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차 십자군 전쟁(1188∼1192)은 영국,프랑스,독일의
세나라 군주가 연합한 최고 진영의 십자군 이였습니다..
이중 독일의 붉은 수염의 왕 프리드리히
(Friedrich I,슈타우펜왕조의 신성로마(독일) 황제(재위 1152∼1190).)
황제가 인솔한
십자군들이 이코니움에서 터키인들과 싸워 혁혁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황제가 1190년 살레프에서 한 강가에서 어이 없이 익사함으로써
지휘자를 잃은 군대는 더 이상 진군할 수 없었습니다.
황제가 죽은 이유는 공식적으론 익사지만 프리드리히 1세는 부하들과 수영 대회를 할만큼 수영을
즐긴 인물인데 익사를 했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봅니다..
아마 내부인에게 암살 당했거나 혹은 산상노인이 이끄는 어새신들에게 암살 당했을 거라고
추측 되어지죠..
암튼 그의 시신은 당시의 관습대로 처리됬는데 이 당시 전쟁터에서 죽은
귀족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은 아주 엽기적인 방법 이였습니다..
바로 시신을 잘개 토막내서 큰 가마솥에 쌃은 다음 살과 뼈를 발라내고
살과 내장은 땅에 파 묻고 뼈는 물에 씻어서 천에 담아 고국으로 가져가는
방법 이였는데
이렇게 한 이유는 원정 거리가 길어서 고국에 가져 가기도 전에
시신이 부패할수가 있으므로 그걸 방지 하기 위해서 였죠..
프리드리히 1세의 유체 역시 이 방법으로 처리되 수하들에 의해
고국으로 운반 되어 졌는데 고국에 와서 뼈를 맞춰보니 두개골이 없었습니다..
놀란 신하들이 두개골을 찾았고 두개골은 수하들이 오던 도중 쉬었던 여관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부랴부랴 두개골을 가져와 장례식을 하고 관을 왕실 납골관에 넣어 뒀으나
그후에도 정체불명의 두개골이 무덤 근처나 성 부근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두개골이 발견 될때마다 납골당을 열어서 보면 프리드리히 1세의 두개골이 없었습니다..
결국 납골당의 문을 단단히 막고 납골당을 지키는 경비를 몇배나 늘렸으나
그후에도 두개골이 밖에서 발견 됬습니다..
결국 그의 두개골은 비잔틴으로 보내졌고 교황 알렉시우스에 의해서 특수한
방법으로 봉인 되어 졌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프리드리히 1세의 두개골이 돌아 다녔다는 일은 없었지만
어쩌면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은 그의 원혼때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