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2)

무한한창의성 작성일 07.11.24 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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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철은 현관으로 나가 무표정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담배를 피워문다. 지난 수십년간 많은 살인사건, 강력범죄들을 해결해 낸 베테랑 경찰이지만 요즘처럼 이유없이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은 그도 처음이다. 이건 눈가리고 아웅 할 수 있을만큼의 졸속행정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벼운 사건도 아닐뿐더러 피해자 가족들에게 들어오는 계속적인 실종신고와 상부에서 조여오는 심리적 압박감에 하루하루가 미칠 지경이다. 피워 문 애꿎은 담배는 잘근잘근 씹어대는 바람에 필터부위가 찌그러진 일자모양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쌓인 스트레스가 찌그러진 담배처럼 여지없이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영철의 눈가에는 요즘들어 주름이 더 늘었다. 이놈의 미스테리한 사건 때문에 얼굴의 주름 뿐만 아니라 희끗희끗한 세치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얼굴에 가득담긴 짜증과 함께 꽁초를 하수구로 날려버린다.

 

현재 한달여간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실종사건의 피해자는 무려 23명에 이른다. 그렇다고 시신이 발견되는 것도, 어떠한 단서가 있는 것도 더군다나 목격자는 더더욱 없었다. 과거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과 같은 극악무도한 살인범의 소행일까, 아니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그 화성 연쇄살인범 같은 녀석의 소행일까..이런 저런 생각을 해*만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기만 한다.

 

영철은 맛없는 달디단 인스턴트 커피를 한잔 뽑아 자리에 앉는다. 한 모금 마셨지만 이내 질려버린다. 오늘만 벌써 5잔째다. 스트레스를 받을때는 당분이 많은 인스턴트 커피와 한모금의 담배가 제일이지만 오늘은 이마저 질려버린 것이다. 실종 사건 기록철을 꺼내어 다시 넘겨본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가 없는 실종사건 기록철은 겨우 피해자들의 신원과 죽은 날짜들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단서가 없는 상태에서 영철은 단서를 찾아야만 했다. 그는 지금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으며 그렇게라도 해서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었다. 그것은 오랜 형사 생활에서 오는 의무감일 수도 있고 직업에 대한 사명의식일 수도 있었지만 지난 십수년간의 그의 행적으로 볼 때 그러한 자잘한 공명심 보다는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이 한몫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완벽주의는 어려운 사건일수록 그를 더욱더 매달리게 했고 그런 사건들을 해결했을 때 느끼는 쾌감과 만족감은 사건 해결의 중요한 근간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먼저 기록철에서 죽은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이런 연쇄살인범들에게는 자신만의 법칙이 있는 법이니까. 그는 기록철을 보고 먼저 남녀의 비율을 따져보았다. 실종자들 중 남자가 17명, 여자가 7명이었다. 남녀의 비율은 사건 해결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듯했다. 다음은 실종자들이 실종된 날짜들을 따져봤다. 10월 한달동안 총 4회의 실종이 있었다. 그때 영철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들이 실종된 날은 모두 ‘금요일’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금요일 마다 실종사건이 발생했고 의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실종신고가 들어왔으며 늦게는 그 다음 주에도 실종신고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가족들의 이야기나 정황을 바탕으로 유추해볼 때 실종날은 항상 매주 금요일 밤이었다.

영철은 이것에 대해 좀 더 알아본다면 한가닥의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철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영철은 매주 금요일 마다 죽은 실종자들의 인원을 확인해보았다. 첫째주는 6명 둘째주는 6명....

 

아... 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매주 6명씩의 희생자가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주의 사건 기록일지를 넘기던 영철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 실종자는 5명이었다. 이렇다면 무언가 법칙이 깨어지는 것이었다. 영철은 가만히 앉아서 책상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구겨진 담배각에서 담배를 빼 물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 한개비가 입안에서 맴돈다.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머리도 이리저리 굴려본다.

왜 마지막 금요일의 실종자는 5명밖에 안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살인자가 실수를 한 것인가..아니면 어떠한 다른 힘에 의해 1명의 희생자가 살아남은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1명의 죽지않은 희생자를 찾으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른다.

영철은 자리를 박차고 의자에 걸려있던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어있는 잠바를 대충 걸치고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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