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해군 2함대 헌병대에서 근무할때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서른 남짓한 인원에 불규칙한 근무시간으로 죽을 맛이던 이병때 일이었죠.
스산한 바람이 불던 늦여름이었습니다.
헌병대 정문 근무는 아침 여덟시부터 저녁 여덟시까지 주간근무로 간주, 네명의 근무자로,
저녁 여덟시부터 다음날 아침 여덟시까지는 야간근무로 세명씩 근무를 섭니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당시 야간근무는 할일이 없어서 막내인 2조원만 남기고
조장과 1조원은 위병소에 들어가 잠을 자거나
근처 치킨집이나 보쌈집에서 술과 사제 음식을 시켜 놓고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본대 당직실에서 설치한 CCTV에 걸려 외박 짤리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노하우를 가진 병장들과 조장들은 사각지대를 알고 있었죠 ㅋㅋ
근무를 나가면서 본대에서 무전기를 챙겨갑니다.
이 무전기는 위병소에서 자고 있는 조장과 1조원을 당직사관이 순찰 나오면 깨우는 역할도 하고
당직실 근무자가 순찰의 출발을 정문 근무자에게 알리는 소중한 친구죠.
그 날 오후 근무를 서고 야간 새벽 한시부터 네시까지 근무를 나간 저는
2조원이었기 때문에 선임들을 위병소에 편히 모셔 놓고 반쯤 뜬 눈으로 조용한 영내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철문을 사이에 두고 영 내, 외가 구분지어지고 있었죠.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사회에 있었을때 재밌었던 일들, 곧 있을 휴가 등등.
정신은 점점 몽롱해졌지만 위병소에서 잠든 선임들이 깨어 그 모양을 보면 무지하게 얻어터질게 분명한지라
애써 정신을 차리고 건너편 사제의 주황색 가로등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이게 무슨일.
정문의 철문을 지나 반대편 영외에서 근무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출퇴근때 교통정리를 하던 사거리 TCP 다이 앞에서 말이죠.
저는 너무나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후다닥 근무지로 돌아갔죠.
꽤 멀리도 나왔었습니다.
그 거기를 졸면서 걸어갔다는 생각을 하니 도저히 스스로가 납득이 안 되더군요.
흡사. 아니 정말 귀신에 홀린 듯 헸습니다.
다행히 선임들은 깨어나지 않았고 다음 근무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본대로 돌아갔죠.
근무 진입, 퇴각할땐 선임자가 뒤에 서고 후임이 앞에 서서 걸어갑니다.
가는 길목엔 아까 말씀드린 본대 당직실과 연결된 CCTV 가 있구요.
배터리가 거의 나간 무전기를 들고 열심히 본대로 걸어가는 도중.
치칫- 하는 기계음과 함께 당직사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왜 야간 근무자가 네명이야!?"
정말이지 소름이 쫘악 하며 돋는게 우리 세명은 잠시간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근무자들의 진입, 퇴각을 CCTV로 지켜보던 당직사관은
늘 지켜보던 후임 둘이 앞, 선임 혼자 뒤에서 오던 퇴각 진형에서..
선임의 옆에서 함께 걸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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