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에 기독된 얘기로 조선 제19대 왕 숙종때의 (재위 1674∼1720)은 갑자기 신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높은 열에 시달렸고 점차 위중한 상태에 놓였습니다. 신하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온갖 약을 바쳤으나 아무 효력이 없었습니다.
이름 높은 의원들이 진맥을 해보니 역질로 판명이 났지만 그들이 아무리 약을 써봐도 효력은커녕 병세가 점점 더해 갔습니다갔.
수많은 명의가 병을 고치려고 했지만 숙종의 병은 차도가 없었습니다..
숙종의 몸엔 고름이 나오며 악취가 풍겼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귀신이 있다고 허소리를 하는등 병세는 더욱더 심해져 갔습니다.. 숙종의 눈엔 역질신명을 비롯한 여러 잡귀들이 몰려와 그의 목을 조르고 칼로 몸을 찌르는등 괴롭혔기 때문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며칠을 두고 고통 속에 지내던 어느 날, 숙종은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전날까지도 날뛰던 잡귀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문 앞에 어떤 장수의 영이철모와 갑옷을 입은 채 칼을 빼어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숙종이 비몽사몽간에 장군의 이름을 부르자 장군의 모습을 한 영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 했습니다..
“너는 누구냐?”
“요동백 김응하(金應河, 1580~1619)입니다. 소신은 민 왕후님(인현황후)이 전하를 차도를 빌며 기도를 하자 그 정성에 전하를 보호하기 위해 왔나이다.. 그리하여 잡귀들이 들끓는 것을 보고 놈들이 못 들어오게끔 막고 있습니다.”
요동백 김응하는 조선 선조 때 출생하여 광해군 때까지 나라의 일을 하던 장수 였습니다. 그는 강직한 사람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당시 만주 땅에서 일어난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를 공격하자, 명에서는 1618년 건주위(建州衛)를 치려고 명(明)나라에서 조선에 구원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좌영장(左營將)이 되어 참전하였습니다. 싸움은 점차 불리해 졌고 명나라 유정(劉綎)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부차령(富車嶺)에서 패하여 자결하자, 김응하 장군은 3천 명의 휘하군사로 수만 명의 후금군을 맞아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그도 전사하였습니다..
김응하 장군의 활약과 용맹함을 명나라의 황제도 인정하여 그에게 요동백(遼東伯-요동의 주인)이라는 호칭을 내릴정도 였죠..
그가 생전에 역병에 걸려 위중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그의 친우가 약을 가지고 김 장군의 병상에 이르니, 장군은 열에 이끌려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벗은 훌륭한 장군이 병으로 헛되이 죽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말하길,
“그대가 일찍이 나라 일을 하다가 싸움터에서 죽지 못하고 병으로 죽게 되니 누가 그대를 알아주겠는가!”
이 말을 들은 장군은 별안간 눈을 번쩍 부릅뜨고 외쳤습니다.. “싸움터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로다. 어서 약을 가져오라!”
김 장군은 그 자리에서 약을 세 사발이나 벌컥벌컥 마시고는 이내 쾌차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생전에 역병을 물리친 바 있는 김 장군이 였기에 죽어서도 역귀를 물리치는 수호령이 되었나 봅니다..
그 후부터 숙종이 잠들면 어느 때나 김응하 장군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떤 잡귀도 침범하지를 못하였고,숙종은 침식이 편해졌고 병세도 차츰 차도가 있었습니다.
숙종은 오래지 않아 쾌차하였고 숙종은 그 보답으로 김응하 장군을 모신 충렬사에 사람을 보내어 정성껏 제사를 드리도록 하며 충렬비를 세워 줬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