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3)

무한한창의성 작성일 07.11.24 22: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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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무도 없는 아파트 복도가 눈 앞에 펼쳐져 있다. 현준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왼쪽에는 413호라는 글씨가 조그맣게 써진 낡은 현관문이 있었고 앞쪽으로는 어둠으로 거리를 알수 없는 길게 뻗은 복도가 희미한 푸른 빛을 내며 치어들을 삼키려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아귀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복도의 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증거라고는 복도의 마지막이라고 추정되는 곳에 엘리베이터의 층을 나타내는 붉은 전광판 불빛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띵”

엘리베이터는 막 6층을 내려오고 있었다. 적막한 어둠속에 두 층위에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만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현준의 식도로 굵은 침 덩어리가 넘어갔다. 입이 말라가며 뒷골에서 척추까지 서서히 한기가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몸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졌다.

 

몇초후 또다시 “띵”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는 지금 5층에서 멈춰져 있었다. 스르륵 거리며 또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현준은 한층 한층 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들을때마다 손에 식은 땀이 맺혀 가고있음을 느꼈다. 온몸은 얼음찜질할 때와 같은 한기가 몸안에 정체되어 있었지만 손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주먹을 쥐면 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그때였다. 현준은 우연히 무언가 지금 상황이 아까와 다름을 느꼈다. 분명히 아까의 복도 끝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엘리베이터와의 거리는 대략적으로 100m 정도의 거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엘리베이터를 본 순간 엘리베이터는 불과 50m 앞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현준이 앞으로 걸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 복도의 길이가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현준은 정신이 없었다. 다만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생각이라기 보다는 본능이었다. 저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게 되면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올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옆에 있던 413호의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나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현준은 미친 듯이 문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은 현준을 비웃듯이 덜컹거리기만 할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4층에 다다랐다

천둥 같은 소리였다.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현준의 시선도 서서히 엘레베이터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있고나서 문은 스르륵 닫혔다.

현준은 문이 닫힐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다만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3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현준은 그제서야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가슴에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느낌을 느꼈다. 온 몸에 힘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현준은 문옆에 주저앉아 엘리베이터를 맥없이 쳐다보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 옆 계단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루엣으로 봤을 때 여자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푸른 불빛 아래에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준은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 심장이 멎을듯한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얼굴은 둔탁한 무언가로 내려친 것처럼 으개져 눈,코,입의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단지 입이라고 예상되어 지는 지점을 봤을 때 그녀가 웃고 있다는 것만이 희미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보는 사람을 맹수 앞의 토끼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현준은 미칠듯한 긴장감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녀가 웃으며 미친 듯이 현준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반쯤 꺽여 어깨에 닿을듯한 목에서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을때와 같은 소름끼치는 하이 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초점없는 붉은 눈은 뛰어오느라 흔들거리는 목에 달려 사방으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복도가 또다시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었다.

 

현준은 목 안에서는 심장의 둥둥거림이 귀속을 파고 들었다. 심장은 펌프질을 하다못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지척까지 뛰어온 그녀의 얼굴이 현준의 얼굴 10cm까지 다가왔을 때 그녀에게는 심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손톱이 현준의 눈을 찔러 들어왔다. 시신경이 터지는 투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헉...”

 

현준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벌써 똑같은 꿈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그 버스 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 그에게는 이 무시무시한 악몽이 잠자리에서 친구처럼 그를 찾아온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거울을 봤다. 이 끔직한 악몽의 순환고리 속에서 현준은 나날이 말라갔고 눈 아래에는 짙은 다크써클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꿈을 꾸는 기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저번 주만 해도 1주일에 한번씩 꾸던 꿈이 이번주 들어와서는 벌써 두 번째이다.

 

현준은 또 다시 잠을 청할 용기가 없었다. 거실로 가서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단서없는 실종사건에 대한 기사가 마감뉴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준에게 그런 뉴스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TV에서 흘러나오는 사람 목소리만이 유일한 위안이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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