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공포소설]빙의

놀자44 작성일 07.11.03 0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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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보인단 말입니까?‘

“당신 머리위에 앉아 당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자의 모습 요.”

“내 머리요?”

“네 당신의 머리위에 앉아서 무섭게 당신을 노려보는 여자의 모습 요.”


장르/ 공포 단편

제목/ 빙의

(부제 : 원귀 두 번째 이야기)

글/ 기억저편에(by 루시페르)



여자의 눈은 피곤함에 지쳐 있는 듯 조금은 충혈 된 채 나와 마주하고 있다.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여자는 다시 입을 연다.

“금방이라도 당신의 머리통을 박살 낼 듯 한손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고 다른 손은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 올려진 상태입니다.”

“음.”

내 앞에 있는 여자의 표현. 머리 위 여자의 모습. 그건 살아생전의 아내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이미 일년 전에 죽은 아내가 내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아리송했고 머리위에 앉아 죽일 듯 노려보고 있다는 말은 날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정말 여자의 말이 사실 이라면 죽은 아내가 날 찾을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되어지긴 한다. 혹여 한때 자신이 사랑했었던 남자를 잊지 못해 찾아왔을 거라는 삼류 로맨스 적인 생각은 가당치 않은 듯 보였고 아마 원한에 사무쳐 날 찾아 온 듯싶은데.

그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맞다. 아내는 자신이 살아생전 얽매여 있었던 원한을 풀기 위해 날 찾아 온 것 일게다.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녀의 얼굴은 항상 그늘에 가려 살아왔었다. 그놈의 술이 문제였다. 힘든 막일을 하다 보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술. 나는 그 술을 퍼 마시며 힘든 육체의 노동을 잠시나마 이겨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이었을 뿐이다. 육체적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가 싶을 때 어디선가 끌어 오르는 내안의 악마성은 내 이성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술에 흥건히 취해 집에 돌아와 아내와 눈을 마주한 순간 미칠 듯 끌어 오르는 분노. 그것을 삭히기 위해 수도 없이 아내를 향해 휘둘렀던 폭행. 영문도 모른 채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 때 까지 맞아야만 했던 아내. 어쩌면 그녀가 날 찾아 온 것은 아주 당연한일일 게다.

“하지만 아가씨의 말을 뒷받침할 어떠한 근거가 없잔 습니까?”

머리위에 앉아 있는 여자. 행동 모든 정황을 미루어 봤을 때 내려지는 결론은 아내가 분명 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여자의 말을 뒷받침 할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었기에 그녀에게 반론을 제기 했다. 아니 어쩌면 이 여자라면 어떠한 확답 같은 것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의한 질문이었다.

“제 이름은 김수진 입니다. 그리고 당신 머리위에 앉은 여자에 대한 존재여부는 몇 달 전부터 계속 앓아온 당신의 두통과 어깨 통증으로 확인시켜 드릴 수 있을 듯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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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라 부르는 것 에 못마땅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듯 한 내 질문이 거슬렸는지 수진의 눈 커플이 살짝 쳐졌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여자가 한말이다. 수진의 말대로 몇 달 전부터 앓아온 두통 그리고 원인 모를 어깨 통증. 그 고통에 휩싸여 보내온 지난 몇 달 간의 세월. 그것을 증명 할 수 있는 것. 그건 바로 내 머리위에 있는 죽은 아내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믿을 수 없다면 당신 옆에 위치한 거울을 봐보세요.”

수진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오른쪽에 위치한 작은 벽걸이 거울 쪽 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비춰 지는 것 은. 주름살이 잔뜩 진 한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마흔 초반의 나이였지만 지금껏 삶의 고뇌를 어깨위에 너무 많이 짊어진 탓인지 오십 후반쯤의 나이로 비춰지는 남자. 그건 바로 내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뿐 다른 건 없었다. 죽은 아내의 모습 따윈 없었다.

“거울 속에는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그렇다면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거울을 보세요.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말이죠.”

수진의 말대로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산소를 들어 마신 후 길게 숨을 고른 다음 그녀의 말대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말도 안돼는 생각과 함께 거울을 주시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영혼의 존재. 그것은 볼 수 있지만 볼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일지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볼 수 있는데 당신은 볼 수 없다는 것에 더욱 그런 확신이 서는군요.”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녀의 말은 타당성이 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마치 보이지 않은 것처럼 대하는 경우가 있다.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 그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 그건 마치 보이지만 보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가장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다시

시선을 거울 쪽으로 옮겼다. 무언가 보일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간직한 채 서서히 비춰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해서.......

“저.......저건!!”


보인다. 보여

수진의 말처럼 머리위에 앉아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비춰 졌다. 붉은 눈동자를 깜박거리며 나와 눈을 마주한 죽은 아내의 모습. 내 머리를 부여잡고 다른 손은 높이 치켜 올린진 채 금방이라도 두개골을 박살 낼 듯 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으악!”

기대감은 마음속에 사라진지 오래다. 그 후 느껴지는 공포. 온몸을 뒤덮는 싸늘한 울렁거림이 온몸을 장악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 속에 흐르는 식은땀이 지금 내가 느끼는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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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하세요. 당신의 마음이 약해지면 언제 몸속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호흡을 가다듬으세요.”

시커먼 어둠 속 비춰지는 작은 불빛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그 주인공은 죽은 아내의 존재를 인식하게 해준 수진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소리가 무슨 말이요?”

“죽은 원혼은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혹여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기가 아주 약한 이들을 상대로 그들과 융합 하려 하죠. 당신의 아내가 바로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의 마음이 약해진다면 곧 그녀는 당신의 몸속으로 기어 들어갈 것입니다.”

수진이 말하는 이야기.

그건 곧 빙의현상을 말하는 듯싶다. 구천을 떠도는 원혼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살아 있는 숙주를 찾게 된다고 들은 적 있다. 그들의 대상은 기가 약한 자 거나 삶에 대한 후회로 갈등하는 인간들을 상대로 그들의 육체를 지배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죽은 아내를 빨리 머리위에서 떼어 내어 주십시오. 당신이라면 가능하겠죠?”

그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귀신에 대한 존재 여부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볼 수 있다고 했기에 그녀라면 꼭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녀 쪽 으로 다가가 부탁 한 것 이다.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아주 쉬운 일이죠.”

“그렇다면 어서 떼어 내어 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돈은 필요치 않습니다.”

“네?”

“돈따윈 저에게 필요 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뭐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인가요?”

“당신의 설득.”

머리위에 앉아 있는 아내가 몸속에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태 인 데 수진이라는 여자는 더욱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설득이라.......무엇을 설득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설득하면 되죠?”

“당신의 아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을 찾게 되었는지 나를 설득 시킬 수 있다면 순식간에 당신 머리위에서 떼어내어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아내가 날 찾은 이유. 그것만 수진에게 말하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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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죽기 직전까지 저에게 맞았습니다. 아니 제 내면 어딘가에 있는 악마에 의해서 맞기만 했죠. 영문도 모른 채 맞기만 했던 아내는 결국 자살을 택했고 그렇게 죽은 아내는 그 원한을 풀지 못한 채 나를 찾아 온 듯싶습니다.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입니다.”

“아니라는데요!”

“네?”

“당신 머리위에 앉은 여자가 당신의 말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드는군요.”

아내는 말을 하지 못했다. 죽어서 영혼이 되었다 한들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수진에게 대충 이유를 둘러 댄 후 아내를 내 머리위에서 떼어내려고 했다. 말을 하지 못했기에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나 보다. 너무 일을 쉽게만 처리 하려고 했던 자신이 후회스럽다. 하지만 정작 내가 아는 사실 그것을 수진에게 말하게 된다면 나는 큰 곤욕을 치러야 할 것이다.

“당신의 솔직한 답을 듣고 싶군요. 약속 하겠습니다. 어떠한 악행을 저질렀다 해도 그 누구에게도 발설 하지 않겠습니다.”

“음.”

고민이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진실 그것을 말하게 된다면 아니 그 사실을 다른 누군가가 알게 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알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어 버린다면 지금까지 잘 살아왔던 내 모든 인생은 거품처럼 날아가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 이 여자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왠지 모를 믿음 감 그것이 여자에게서 느껴 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을 두통과 어깨 통증에 시달리며 생을 마감 해야 하지 않나. 그런 고통 속에 살다 가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속 시원하게 털어 버리자.

“실은 아내는 자살한 게 아니라 제가 죽였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몇 번 이고 생각해보고 머리 속에 되새기고 또 되새겨 보았지만 이놈의 술이 문제였습니다. 태어 날 때부터 간이 좋지 않은 나에게 술이란 놈은 극약과도 같은 존재였나 봅니다.

이놈만 먹었다 하면 이성을 잃어버린 채 오로지 악마 성 을 가진 본능에게만 충실해져 버리니 말이죠. 하지만 힘든 육체의 노동을 잠시 잊게 해줄 수 있는 것 이라고는 오로지 이놈 밖에 없었습니다. 부유층처럼 마약이라 던지 대마초 따위는 돈이 없는 나에게는 가당치 않았기 때문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죠.

매일같이 이어지는 힘든 노동 그리고 나와는 맞지 않은 술과의 전쟁. 그 전쟁의 승자는 언제나 술이었죠. 이놈만 마셨다 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사랑했던 사람 싫어 했던 사람 고통 희망 따위의 모든 것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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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선의에 피해자 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나를 사랑했던 죄 밖에는 없었던 여자죠. 하지만 나란 놈은 정말 몹쓸 짓만 해왔습니다.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도착해 아내의 얼굴을 마주 하면 어디선가 올라오는 분노. 그것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면 언제 나갔는지 모르는 주먹은 아내의 얼굴을 정통으로 후려 치고 있었고 그렇게 시작된 폭행은 육신이 지칠 때 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이성을 되찾게 되면 아내는 어제의 일은 개념 치 않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아침을 준비했었죠.

물론 내가 그런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내의 얼굴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늘 미소로 나를 대했죠. 그러기를 반복 하고 다시 반복하고 몇 번 의 반복적인 생활에 아내는 혹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가 왔나봅니다.

아내가 사라지던 그날역시

술에 잔뜩 취해 집안에 들어 섯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아내를 찾았죠. 몇 번이고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다시 미친 듯이 아내를 찾아 방안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아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그때 내안에 잠들어 있는 악마 녀석이 잠에서 깨어 저에게 속삭이더군요.

“뭐라고 했죠?”

[너를 버렸어 크크큭 너를 버렸어 다른 남자가 생긴 게야 다른 남자가 말이야. 그래서 도망친 게야 네 녀석이 절대 찾지 못하는 아주 먼 곳 으로 도망친 게야.]그 당시 나는 그 목소리의 정체 따윈 의심하지 않은 채 오로지 분노에만 사로 잡혀 있었죠. 그때부터 마음이 급해 졌습니다. 빨리 아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요.

“그런 상황에서도 아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왜 했는데요?”

죽여 버릴 려구요. 나를 버렸다는 생각에 미칠 듯 화가 났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돈을 벌었고 누구를 위해 살아 왔었는데 이제 와서 나를 버렸다는 나만의 생각만을 가진 상태인 만큼 화가 너무나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몹쓸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찾아 죽였나요?”

아뇨.
그때 나는 미친 듯 밖으로 뛰어 나와 아내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 보고 아내가 갈만한 곳을 다 찾았지만 모든 일은 허사였습니다. 아내는 정말 누군가 해준 말처럼 내가 찾을 수 없는 아주 먼 곳 으로 도망가 버렸나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내 찾는 일을 포기한 채 집에 들어와 잠을 청했습니다. 피로라는 녀석이 몰려왔기 때문이죠. 눈 커플은 왜 그렇게 무거운지. 그냥 모든 것을 포기 한 채 들어와 침대에 걸쳐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몸은 자고 있지만 정신만은 또렷한 상태의 기괴한 잠을 말이죠.


-우당탕-

어느 정도 피로함이 몸에서 가실 무렵 또렷한 정신 속에서 들려오는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거실 쪽에서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채 자던 잠을 다시 청했죠. 그렇게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잠시 동안 들려오더니 집안은 개미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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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희미해져 가는 정신은 다시 또렷해 졌고, 어느 순간 알수 없는 소름이 온몸을 장악했습니다. 그 순간 눈을 떳습니다.

“그래서요?”

후훗.

그날 달빛은 정말 밝았죠. 특히 내방 창문에 반사 되어진 달빛은 여느 때보다 훨씬 밝고 따스했었고 포근했습니다. 그리고 그 달빛 때문에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요?”

아내의 얼굴을요.
언제나 변함없이 날 위해 짓던 아내의 미소. 그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가슴 어느 한구석은 꽤 아픈 통증이 밀려오더군요. 나는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눈동자만 이리 저리 굴려 가며 통증의 근원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찾은 통증의 근원지.

그건 웃고 있는 아내가 나를 향해 사정없이 내지른 횟집용 사시미 칼날이었죠. 칼끝은 이미 살 속 깊이 박혀 있었고 채 박히지 않은 칼날은 달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생각과는 다르게 죽지 않은 나를 발견했는지 아내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더군요. 그리고 급히 살 속에 박혀 있는 칼을 빼어 내려 했습니다. 그때 나는 마냥 아내를 가만 놔두었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오른쪽 팔을 힘껏 부여잡았습니다. 아내가 살 속 깊이 박힌 칼을 빼내지 못하게끔 하기 위해서요.

예상 했던 대로 아내는 살 속에 박힌 칼을 꺼내지 못한 채 당황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가 들렸죠. [죽여 죽여 널 배신하고 도망간 년이야 지금 죽여 나쁜 년이잖아.]

두 번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배신 그것은 곧 나를 흥분 시켜 분노케 했습니다. 또한 나를 죽이려는 아내의 모습. 그것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리게 머릿속에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되었죠. 아내가 날 죽이기 전에 내가 아내를 먼저 죽이자는 생각을요.

그 생각이 머리에 박히자마자내 왼손은 아내의 오른손을 잡은 채 오른손을 빠르게 움직여서 살 속에 박혀 있는 사시미를 힘껏 빼내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도 아내의 얼굴을 봤죠. 공포에 사로잡힌 듯 그녀의 얇은 입술을 부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려진 사시미 칼을 내 뱃속 대신 아내의 뱃속 깊은 곳 에 그대로 찔럿습니다. 한번 두 번 세 번 연속해서 말입니다.

붉은 핏물이 사방에 튀였고 그렇게 튄 핏물 중 일부는 눈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입속에 파고들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런 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배신하고 죽이려 했던 아내의 행동이 더욱 중요했기에 이미 죽어 있는 아내의 육체에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칼 세례를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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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렇게 정신을 차린 후 아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생기 잃은 두 눈동자는 내 얼굴에 고정 되어 진채 붉은 핏덩어리를 입 밖으로 토해내며 고통스럽게 죽어간 아내의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다시 이어 오는 가슴속의 통증. 아내를 살해한 순간에도 나는 내가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옷장 안에 있는 구급함을 꺼내어 응급 처치를 했죠.

“그렇군요.”

“네.......아내는 아마 그 원한을 잊지 못한 채 날 찾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 원인 이었군요.”

“이젠 어떻게 하실 꺼죠?”

“약속을 지켜야겠죠. 당신 머리위에 있는 저 원혼부터 처리 하겠습니다.”

수진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손가방 안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부엌용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 왔고 나는 본능적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거울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는 죽은 아내의 모습이 선명히 비춰졌고, 아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듯 높게 치켜 올리고 있던 팔을 힘없이 늘어 뜨려놓았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수진을 바라본 아내는 겁에 질린 듯 한 표정으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고 이내 수진은 자신이 들고 있는 부엌용 칼을 이용해 아내의 목선을 중심으로 곡선을 그리며 그어 내렸다. 순간 아내의 목은 몸과 분리 되었고 몸과 떨어져 나가는 아내의 얼굴은 알 수 없는 진한 슬픔이 묻어 있었다.

“기분 어떠신가요?”

“네?”

“오랫동안 당신을 따라 다니던 두통과 어깨의 통증이 사라진 지금 기분이 어떠냐구요?”

아내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두통과 통증은 씻긴 듯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죽은 아내에게 이 몸뚱이를 주었으면 어땟 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드는지.......정말 모르겠네요.”

“그런가요.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다시 거울을 쳐다보세요.”

수진의 말대로 힘없이 고개를 움직여 거울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오십을 훌쩍 넘어 보이는 남자. 그리고......그리고........

“저....... 저건 뭐죠?”

“아이입니다.”

두통과 통증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느껴지는 복통
그 원인 모를 통증의 이유는 내 뱃속을 기어오르려 하는 한살 박이 아이의 모습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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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는 또 뭐죠?”

“당신이 두 번째로 살해한 아이입니다.”

“뭐라고요!”

아이를 살해했다니. 난 아내를 살해한 후 어떠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며 산적이 없다. 그런데 아이를 살해했다니.

“무 무슨 소리죠. 난 아이를 살해 한 적은 없습니다.”

“당신은 모르겠죠. 저 아이는 당신과 당신 아내에게서 만들어진 생후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을요.”

“그 그럼 아내 뱃속의 아이.”

“그렇습니다.”

밀려오는 복통 그리고 쳐다본 거울속의 모습들. 아이는 마치 새로운 몸을 원하는 듯 내 몸을 기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이 아이도 내 몸을 원하는 군요.”

“제거 할까요?”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살해당한 아이. 어쩌면 아이는 복수 보다는 세상의 빛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 몸에서 그렇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하는 말이기에 알아 들을 수 있는 것 이다.

“저기 수진 씨?”

“네?”

“잠시만 아이에게 제 몸을 빌려줄 수도 있나요?”

“무엇 때문이죠?”

“아이는 빛을 갈망합니다.”

“음.”

“아이에게 단 한번 이라도 밝은 빛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게 아이가 원하는 것이고 저 또한 원하는 것이기에 말이죠.”

아이를 위해 잠시 동안 몸을 빌려준다 한들.
아니 내 아이를 위해 이 쓰레기 같은 몸뚱아리를 줄 수만 있다면 웃으며 내어 주고 싶다.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정 원하신다면 방법이 없는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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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을 길게 들여 마신 후 당신의 영혼을 느끼세요.”

그녀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호흡을 길어 들여 마시며 생애 한번도 느껴 * 못한 혼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모든 감각을 이용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자 이제 눈을 뜨세요. 그리고 거울을 보세요.”

알 수 없는 무언가. 그 무언가가 몸속에 빠져 드는 느낌이 든다. 서서히 그리고 들려오는 수진의 목소리. 그녀의 말대로 눈을 떠 거울을 쳐다본다. 거울 속에 비춰 지는 것.

“아이....... 아이가 제 몸속에 들어 왔군요.”

내 모습 그리고 아이의 모습이 몇 번 번갈아 가며 이내 아이의 모습이 거울 속에 가득 비춰 졌다. 그리고 내 모습....... 몸 밖으로 나온 내 영혼이 보인다. 주름이 가득 차 있는 불쌍한 내 영혼이.

“그럼 잘 가십시오!”

“그게 무슨?”

수진은 짧은 한마디와 함께 자신의 손에 들려진 날이 선 부엌용 칼을 빼어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와 아내를 향해 베었던 그 솜씨 그대로 목을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며 그어 나갔다.

통증 따윈 없었다. 하지만 희미해진다. 거울 속에 비춰지는 내 모습. 내 정신 모든 것들이 희미해 져간다.




모든 일을 끝마친 수진은 거실로 나왔다.

거실 밖에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인이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채 서있었다. 그리고 작은방에서 나오는 수진의 모습을 발견한 여자는 빠른 발걸음으로 수진에게 다가 섯다.

--------------------거실

거실은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두 여자는 둥근 탁자를 중심으로 마주한 채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커피 잔에 손이 가있다.

“수진 씨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일인데요.”

수진은 당연한 일을 했다 듯 미소 짓는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여자는 다시 수진을 향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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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을 향해 말하고 있는 여자.

여자는 20대 후반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그 후 이년 만에 사랑의 결실을 맺고 태어난 아이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자의 고민은 아이의 상태 때문이었다. 머리는 퉁퉁 부어오르고 어깨와 배 쪽에는 붉은 반점 같은 것이 더욱 붉어지는 기괴한 현상 때문에 말이다.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 가보았지만 아이의 병명은 ‘불명’ 이었다. 그렇게 현대 의학에 미련을 버린 채 영적인 힘을 빌리기 위해 찾아간 용하다는 점집. 그곳에서 듣게 된 충격적인 소리.

아이의 병명은 빙의에 의한 것 이라고 했다. 그것도 하나의 원혼이 아닌 두 명의 원혼이 아이의 몸을 서로 갖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소리에 여자는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를 위해 수많은 굿과 부적을 사용했지만 모든 일은 허사로 돌아갔다. 이유는 두 명의 영의 존재가 너무나 강한 원혼을 가지고 있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찾게 된 종교.

하지만 그곳에서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는 효과를 봤다. 여자와 남편은 아이를 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질 무렵. 우연히 보게 된 오래된 신문 한 장. 그곳에는 수진의 이름이 거론되어져 있었다.

‘귀신을 보는 여자’

라는 제목과 함께.

여기 저기 수소문 한끝에 찾게 된 수진. 그리고 수진에게 듣게 된 섬뜩한 이야기. 아이의 몸속에 이미 남자의 원혼이 빙의 되었다는 소리. 그리고 아이의 밖에서 시시탐탐 육체를 노리는 여자의 원혼은 쉽게 제거 할 수 있지만 이미 몸속에 들어선 남자의 영혼은 제거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두 부부는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들에게 실날같은 가느다란 희망은 수진의 한마디로 인해서였다.

“원혼이라도 할지라도 자신의 생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건드려 남자의 원혼을 아이의 몸 밖으로 끌어 낼 수만 있다면 성공 하게 됩니다.”

그렇게 수진의 계획대로 남자의 원혼은 아이의 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고, 남자의 원혼을 제거 할 수 있었다.

“부인의 아이 역시 자신의 몸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강한 아이인 만큼 씩씩하게 키우세요.”

“네 네 정말 감사 드려요.”

그녀들의 대화가 끝난 후 수진은 아이가 잘 있는 지 확인한 후 집밖으로 나갔다.

가을의 하늘은 유난히도 높아 보였고 유난히도 푸른빛을 띄우고 있었다.

“날 원망 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당신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낸 것뿐이니 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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