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보니 남자가 굉장히 측은해 보였습니다. 저도 군대에 오기전에 여자친구와 이별을 겪었지만, 이 남자의 경우 단순한 이별도 아니고 여자친구가 누군가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었는데 그 충격이 어지간 하겠습니까. 남자는 괴로운 듯이 머리를 한손으로 쓸어 넘기며 괜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까 내가 택시안에서 본걸 이 남자한테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습니다. 비록 귀신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이 남자의 여자친구인데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건가. 그러나 워낙 예민해져 있을 남자를 생각하면 남자가 이성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관두기로했습니다. 게다가 " 저 방금전에 택시안에서 여자친구분의 혼령을 본것 같아요"하고 뜬금없이 말하면 미친사람 취급 당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미친놈 취급당하면 다행이지, 자기는 지금 심각한데 장난치냐며 달려들기라도 하면 어떻합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저는 그냥 침묵하기로 했습니다.
남자는 담배불을 끄더니 죄송한데 불좀 한번더 빌리자며 또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습니다. 그리 줄담배를 필만도 했습니다. 저는 아예 라이터를 남자에게 주었습니다.
나: 이거 그냥 가지세요. 저는 라이터 많아요.
남자: 아~ 고마워요.
남자는 라이터를 받아 들고 불을 붙이면서 제 근무복에 달린 명찰을 응시했습니다.
남자: 이름이 여자 이름 같네요.
나: 예. 가끔 사람들이 이름만 듣고 여자로 착하기도 해요.
남자: ...
남자와의 대화는 항상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또 한참을 담배만 피던 남자는 다시 화제를 돌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남자: 이런 말 함부로 하면 안되는 거 알지만 내는 저 택시 기사가 젤로 의심스럽습니다.
나: 네? 택시기사요?
남자: 아까 같이 조사받을 때 안절부절 못하는게, 일부러 택시 도난신고하고 계획적으로 꾸민것 같다는 생각이 팍 드는겁니다.
저도 소년 탐정 김전일이나 여러가지 추리물들을 많이 즐겨봤던 편이지만, 증거도 없이 느낌만으로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나고 생각합니다. 소설이나 영화속 살인사건은 독자들에게 흥미과 긴장감을 주기위한 요소지만, 제가 봤던 택시안의 참혹한 광경은 현실과 영화의 거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나: 뭐 나중에 잡히면 확실해 지겠죠. 누군진 몰라도 참 너무하네요. 어떻게 사람을...
남자: 내는 잡히면 법적대응이고 뭐고 제손으로 확 쥑이삘겁니다. (남자가 조금 흥분한듯 보였습니다.)
하긴 저도 저의 가족이나 가장친한친구, 연인이 저런식으로 살해당한다면 제 인생이 통째로 날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내손으로 응징하고 싶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으로 지극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더이상 이 사건에 대해서 남자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저는 이제 근무떄문에 가봐야 할것 같아요.
남자: 아~ 그래요?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 아니에요. 그럼... (저는 '힘내세요.' 라든지 '잘될겁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이야기를 꺼내려니 부질없는 말이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이미 여자친구는 세상에 없는데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해봤자 빈말일 뿐이죠.)
남자: 고생하세요.
조금전에 본 것도 있고 이런저런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일부로 밝은 길을 통해 내무반에 가려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남자가 택시쪽으로 걸어가는게 보였습니다. 여자친구가 살해당한 장손데 처다보기도 싫지 않을까? 하고 의아해 하며 걸을을 계속 하려는데 아까 본 여자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가 본게 귀신인지 헛것인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만약 그게 귀신이라면 저 남자한테도 보이지 않을까? 자기 남자친구한테는 안나타나고 나한테만 나타난다면 그건 귀신이 아니라 내가 헛것을 본걸꺼야. 저는 제 특유의 억지스러운 논리를 펼치며 무슨생각이었는지 몰래 남자가 택시쪽으로 가는 걸 엿보았습니다.
남자는 택시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담배를 또 다시 하나 꺼내물고 택시안을 멍하니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눈이 나쁜것도 있지만 어두워서 세밀한 표정이나 미세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아 내가 이게 지금 쓸때 없이 모하는짓이냐' 하는 생각이 들어 관두기로 하고 바로 내무반 건물로 향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벌써 30분이나 지나있었습니다. 아 2시간 정도 밖에 못자겠구나 하는생각에 남자와 그 곳에서 시간을 낭비한게 조금 후회되었습니다.
내무반에 올라가 대충 씻고 침상에 누우니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에 아까 봤던 그 여자가 진짜 귀신인데 내가 놀라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진범이 누군지 그 귀신이 나한테 이야기 해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유치하다는 생각에 혼자 피식웃고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는데 짧지만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는 아니지만 칙칙하고 어두운 날씨, 배경은 차안이었습니다. 저는 조수석에 앉아있고 왠 남자가 운전을 하고있습니다. 남자의 이미지자체가 워낙에 흐릿에 과연 지금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꿈속에서 들정도로 운전석에 있는 남자는 존재가 모호했습니다. 남자가 차를 몰고 가는데 한눈에 이 곳이 고속도라라는걸 알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꿈속에서는 말도 안되는 설정이 막상 그 꿈속에서는 이해 되지 않습니까. 고속도로에 횡단 보도가 있는겁니다. 차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데 오금이 저릴정도의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조금 천천히 몰라며 말을 하려는데 앞에 왠 어린아이가 건너는게 아니겠습니까. 순식간이었습니다. 쾅하고 어린아이가 부딪히고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앞유리창이 피범벅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차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자에게 이러면 뻉소니라며 차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괜찮아"하고 말하더니 와이퍼를 켰습니다. 앞유리창은 앞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는데 와이퍼가 피를 닦아내며 시야를 밝혀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자동차 천장에서 앞유리창으로 누군가 피를 들이 붙는것 처럼 계속 피가 줄줄줄 흐는겁니다. 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와이퍼 소리와 자동차의 엔진소리만이 일정한 패턴으로 불안하게 들려왔습니다. 저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뒷좌석을 보았는데 왠 여자가 온몸이 난자 당한채 누워있었습니다.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며 차를 멈추라고 화를 내는데 남자의 이미지가 죽은 여자의 남자친구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런 갑작스러운 이미지의 변화가 있었는데도 꿈속에서의 저는 마치 처음부터 그 남자와 있었던것 처럼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화를 내며 차를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차는 어딘가에 심하게 들이 박더니 데굴데굴 굴러버렸습니다. 차안에서 저는 정신없이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비명을 지르던중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3번째 글에서 마저 이어쓰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