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철은 서를 나와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점심시간을 훨씬 넘겼다. 일단은 근처 롯데리아로 가서 제일 싼 치즈버거를 한입 베어물고 물에 희석되어 김이 다 빠진 콜라를 한모금 들이켰다. 간이수첩을 펼쳐 실종자 목록을 살펴보니 한수진이라는 여자의 집이 버스를 타면 20분 내외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집부터 찾아가보면 무슨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겠지...’
영철은 반쯤 남은 치즈버거를 한입에 쑤셔 넣고는 손에 묻은 기름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냈다. 롯데리아 앞에는 다행히도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었다. 간이 플라스틱으로 지붕을 만들어 놓은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영철은 습관적으로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 두모금 피우자 버스는 여지 없이 왔다.
“썩을놈의 버스..꼭 담배 몇모금 안 빨면 온다니까...”
영철은 아까운 장초를 던져버리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은 마침 일과가 끝난 고등학생들로 시끄러웠다. 고등학생의 재잘거림에 영철은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리라도 질러 조용하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몇일 간의 밤샘근무로 모든게 귀찮고 피곤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애들아 이번에 실종된 수진이 말이야.”
“아 그년...잘됬지 뭐.. 애들 선동해서 애들 왕따나 시키고...”
“애들 다 별로 걱정하지도 않는 거 같던데...”
고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을 가만히 듣다보니 지금 자신이 찾아가려고 하는 한수진이라는 여학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철은 눈을 감고 귀를 귀울였다.
“근데 걔 실종되기 전에 맨날 악몽 꿨다 그러던데..”
“무슨 악몽?”
“정확히는 못들었는데 낮선 공간에서 귀신이 자길 쫒아와서 죽이는 꿈을 꿨대. 한번도 아니고 같은 꿈을 계속 꿨다나봐.”
도움될게 하나도 없는 내용이었다. 그냥 아이들의 대단치 않은 루머들일 뿐이었다. 단지 실종된 수진이라는 여학생이 모범생은 아니었구나 라는 쓸데없는 사실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다.
“계십니까?”
문을 두드리자 초췌한 모습의 40대 초반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빼꼼히 문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실종자의 부모인 듯 했는데 이번사건으로 인해 수척해진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구세요”
“아. 예 사건 조사를 하고 있는 김영철 형사라고 합니다.”
“일단은 좀 들어오세요”
들어가자 실종자의 집에서는 한창 굿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 단서도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답답한 마음에 굿이라도 해서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 인듯 했다.
때마침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무당은 몇몇의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쳐다보는 가운데 신을 부르고 있는지 손에 든 지팡이의 짤랑거림에 맞추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몸을 떨던 무당의 몸이 어느 순간 멈췄다. 그와 함께 주위 사람들도 숨을 멈췄고 방안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녀는 흰자위밖에 없는 눈을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동자신이 접신한 듯 무당에게는 예닐곱살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누나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찾으려면 안돼. 자꾸 다칠뿐이야.”
“무서워...무서워...”
“누가 데려갔어...누가...”
그때였다. 상에 세워 놓은 촛대에서 막 뜨거운 촛농을 떨어뜨리며 녹고 있던 양초중 하나가 쨍그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촛대로 옮겨졌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무당이 손발을 허우적대며 지팡이를 던지고 미친 듯이 하이톤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감히 무당에게 접근할 수 없어 모두들 겁에 질린 얼굴로 한걸음씩 물러났다.
영철은 직업적 사명감 때문인지 이 상황을 무마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당에게 다가가 그의 팔과 몸을 잡고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영철은 각종 운동에 몇십개의 무도단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아직까지 힘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철은 사람의 아니 중년 여인의 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힘에 의해 간단히 튕겨나갔다. 갑자기 무당의 입에서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고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날 방해하지마라. 방해하면 다 죽여버릴거야.”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흰자위만 가득한 눈으로 주위 사람들을 한명 한명씩 천천히 둘러봤다. 그 눈은 적의에 찬 눈이었다. 사람들은 그 눈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둘러본 후 입가에 보일 듯 말듯한 비웃음을 띄는 찰나 무당의 몸이 풀썩 꺽이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아직까지 구석에 박혀있는 영철은 머리를 굴려봤지만 도무지 방금의 상황에 대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어찌 사람의 몸에서 그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만약 방금 겪은 일이 사실이라면 수사의 방향이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겨지지는 않지만 지금 이 시간부터는 살인범과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무엇과의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허무맹랑한 일이었다. 눈으로는 체험했지만 머릿속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몇분후 무당은 깨어났다. 무당은 허겁지겁 아무말도 않은채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돈도 받지 않은 채 나가버렸다.
실종자의 부모인 듯한 중년여인의 얼굴은 허탈함과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영철은 가벼운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조사를 할 때마다 점점 사건은 미궁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사건에 한걸음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사건은 저만치 두걸음 멀어져 가는 것이다.
영철은 복도에서 담배를 하나 빼물었다. 불을 붙이려는 찰나 뒤에서 굵은 그러나 감정이 없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계시는 분이신가요?”
영철이 뒤로 돌아봤을 때 남루한 40대 중반의 남성이 서있었다. 깊게 패인 주름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때에 쩔은 검은 잠바를 걸치고 있었으나 그 눈만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삼킬 듯 고요하고 날카로웠다.
“누구십니까?”
“그냥 이번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 단서는 좀 찾으셨습니까?”
영철은 짜증이 났다. 이 남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안 그래도 답답한 영철의 자존심에 기름을 끼얹고 있었다.
“그건 경찰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당신이 뭔데 그런걸 물어보시오?”
“그냥 도움이 될까해서 물어본 것 뿐입니다. 뭘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십니까? 이번 사건은
내가보기에 지금까지 당신이 다루었던 다른 사건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일 겝니다.”
영철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왠 미친녀석이 안그래도 복잡한 머리를 더더욱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영철은 대꾸도 없이 엘리베이터 쪽을 걸어갔다. 그때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도움이 될지 모르니 연락할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하시오.”
돌아보니 남자는 대충 찢은 종이조각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영철은 더 이상 논쟁하기 싫었다. 그러기에는 머리가 너무 복잡했고 몸도 너무나 피곤했다. 영철은 그 전화번호를 받아 왼쪽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고 엘리베이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