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이야기 1-(3)

0225 작성일 07.06.28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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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길한 취재(3)

그가 보도국 편집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김한수는 자리에 없었다. 그리
고 편집실 모니터에는 어느 공포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음침한 기와집 한채
가 을씨년스럽게 버티고 서 있었다. 그가 막 조그셔틀을 만지려는 순간
김한수가 커피 한잔을 들고 들어섰다.

"어? 벌써 왔어? 또 있는대로 밟았구만?"

"야, 잔말말고 그 손에 들린 커피나 빨랑 주라, 오는데 얼어 죽는줄 알았
다. 이젠 완전히 겨울이다, 겨울!"

김한수에게서 건네받은 커피를 한모금 입에 넘긴 해일이 그제야 살겠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성질 급한건 여전하구만, 그렇게 벌벌 떨지 말고 옷이나 좀 챙겨 입고
나오던지"

"새벽에 황당하게 사람 불러내 놓고 이젠 잔소리까지 늘어 놓을 려구? 남
걱정 하지 말고 그렇게 불 나는 일이 뭔지 어서 용건이나 말해. 나 빨리
들어가서 다시 자야 돼! 요즘 귀신들한테 시달려 잠도 제대로 못 잔다구"

농담같은 그의 말 때문이었는지 김한수의 얼굴엔 금새 웃음기가 가셨다.
해일은 그의 진지한 표정이 웬지 마음에 걸렸다.

"그래, 본론부터 말할께! 너 요즘 귀신에 대한 특집 다큐 제작중이랬지?"

"그래서?"

"그럼, 혹시귀신을 찍거나 본 적은 있어?"

"자식! 지금 농담하냐? 뻔히 알면서 왜 그래? 정말 귀신이 있어서 프로그
램 만드냐, 요즘 사람들 워낙 그 쪽으로 호기심이 많으니까 부랴부랴 특
집 편성한거지. 근데 갑자기 그 얘긴 왜 묻는거야?"

잠시 망설이던 김한수가 이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오늘 내가 취재 가서 찍은 테잎인데....."

"아까 들어오면서 봤어. 근데, 요즘은 보도국에서도 귀신 찾아 다니냐?"

"그게 아니라.... 저 곳에서 오늘 세명의 등산객이 살해 당했어"

그리곤 책상위에 종이 몇장을 집어 건네며 계속 말했다.

"이따 읽어봐, 이건 그 사건에 대해 내가 작성한 내일 아침 뉴스 기사야!"

"젠장 내일은 시민들이 출근길을 살인사건 뉴스로 시작 하겠구만. 근데
그게 어쨌다는거야?"

"테잎을 잘 보라구"

말을 마친 그가 테잎을 되감아선 풀레이 했다. 카메라는 폐허가 된 기와
집의 처마에서 부터 천천히 아래로 앵글을 움직이고 있었다.

부서진 문짝들, 찢겨져 너풀거리는 한지, 검게 그을린듯한 처마 기둥, 그
리고 주위론 온통 어둠뿐이었다. 뭘 보라는건지 영문을 알지 못하고 열심
히 화면을 보던 해일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잠깐, 거기!"

화면은 그가 소리친 바로 그 곳에서 멈추었다. 멈추어진 화면에는 카메라
가 기와집의 창고 내지는 부엌으로 보이는 왼쪽편의 부서진 문짝을 크로
즈업으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서진 문짝 틈새 어둠속에서 뭔가..... 뭔가 번쩍이는 것들이
있었다.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그것은 반딧불 같기도 하고, 혹은..... 광채를
내뿜는 짐승의 눈 같기도 했다.

더우기 그것들은 한두개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족히 열두세개는 될
듯이 보였다. 정민수는 눈을 더욱 찡그리고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도대체 저게 뭐야? 뭘 찍어 온 거야?"

김한수는 대답 대신 다시 화면을 플레이 시켰다. 카메라가 이번에는 기와
집 대신 바로 김한수 자신과 낯선 남자 한 사람을 잡고 있었다. 김한수가
빠르게 말했다.

"내 옆에 있는 남자는 현장에 있던 형사야!"

두사람을 크로즈업으로 잡고 있던 카메라가 서서히 줌아웃 되면서 그들의
발 아래 가마니로 덮힌 시신들의 모습이 막 화면 안으로 들어 올 때였다.

"잠깐, 저건 또 뭐지?"

이번에도 화면은 그가 소리친 바로 그곳에서 정확하게 멈추었다. 김한수
도 이미 그 곳에서 화면을 정지시키려고 준비한 것 처럼. 해일은 다시 화
면 앞으로 얼굴을 바싹 갖다 댔다.

화면은 김한수와 형사라는 사내가 발 아래 가마니로 덮힌 시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의 바로 뒤 어둠속에 무
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형체는 희미해서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화면을 막 오버랩 시킬때와 같이 보일듯 말듯 희미한 모습으로 버티
고 선 것은 분명한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형상은 똑바로 카메라의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다. 뚫어지게 화
면을 바라보던 해일이 김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대체 뭘 찍어 놓은거야? 카메라 포커스를 잘못 잡은 것 같지도 않고"

"사실은 그게 뭔지 나도 잘 몰라. 물론 카메라맨도 전혀 모르고.... 분명히
현장에서 촬영할때 화인더에는 아까 보았던 그런 광채나 지금같이 저런
이상한 형상 같은건 전혀 없었다는 거야. 네가 보기엔 어떠냐?"

"어떠냐니?"

김한수의 질문에 반문하며 화면에서 눈을 떼어 그를 돌아보던 해일은 그
제서야 그가 이런 새벽에 자신을 급히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넌 저게 카메라에 귀신이 찍힌 것이라고 생각한다는거야?"

"카메라에도 이상이 없고 현장에선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저 이상한
것들을 뭘로 설명하지?"

김한수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해 보였다. 해일은 다시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전히 그 이상한 형상은 똑바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고 마침내는 해
일 바로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섬뜩함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테잎을 돌려가며 두가지 이상한 형상의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했
지만 무엇으로도 그것들을 설명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이건 현장에 있던 주민한테 얼핏 들은 얘긴데 말야, 그 집엔 귀
신이 있다는 거야. 그러면서 취재한답시고 설치다 괜히 무서운 화를 당하
지 말고 어서 돌아가라며 은근히 협박까지 하지 않겠어?"

"그래서, 설마 그 주민의 얘기를 믿는단 얘긴 아니겠지? 사실 나두 귀신
의 존재를 전혀 부정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번에 특집 프로 제작하면서
오히려 귀신이란 존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허상
이란 확신이 들더란 말야! 대부분의 귀신 목격자들을 취재하러 다녀보면
뭔가 앞뒤가 않 맞는 구석이 반드시 한 두개씩은 나오더라구. 자신의 체
험을 증명할만한 객관적인 증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구. 귀
신이 나온다는 온갖 음침한 곳과 집들을 다 찾아 다니며 카메라로 찍어댔
는데 귀신의 모습은 커녕 그 비슷한 것도 한번 찍힌 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이번 프로그램의 결론을 아예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끌
고 가기로 했어. 사실 처음 기획부터가 좀 우스꽝스럽기도 했구"

해일은 상당히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다. 그러나 김한수
는 그의 얘기에 단 한마디 반박도 없이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결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언
제나 열띤 논쟁을 벌이곤했으니까.

"그래, 나 자신도 내가 지금 얼마나 황당한 얘길 하고 있는지 잘 알아. 하
지만 사람에겐 이성적인 논리나 합리성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예감이나
본능같은게 있잖아. 처음 현장에서 그 기와집을 보았을때 내 기분이 어땠
는지 알아? 그야말로 지옥문 앞에라도 와 있는 기분이더란 말야. 난 그
기와집을 그 곳에서 처음 본게 아니었거든. 서울서 내려오는 차안에서....
잠든 동안 내내 나는 꿈속에서 그 기와집을 봤어. 뭔가에 계속해서 쫓겨
다녔던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아"

김한수는 지금도 그 당시의 기분이되살아 나는지 양 어깨를 움츠렸다.
몇 시간후에 보아야할 이상한 기와집을 미리 꿈속에서 보았다는 김한수의
말에 해일은 비로소 쉽게 무시하지 못할 무언가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
겠다는 막연한 예감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그때 다시 김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뿐이 아냐! 화면속에 그 이상한 형상이 도대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거야. 마치 나를 잡아 먹을듯 노려보는 것 같더라구! 게다가 그 집앞
마당에 있던 참혹하게 살해당한 시신들. 그 시신의 눈. 대체 그들에게 무
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눈동자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는 무서운 공포가 깃들어 있었어! 자꾸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창
피하게..... 하옇튼 하고 싶은 말들은 다 했어. 어차피 판단은 네가 해야 하
니까. 아까 건네준 자료에 모든걸 자세히 적어 놨어. 집에 가서 읽어봐!"

김한수는 거기까지 얘기하고 급히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2년전부터
완전히 담배를 끊었던 그 였다. 오랫동안 김한수를 봐 왔지만 오늘같은
그의 모습을 보긴 처음이었다.

얼마 후 해일은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편집실을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승용차 속도계는 한번도 120을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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