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이야기 1-(2)

0225 작성일 07.06.28 15: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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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길한 취재(2)

"신원은 확인 됐나요?"

"예. 한 사람은 K일보 신문 기자이고 나머지 둘은 모 잡지사 기자들이었
습니다. 자세한 인적사항은 따로 적어 드리죠"

"신문 기자와 잡지사 기자요?"

"취재를 하러 왔다가 변을 당한 것 같은데 무엇을 취재하러 왔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들의 사인은 뭡니까? 살해된 것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한가요?"

"아직 뭐라고 확실히 단정할 수 없습니다. 부검해 보기 전에는"

"대충이라도 짐작가는게 있을 것 아닙니까?"

"글세요"

"혹시 목격자가 있습니까?"

"현재로선 없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살해된 것인가요?"

"아직 살해된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고 아까 말씀 드렸을텐데요?"

"아, 그래요. 그럼 여기 이곳에서 사망한 건가요?"

"그것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쌀살하게 대답하는 윤형사의 표정에서 김기자는 그녀에게 특기할만한 정
보를 얻기는 어려우리라는 판단을 했다.

앞뒤가 뻔한 얘기라해도 촌구석에 말단 형사가, 그것도 임시로 파견 나왔
을 여형사가 공식화되지 않은 자신의 사견을 함부로 얘기할 리가 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묻는 것보단 자신이 직접 시신을 보는 편이 빠를 듯 했다. 이젠
자신도 웬만한 베테랑 형사 뺨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시신을 좀 봐도 될까요?"

"보시지 않는게 좋을 겁니다"

그녀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여자에게 그런 말을 들으
니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것도 사실이었다. 반발심이었는지 그는 일부러
힘주어 말했다.

"사회부 기자가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시나본데 우리도 웬만한 형사들보
단 험한 꼴 더 많이 보고 다니니까 걱정 말아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언젠가 그는 한꺼번에 30구의 시체를 본 적도 있었
다. 시외버스가 50미터 절벽 아래로 구른 교통사고였다. 팔이 잘리고 얼굴
이 뭉개진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끔찍한 경험이었다.

이제 그에게 시체 따위를 보는 일은 백화점에 진열된 마네킹을 보는 것
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었다. 김기자가 렌턴을 아래로 비추며 구둣발로
가마니를 슬쩍 걷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끙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발작적으로 두어걸음 뒤
로 물러났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까지 많은 시신을 봐 왔지만 지금처럼
끔찍한 것은 처음이었다.

시신의 이곳 저곳에는 마치 홈이 파인 흉기 같은 것으로 찌른 것처럼 굵
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구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섬뜩하게 만든 것은 시신의 부릅 뜬 눈동자에 아직
도 남아있는 형언키 어려운 공포의 잔재였다. 그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자신을 향해 살려달라며 달려들 것 같았다.

"도..... 도대체 뭘로 죽였길래?"

"그러게 부검을 해 봐야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머지 둘도 마찬가진가요?"

김기자가 두려운 눈으로 윤형사를 돌아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사실 나머니 두구의 시신은 보고 싶은 마
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만 했다. 추정 기사라도
쓰기 위해선.

그는 이번엔 먼저보다 훨씬 신중하고 조심스런 동작으로 다시 두번째 가
마니를 들추었다. 그러나 그는 아예 '욱'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틀어 막으
며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심한 구토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으며 머리끝이 쭈삣하는 전율이 온
몸을 휘감아 왔다. 두번째 시신은 거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울만큼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마치 짐승에게 뜯어 먹힌 것처럼 얼굴 한쪽이 거의 없어져 버렸고 오른쪽
팔꿈치 아랫 부분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았다. 특히 가슴부분의
손상은 차마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것은 마치 초원의 맹수에게 뜯어 먹히다 만 사슴의 내장을 연상케 했
다. 몇번의 구토와 함께 김기자는 세번째 시신은 볼 엄두도 내질 못했다.

* * *

교양 제작국의 정해일PD가 보도국 김한수 기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것
은 새벽 3시경이었다. 그들은 대학동창이자 QBS의 입사동기 였다.

그는 아직도 잠이 덜 깬 눈으로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안간힘을 쓰며
밀려오는 졸음을 쫓고 있었다. 방금전 김기자와의 전화 통화 내용이 꿈속
처럼 어렴풋이 떠올랐다.

오늘 살인사건 취재 때문에 강원도 횡성 쪽을 다녀왔는데 그 테잎을 편집
하면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의 차분한 성격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몹시 흥분되어 있었으며 약
간의 두려움까지 섞인 듯 했다. 그는 한없이 가라앉는 무거운 몸을 가까
스로 추스리며 방에 불을 밝혔다.

방 한쪽 구석에는 멋대로 벗어 제낀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시
계는 언제 밧데리가 떨어졌는지 잠자기 전부터 줄곧 8시 50분만 가리키고
있었다.

서른 여섯의 나이에도 그가 아직 독신인 이유는 전적으로 그 망할놈의
PD라는 직업때문이었다. 청바지위에 셔츠 한장과 가죽잠바를 대충 걸치
고 현관을 나서려다 그는 뭔가 잊은듯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쇼파 위에 검은 캡모자를 집어 눈썹까지 푹 눌러쓰곤 비로소 아파
트 현관을 나섰다. 싸늘한 새벽 공기가 겨울처럼 매서웠다. 그는 달리듯
자신의 엘란트라 승용차까지 가서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곤 서둘러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었다. 추위로 이빨이 아래위로 부딪
혀 왔지만 다시 올라가 옷을 더 껴입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엔진이 체
달기도 전에 그는 깊숙히 악셀을 밟았다.

그의 집은 잠실이었다. 올림픽대로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승용차의 속도계
는 160을 가리켰다.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4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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