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귀'는 어린 여자 아이 귀신으로 주로 낙태나 아사로 한을 지고
죽은 아이의 원귀를 가르 킵니다..
'태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옛날 중국 진의 태자 신생(太子申生: 춘추시대 진 헌공이 려희를 사랑해
그 아들 계제를 세우고 태자 신생을 내쳤는데,
려희가 신생을 죽게 했고 신생은 원귀가 되서 려희를 미치게 했다고 합니다)에서 유래 됬다고 합니다..
태자귀는 어린아이의 유혼체백(遊魂滯魄)-'혼(魂; 陽 사징)은 날아가고 백(魄; 陰 상징)만 엉긴 상태-으로
사람에게 붙어서, 사람의 길흉을 질문에 따라 응해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 어린아이의 유혼체백이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방문해, "제자가 되어 드릴까요?"하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는데,
이때 그 집 부인이 "그렇게 하라."하고 응답하면 아이 귀신은 곧 붙어서 떠나지 않게 되고,
그리고 그 부인은 태자귀가 붙은 무당이 됩니다..
이 경우, 다른 아이귀신이 집을 방문해 몇 번을 불러 물어도,
집안 부인이 응답하여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붙는 일이 없습니다..
이익[李翊, 1629~1690-현종때의 문신] 의 친척 부인 한 사람이 이 아이귀신의 물음에 장난 삼아 대답했다가,
태자귀신이 붙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쫓으려 해도 되지 않고 기어이 병이 심해져 죽었고 합니다.
이럴 경우 굿을 하고 태자귀신을 모신 다음 무당이 되면 부인이 죽지 않지만
양반 가문에서는 무당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 습니다..
태자귀가 사람에게 의존하는 특성을 이용해서 무당들중 영험한 신을 모시지 못하거니
신력이 떨어진 경우엔 귀신을 조종해서 그 능력을 보안하기도 했습니다..
태자귀를 부릴때 자연적으로 굶어죽은 아이들의 영혼을 소환 부리기도 하지만
인의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다소 끔찍한 방법입니다..
여아를 데려와 좁고 햇빛이 닫지 않는 곳에 가둬서 몇일을 굶깁니다..
그럼 아이가 배고품에 울다가 거의 실신지경에 이르면 먹을것을 아이앞에 갖다 놓습니다.
아이가 힘이 없음에도 음식을 먹기위해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잘라 아이의 넋을 손에 봉인한후
시체는 48조각으로 잘라 태운후 손을 작은 괘짝에 보관해 99일이 있으면 아이의 영혼을 조종할수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기록서나 1976년경 신문에 실제 아이를 납치해서 태자귀를 만들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죠..
또한 아이 귀신으로 새타니가 있는데 태자귀가 여자 아이면 세타니는 남아를 가르킵니다..
또한 부모에게 버림받아 굶어죽은 아이의 영혼을 호칭할때도 쓰이는데
제주도 설화에 새타니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전역을 돌며 소금을 팔던 소금장수가 집에 돌아 오니 아내는 옆집 남자랑 눈이 맞아
집안의 폐물을 갖고 도망가고 그의 젖먹이 아이는 굶어서 죽어 있었습니다..
싸늘한 아들의 시체를 본 소금장수는 반쯤 실성한체 아이의 시체를 소금자루에 절인체
자루를 메고 전국을 떠돕니다..
그후 3년뒤 한 부자의 소실이 되서 잘살고 있는 아내를 발견한 그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아내앞에 소금자루를 집어던지자 아이의 시신이 썩지도 않은체 어미를 향해 조금씩 기어왔고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이의 시신은 소금에 절여졌기 때문에 미이라화가 되었고 그걸 본
어미가 충격으로 죽은 일화에 살이 붙은 걸로 보입니다..
이렇듯 세타니는 어미한테 버림 받아 굶어 죽은 남아의 원귀를 가리키는데
태자귀보다 능력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세타니를 모시는 무당은 새처럼 휘파람 소리를 내서 점괴를 맞추는데
태자귀를 모시는 무당에 비하면 적은 수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