들리는 거야. 나는 계속해서 경비 아저씨를 불렀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어.


그때였어. 인터폰을 통해 찢어질 듯한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거야. 얼마나 끔찍한 소리였는지, 소리만으로 그 비명의 주인공이 당하는 참혹한 고통이 눈에 보이는것 같았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움직일 수가 없었어. 인터폰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끊어졌어.

나는 본능적으로 복도로 뛰어갔어.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은 내 이성을 거의 마비시켜 버렸어. 단숨에 엘리베이터 앞까지 뛰어갔어. 숨을 몰아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어. 일층에 있던 엘리베이트는 고장이 났는지, 버튼을 눌렀는데도 움직일 생각을 안 했어.

잠시 망설이다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이었어. 기다렸다는 듯이, 한참을 일층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런데....그런데 말야. 지금 그때를 생각해 봐도 참 이상해.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보니, 그 엘리베이터를 꼭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뭔가에 홀린것처럼 멍하는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층수만 보고 서 있었던거야.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더라.

엘리베이터는 오층, 육층, 칠층......천천히 올라왔어. 이윽고 '땡'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서 있는 구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어. 그리고 문이 스르륵 열렀어. 엘리베이터가 열렸을때, 나는 내 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어.

 

 

엘리베이터 안 천장에 경비 아저씨가 두 팔과 한 다리가 잘려나간 채로 피를 뿜으며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거야. 경비 아저씨는 바로 내가 이전에 KillYou에게 받은 사진과 똑같이 처참하게 찢겨나간 모습이었어. 마치 그 사진속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너무 똑같았어. 단지 다른것은 엘리베이터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처음 봤을때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느꼈지만, 금세 침착해지더라. 물론 두려움도 느껴졌지만, 뭔가 이상야릇한 감정이 일었어. 뭐랄까.....항상 사진으로 보던 것을 실제로 보면 더 좋은 느낌 있잖아?

비유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때는 생각보다 여유있게 대처한 것 같아. 하지만 다음 순간, 두려움보다 불안함이 느껴졌어. 이번에도 내가 시체를 발견했으니, 까딱하면 가장 유력한 살인범으로 몰릴 것 같았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급해지기 시작했어.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났는지, 문이 닫히지도 않고 움직일 생각도 안했어.

우선 난장판이 되어 있는 내 방으로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어. 방안은 발디딜 틈도 없었지만, 뭐 하나 잘못 만졌다간 나중에 더 의심을 받을 것 같아 가만히 앉아서 담배를 꺼냈어. 나도 모르게 담배를 든 손이 떨리더라. 무서워서 그런것이 아니었어. 내게 돌아올 의심이 두려웠던 것이지.


그때였어. 나 혼자 있는 방안에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어. 서늘하고 기분나쁜.....어떻게 생각하면 그 느낌에는 익숙함도 포함되어 있어. 지난번에도 느꼈던, 바로 그 여자가 내 주변에 나타났을 때, 느껴왔던 그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었지. 자동적으로 시선을 방은을 돌아 창밖을 향했어. 머리끝니 쭈뼛거리고, 손에 든 담배까지 놓쳤어.

창밖에는 그 여자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 내가 더욱 무서웠던 것은, 그 여자가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빨간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었어. 소름 끼치는 그 여자의 모습에 나는 움직일 수도 그렇다고 시선을 뗄수도 없었어. 그 증오와 살기로 가득찬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것 같았어. 어떻게 해서라도 이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 정말 미칠 것 같더라.


얼마동안 그 여자를 보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어느새 그 여자의 모습은 창밖에서 사라졌고, 나 역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지.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들이 복도 쪽에서 들려오자 나는 몸을 일으켜 보도로 나섰어. 뭔가에 홀린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내게 급한 것은 나를 위협하는 귀신보다는 실인누명을 벗어야 하는 것이었어.


복도로 나가보니, 경찰들이 모여서 엘리베이터에 매달려 있는 시체의 사진을 찍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어. 천천히 다가가면서, 내가 신고한 사람이라고 밝히자 경찰들이 다가와 쉴새없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어. 나는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을 그대로 얘기했어. 물론 창밖에서 그 여자를 보았다는 얘기는 빼고. 그런데 경찰의 질문에 답하면 답할수록, 나를 보는 경찰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어.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눈치였어. 나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내가 목격한 상황을 설명했지만, 경찰들은 노골적으로 나에 대한 의심을 드러냈어.


나중에는 화가 나더라. 그래서 나중에는 그렇게 나를 의심한다면 증거를 가지고 와서 나를 잡아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내 방으로 돌아왔어. 내가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자, 나를 심분하던 경찰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어.

방에 돌아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차분히 생각해 봤어. 최대한 나 편한 쪽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경찰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거야. 한 가지 물증한 발견했다면, 나는 꼼짝없이 잔인한 이 연쇄 살인의 범인으로 몰리게 될 판인거야. 그러다 보니 어질러진 방안이 눈에 띄었어.

그 사진이 없어진 것이 생각나자, 불안감은 또 두려움으로 변했어. 누군가가 가져간 거라면, 내가 살인사건과 똑같은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소행이지. 그런데 도대체 누가 방문까지 뜯고 그것을 가져갔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그때 나로서는 도무지 풀수 없는 문제였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든 일이 의문투성이였어. 내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은 한승이 형이 그 사진을 통해 뭔가를 밝혀주는 것 뿐이였어. 저절로 한숨이 나오더라.


그때였어.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들기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어. 웬만하면 모른 척하고 혼자 있고 싶었어. 하지만 정말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거야. 곧이어 '안 나와! 이 살안마 새끼야!' 하는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어.

무슨 일인가 하고 어안렌즈로 내다보니 어제 왔던 그 형사가 엄청 흥분한 모습으로 문을 두들기고 있는거야. 나는 단지 목격자라는 얘기를 해주기 위해서 문을 열었지.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그 형사는 성난 표정으로 방으로 뛰어들더니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소리를 치는 거야.

"이 개새끼야! 네가 사람을 그렇게 죽인다고 우리가 겁먹을 줄 알아! 우린 네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허튼 수작 부리면 다음 차례는 네가 될 거야!"

그 형사는 어제의 침착했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으로 실기띤 표정을 한채 씩씩거렸어. 나는 그 형사가 그렇게 흥분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어.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다니까요! 단지 무능력한 당신들이 못 잡은 그 범인이 갈기갈기 찢어놓은 시체만 발견한 것이라니까요!"

나도 화가 나서 한마디 쏘아붙였어. 그랬더니 그 형사의 얼굴이 분노로 새아햫게 변하더니 온몸을 부르르 떠는거야. 다음 순간, 그 형사가 휘두룬 주먹에 나는 뒤로 나동그라졌어.

"네가 무슨 일을 해도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을거야! 여기서 죽어라! 살인마야!"

그러고는 그 형사가 권총을 꺼내, 쓰러진 나를 향해 겨누는 거야.
얼마나 황당하고 놀랐던지.....
다행히 달려온 동료 경찰들이 그 형사를 덮쳐, 총알이 내 머리를 뚫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어. 그 형사는 동료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가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향해 소리치는 거야.

"다음번에 네가 먼저 사람을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너를 죽여줄거야! 반드시!"

그 형사가 끌려나가자 다른 경찰들은 당황한 표정을 한채 네게 미안하다고 그랬어. 정의감 넘치는 그 형사가 살안마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를 엉뚱한 데 표출한 것 뿐이라며 내게 용서를 구했어. 내가 그 형사의 행패를 확대시킬 것이 걱정되는지, 모두들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어. 하지만 나는 끌려나가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그 형사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어. 정말 나를 죽일 기세였거든.


그런데 그 형사는 살기와 더불어 뭔가를 두려워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어. 마치 겁에 질린 자기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욱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은......
괜찮다며, 경찰들을 내 방에서 내보냈어. 방을 나서던 경찰들은 어질러진 내 방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한 번씩 쳐다보며 나갔어. 그런데 방을 나서던 경찰들이 나누던 얘기가 내 귓가에 비수같이 꽃혔어.

"박 형사 지난번에도 이러지 않았어?"

"그러게 말야. 한 이 년 됐지. 그때도 용의자를 거의 반죽음 만들었지. 그 용의자가 범인으로 판명되었으니 다행이지. 휴.. 정의감도 지나치면 문제야"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그 형사의 이상한 행동이 약간은 이해가 갔다. 잔혹한 살인을 하는 살인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와 적개심을 가진 형사라....하지만 그 형사의 두려운 표정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어. 어쩌면 그 잔혹한 살인을 무서워하는 것일지도 몰랐어.


여하튼 모두 빠져나가고, 다시 어질러진 방안에 혼자 남게되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지만, 뭔가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어. 하지만 그 실마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확신이 가지 않았어.

이 방 주변, 아니 내 주변을 맴도는 그 끔찍한 여인의 혼령. KillYou라는 미친놈으로부터 온 기괴한 의뢰와 잔혹한 사진들, 그리고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사진속의 처참한 살인들..... 이 모든것은 분명히 서로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 같았어.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 의문을 풀기는 커녕 더욱 복잡해지는 것 같았어. 도저히 답을 찾아낼수 없었어.


나는 이 모든것에 대한 대답을 한승이 형이 줄 사진 분석자료에서 찾아내길 바라며,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어. 침대에 누워서도 그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들었어.
다음날,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이 깼어. 간만에 그 여자의 방해없이 푹 잠을 잔 기분이었어. 하지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어질러진 방안에서 간신히 전화를 찾아내 수화기를 들었어.

한승이 형이었어. 한승이 형의 심각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충격과 함께 잠이 확 깼어.

"인석아, 네가 준 사진을 분석해 봤는데.....이게 네가 원하던 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내 눈을 믿을 수 없다. 여하튼 만나서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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