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이야기1

0225 작성일 07.06.28 15: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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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도 오래 되었고,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한번 올려 봅니다...

 

 

 

1. 불길한 취재(1)

승용차는 어느덧 비포장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정확히
5시간이 지난 후였다. 덜컹거리며 차의 요동이 심해지자 옆좌석에서 자고
있던 김한수 기자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부시시 눈을 뜨곤 주위를 두리
번 거리며 입을 열었다.

"야, 무슨 길이 이렇게 험하냐?"

"포장이 안되서 그래요. 눈 좀 더 붙이지 그래요? 이런 길로 앞으로 한시
간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카메라맨 이창수가 연신 멋대로 돌아가는 핸들을 움켜 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김기자는 그의 말대로 또다시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잠든 동안 내내 께름칙한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QBS 방송국의 뉴스 보도국 취재기자와 카메라맨이었다. 보도국이
란 곳은 원래 사람 잡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김기자가 이번주 내내 취한
수면의 양은 모두 합해야 10시간도 체 되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은 지금처럼 차안에서 새우잠을 잔 것이었다. 이젠 5년된
그의 엑셀 승용차가 그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면도도 차에서 하고 옷도
차에서 갈아 입는다.

그는 보도국에서도 악명 높기로 소문난 사회부 기자였다. 온갖 지저분한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을 죄다 끌어다 놓은 곳이 사회부란 곳이었다. 그곳
에서 버티려면 같이 쓰레기가 되고 잡동사니가 되어야만 했다.

"젠장, 길 한번 더럽게 험하네"

눈을 잔뜩 찌푸린 이창수의 말대로 길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몸의 균형조
차 잡기 어려울만큼 점점 더 험하게 좁아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험한 곳까지 들어와 세명씩이나 사람을 죽였
는지.... 아참 김기자님, 뒤에 카메라 괜찮은지 좀 봐주세요. 또 저번처럼
I.C라도 나갔다간 저, 아주 돌아버립니다"

"걱정하지마. 내가 아주 단단히 고정시켰으니까!"

"어차피 오늘 마감뉴스에도 내보내긴 어려울 것 같은데 아예 새벽에 출발
할걸 그랬나 봐요. 그랬으면 한 세시간이면 왔을텐데"

"괜히 새벽에 있는대로 밟아 달리다 황천길 가면 박기자가 우리 취재하러
오는 수가 있어. 차라리 조금 여유있게 오는게 낫지"

그들이 목촌리라는 낡은 이정표와 함께 약간의 공터가 있는 막다른 길에
도달한 시간은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이정표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는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작은 오솔길이 숲속으로 이어지고 있었
다.

"이건 완전히 오지중에 오지구만!"

카메라를 챙기며 이창수가 투덜거렸다. 그의 그런 불평과는 대조적으로
하루해를 마감하는 붉은 노을은 늦가을의 단풍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
어 숲은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눈부신듯 김기자가 노을을 바라보며 중
얼거렸다.

"올해는 이렇게 단풍구경 한번 하는 거지 뭐!"

"됐습니다. 조금 있으면 끔찍한 시체들을 카메라로 찍어야 할 판인데...."

오솔길로 접어둔 후 20여분 지나자 숲은 어느새 칠흙같은 어둠으로 변해
있었다. 앞장 선 김기자의 조그만 렌턴 불빛이 그들의 앞길을 불안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고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이미 두사람의 등줄기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길이 여기 밖에 없나? 이런 산길은 혼자 다니려면 제법 겁나겠는데요?
으시시한게 어디서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게.... 이 안쪽에도 사람이 산
대요?"

"사건 현장에서 한 1킬로 떨어진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구. 그
래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이쪽 강원도 오지엔 이보다 더한 산속에
도 사는 사람들이 있다구. 대부분 약초 같은 것 케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
람들이지"

"김기자님, 천천히 좀 가요. 빈몸이라고 그렇게 빨리 가면 어떡합니까?"

이창수는 내심 겁이 나는지 김기자의 뒤에 바싹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겁이 나긴 김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며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이름모를 짐승의
울음소리와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운 칠흙같은 어둠. 그리고 무엇보다 등산
객 세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그 살인마가 바로 이 숲 어디엔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어둠을 헤치며 한 40여분을 부지런히 걸어가자 그들의 앞
에 꽤 넓직한 개울이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그 개울위에는 낡은 목조다
리 하나가 위태롭게 놓여 있었고 그 너머 멀리서 마을 인가의 불빛이 가
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둘은 불빛에 겨우 한숨을 내쉬며 삐걱거리는 목조 다리를 건너 서둘러 길
을 재촉했다.두사람이 현장에 도착하자 그곳엔 의외로 한 10여가구는 됨
직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은 쥐죽은듯 고요했으며 더우기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
을과 현장 사이에는 조그만 고개가 하나 가로막혀 있었고 고개를 넘어서
자 서너명의 경찰들과 너댓명의 주민들이 현장을 둘러서 있는 모습이 시
야에 들어왔다.

"거 사람들 보이니까 엄청 반갑네"

이창수가 다소 힘이 나는지 너스레를 떨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사람
이 주민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서자 사건 현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믐달을 뒤로 하고 유령처럼
버티고 선 음침한 기와집이었다. 그 기와집을 보는 순간 김한수 기자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무척 오래된 듯 방문은 하나같이 부서졌고 찢어진 한
지가 볼상사납게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기와
집 앞마당 무수히 자란 잡초위에 세구의 시체가 가마니로 덮힌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

김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때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한
여자가 나타났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QBS 뉴스 보도국의 김한수기잡니다. 사건 취재차 지금 막 서울에서 내
려왔습니다. 여기 책임자가 어느 분이신지?"

"제가 책임잡니다. 이번 사건때문에 횡성군에서 파견나온 윤형삽니다"

그녀의 말에 김기자가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찬찬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반문해 왔다.

"왜요? 뭐가 잘못 됐나요?"

"아... 아닙니다. 시체가 오늘 아침에 발견 되었다구요?"

김기자가 시신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아참, 얘기하는 동안 저희 카메라맨이 취재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시죠. 대신 시신 촬영은 안됩니다"

"가마니에 덮힌채로는 괜찮겠죠?"

윤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기자가 이창수에게 소리쳤다.

"주변 스케치 좀 하고 특히 저 앞에 낡은 기와집 좀 잘 잡아. 시신은 있
는 그대로 슬쩍 덮어 주고...."

취재팀 때문인지 주민들이 다소 술렁 거렸지만 이내 잠잠 해졌다. 곧 그
들은 이창수가 하는 일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지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막연한 공포심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자신들의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이
셋 씩이나 죽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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